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주영 인더스트리올 아태지역 전력네트워크 의장

“장점은 전혀 없다.”

일본 전력 자유화의 장단점을 묻는 필자의 질문에 일본전력관련노조총연합회(전력총련) 관계자의 대답은 단호했다. 그리고 덧붙였다.

"전력 자유화의 성패는 전력공급의 안정성, 전기요금, 그리고 환경적인 측면에서 고려돼야 하는데 일본의 경우 세계적으로 실패한 전력 자유화를 충분한 검토·보완 없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도입했다. 때문에 전력수급이나 전기요금, 환경 측면에서 모두 부작용을 초래할 것이며 따라서 실패할 수밖에 없다."

일본의 전력산업은 올해 4월부터 정부 규제 대상이었던 가정용 전기까지 전면 시장 자유화됐다. 여러 가지 요인이 있지만 핵심은 후쿠시마 원전사태였다. 필자가 만난 도쿄전력 노조나 회사 관계자가 한결같이 하는 말은 “후쿠시마 원전사태의 책임을 다하기 위해서”였다. 전력 자유화 문제 또한 자신들의 생각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원전사태 이후 일본 전력산업에 대한 국민적 시각은 당혹스러울 만큼 배타적이었다고 한다. 도쿄전력에 다닌다는 이유만으로 가족과 자녀들은 ‘이지메’를 당하고 심지어 전봇대에서 수리 중인 노동자들에게 물병이 날아들기도 했다고 한다. 일본 전역에 걸쳐 가동 중이었던 원자력발전소 52기가 모두 발전을 중단했고 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단 2기만 가동되는 상황이다. 전력부족 사태로 인해 노후화로 가동을 중단했던 석탄화력 발전소까지 재가동했고, 국민에게는 가혹하리만치 절전이 요구됐으며, 전기요금 또한 사고 전에 비해 25.2%(산업용 38.2%)나 급등했다. 국민 불만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고, 일본 정부는 곧바로 전력산업 전면 자유화를 결정했던 것이다.

비슷한 이유로 한국 정부 또한 사실상 전력산업 민영화(규제완화 및 시장화)를 결정했다. 현 정권 3년 동안 ‘방만경영’과 ‘과다복지’로 국민의 지탄을 받고 있는 ‘비정상적’인 ‘공기업 정상화’를 위해 개혁(?)을 추진해 왔으며, ‘부채과다’ 공기업의 효율적 운영을 위해 기능조정을 하겠다는 것이다. 발전공기업의 주식매각과 현재 한전이 담당하고 있는 판매부문을 대기업에 전면 개방하는 것이 기능조정의 골자다. 발전공기업을 재벌 대기업에게 팔고 전력의 판매권을 대기업에게 넘기겠다는 것은 기능조정이 아니라 사실상 민영화에 다름 아닌 것이다.

전력은 국민 생활과 국가 경제에 필수적인 공공서비스다. 더군다나 우리나라의 경우 전체 에너지의 98%를 수입에 의존한다. 이러한 경제적·지정학적 여건을 고려한다면 공공서비스를 시장에 맡겨서는 안 된다. 그 추진배경 또한 합리적 목적이나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 없이 정치적인 의도가 다분한 ‘비정상적인 공기업의 정상화’를 위한 것이라면 민영화를 추진할 이유는 더더욱 없는 것이다.

후쿠시마 사태로 인해 의도하지 않게 급선회한 일본의 전력 자유화가 성공할지 여부는 미지수다. 그럼에도 6개월여 동안 진행된 전면 자유화의 양상은 그다지 긍정적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300개가 넘는 전력판매 사업자들이 자유화 시행 1년 전부터 펼쳐 온 마케팅에도 불구하고 8월 말 현재 전국적으로 2.8% 정도의 고객이 새로운 판매사업자와 계약을 했다. 통신·전철·편의점·주유소·도시가스 등 일반 상품이나 서비스·전력이 결합된 수백개의 전력상품이 소비자에게 제시되고 있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은 아직까지는 ‘글쎄’인 것으로 보인다.

더욱 우려스러운 것은 대부분 이들 상품이 비용이 저렴하고 이윤확보가 용이한 대도시에서만 주로 판매되고 있다는 것이다. 도쿄와 오사카를 담당하는 도쿄전력과 오사카전력의 신규 전력판매사업자 변경 비율은 6~7%가 되지만 기타 지역의 경우 1~2%에 불과하다는 것이 이를 증명해 준다. 즉 이윤이 남는 곳에서는 그나마 시장경쟁 흉내라도 내고 있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결국 높은 비용과 낮은 서비스를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고 할 것이다.

불확실한 일본의 전력산업, 그러나 우리 정부는 일본의 전면 자유화를 사례로 들며 민영화와 시장경쟁을 추진하겠다고 한다. 더구나 최근 불거진 누진제 사태는 정부 책임임에도 이를 기화로 더욱 민영화를 밀어붙일 기세다. 전력산업에 종사하는 노동자들은 마치 원전사태의 원죄를 덮어쓴 일본의 전력노동자처럼 그저 유구무언일 수밖에 없는 상황에 몰리고 있다.

그래도 할 말은 해야겠다.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전면 자유화, 그리고 방만경영·부채과다 부실공기업과 민영화, 전혀 다른 듯 다르지 않은 한국과 일본의 전력산업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적어도 전력이라는 필수 공공서비스가 이윤의 대상이 된다면 그에 따른 국민적 피해는 명백한 것이며, 국민 전체가 그 부담을 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인더스트리올 아태지역 전력네트워크 의장 (peoplewin6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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