▲ 이호동 노동자투쟁연대 대표

반역사적인 물결이 끝없이 출렁거리는 시대의 어둠 한편에 불 밝힌 곳의 붙박이 사람. 서대문역 3번 출구에서 독립문방향으로 100미터 직진하면 나오는 피자가게 2층 붉은 책방의 일꾼. 인문사회과학서점 레드북스의 낯익은 얼굴. 소설가 김하경 선생댁의 돌규와 솔규 중에 돌규. 레드북스 지킴이 양돌규.

서울 사람인 양돌규는 1992년 고교졸업 후 울산 현대정공 직업훈련원에 입소해 노동자의 길을 시작한다. 같은해 창원 삼성중공업에 입사해 노동자로서의 삶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20대 우여곡절 많은 현장 노동과 학업을 병행해 99년 대학교를 졸업한다. 2006년에는 성공회대에서 사회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이듬해부터 ‘울산 1987년 노동자대투쟁 20주년 기념사업’에 참여하며 노동자 역사와 관련한 일을 하기 시작했다. 2008년부터는 새롭게 출범한 노동자역사 한내에서 일했다. 그 자신이 노동자였고 관련 연구를 했던 그가 노동자역사 한내에서 자료 수집과 정리를 하고 역사 쓰기를 한 것은 어쩌면 필연적 경로였는지도 모르겠다.

필자는 서울 영등포 민주노총 해고자복직투쟁특별위원회(전해투) 사무실 한편에 있었던 한내에서 그와 만났고 술잔을 기울였다. 소탈하고 살가운 성격의 그는 필자와 금방 친해졌다. 실없는 농담과 때로는 날카로운 질문까지 스스럼없이 대했다. 그러다 보니 집회 참석 후 술잔을 기울일 때면 각자가 살아온 이야기에, 발전파업 때 제정신으로 선언했냐는 질문이며, 연애사까지 대화의 소재가 끝이 없었다. 필자는 스스로 ‘규라인’을 자임하며 ‘돌규돌규 양돌규’라 부른다. 2010년까지 3년 동안은 노동자역사 한내에서 노동자 역사를 위해 온전히 일했다. 그 이후 현재까지도 노동자역사 한내 운영위원으로 변함없이 함께 활동하고 있다. 그의 노동자 역사 사랑은 끝이 없다.

2012년부터는 독특한 일을 시작했다. 레드북스에서 일하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 얘기를 들으면서 여러 가지 여건상 잠시 경험하며 거쳐 가는 활동 무대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그는 5년째 진득하게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2010년 9월30일 개업한 레드북스는 최백순·김현우 두 사람이 이른바 ‘지른’ 책방이다. ‘민중의 집’ 서점판으로 생각하며 시작한 일이라고 한다. 갑갑한 운동 현실을 헤쳐 나갈 활로를 찾던 중 서대문역 인근이 눈에 띄었다. 20여개 사회단체와 민주노총·금속노조·사무금융연맹, 나중에 이전한 전교조까지 한국 사회운동의 집적지 혹은 운동권 생태계처럼 보인 것이다. 이곳을 중심으로 활동하거나 왕래하는 활동가들이 교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보자는 것이 레드북스 구상의 출발점이었다. 각 조직별·영역별로 주요한 활동을 소개하기도 하고 헌책을 가져다 놓고 새책을 사기도 하고 하는 공간. 두 사람이 사재를 털어 시작한 레드북스는 후원회원을 모집해 음료를 무료로 제공하고 신간서적은 10% 할인 혜택을 준다.

그렇게 시작돼 7년째 접어든 레드북스는 그 역할을 이어 가고, 돌규도 그 자리에서 제 역할을 하고 있다. 귀한 공간에 무던한 지킴이다. 한국 사회 변혁을 위한 밀알이 되고 불씨가 되기를 소망하는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각자 영역에 관한 이야기를 토해 내고 교류하는 공간, 레드북스. 책을 읽지 않는 시대에 대중이 환호하지 않는 인문사회과학 책방을 이어 가고 있다.

시대의 어둠을 밝히려는 사람의 책을 받고, 원하는 사람에게 책을 전해 주는 일은 쉽지 않은 의식적 행동이고 감정노동이다. 운동으로 하는 것인지 영업으로 하는 것인지 불분명하지만 운동으로 인정해 줘도, 영업으로 봐도 무방하다. 그곳에 노동자 역사를 고민하고 노동자 역사 사랑을 멈추지 않는 양돌규가 자신의 노동력을 온전히 바치고 있다.

꼭 필요하지만 유지하기가 쉽지 않고 보기도 드문, 멋진 책방을 기억하고 방문해 주시길 바란다. 서대문역 인근 레드북스. 책 향기 청아하고 은은한 음악이 있는 곳. 친근한 몽타주의 양돌규와 따뜻한 차 한잔을 나누는 행운의 문이 언제나 열려 있는 곳.

계절마다 빛깔이 다르지만 우선 이 가을, 독서의 계절에 한없이 머무르고 싶은 곳. 찬바람 부는 이 가을날, 레드북스에 문턱이 닳고 전국 팔도에 개업식이 열리는 꿈을 꾼다. 사람을 바꾸는 책의 힘을 믿으며 책을 읽는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돌규. 세상을 바꾸려는 사람들이 모이는 레드북스도, 돌규돌규 양돌규도 이대로 쭉 멋있게 가 보자. 힘!



노동자투쟁연대 대표 (hdlee2001@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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