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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권 회복을 위한 작은 시작최용근 변호사(법무법인 시민)
▲ 최용근 변호사(법무법인 시민)

우리는 매일 말과 글을 마주치며 살아간다. 따라서 우리의 생각과 사고는 어쩔 수 없이 말과 글에서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조지 오웰은 소설 <1984>에서 “언어가 인간을 지배한다”고 말했는데, 이는 말과 글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일 것이다. 노동의 영역에서도 마찬가지다. 하루에도 수없이 쏟아지는 노동과 관련한 말과 글의 향연은 노동자인 독자와 청자의 의식을 형성시키고, 더욱 고착화시킨다. 특히 이러한 말과 글에 사용되는 용어와 개념은 그 주춧돌이 돼, 말과 글의 전개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게 된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노동에 관련된 용어들 중에서 '반노동적'이라는 의심을 지울 수 없는 몇 가지 용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 본다.

‘정리해고’라는 용어는 해고의 한 유형으로 근로기준법 제24조에 따라 사용자의 긴박한 경영상 필요성이 있는 경우 사용자가 단행하는 해고를 일컫는데 흔히 사용된다. 그러나 정리해고에 있어 정리의 주체는 사용자고, 정리의 객체는 노동자다. 나아가 ‘정리’라는 표현 자체가 질서 없는 상태를 질서 있는 상태로 만든다는 뜻인데, 질서의 유무 또한 노동자가 아닌 사용자의 입장에서 평가되는 것임이 분명하므로 결국 정리해고라는 용어 자체가 사용자 입장에서 사용되는 것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한편 근기법 24조는 표제에서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으므로, 정리해고라는 용어는 근기법에 규정된 개념도 아니다. 따라서 정리해고라는 표현보다 ‘경영상 이유에 의한 해고’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적절하다.

‘인적자원’이라는 용어도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인적자원은 경영학 분야에서 시작돼 전 사회적으로 사용되는 용어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보이는데, 이는 'Human Resource'를 번역한 용어로 이해된다. 이러한 ‘인적자원’이라는 용어는 인간의 노동을 재무·회계·마케팅·생산과 마찬가지로 수단화·객체화해 사용자의 경영에 수반되는 하나의 ‘자원’으로 위치 짓는 것으로서 반노동적 용어라는 혐의를 피하기 어렵다. 나아가 인간의 노동은 상품이 아니라는 국제노동기구(ILO)가 1944년 26차 총회에서 채택한 필라델피아 선언의 정신에도 반하는 것이다.

‘취업규칙’이라는 용어도 반노동 혐의를 의심해 봐야 한다. 취업규칙은 일반적으로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제정한 사업장 규범으로서, 그 내용에 임금·근로시간·휴게 등 각종 근로조건과 관련 있는 사항을 포괄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런데 근기법은 근로자와 사용자가 동등한 지위에서 자유의사에 따라 근로조건을 결정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바(근기법 6조),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제정한 취업규칙이 ‘규칙’으로서의 규범력을 가지는지에 대하여도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노동법과 노동 분야 전반에 걸쳐 ‘근로’라는 용어에 자리를 빼앗기고 금기시된 ‘노동’이라는 용어를 부활시켜야 한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근로는 "부지런히 일함"이라는 뜻이고 ‘노동’은 "사람이 생활에 필요한 물자를 얻기 위해 육체적 노력이나 정신적 노력을 들이는 행위"로 정의된다. 용어의 용법을 보더라도 ‘근로’라는 표현이 갖는 사용자 편향성은 분명하게 확인된다. 노동기본권은 노동자 개인의 능력과 성정에 따라 누군가로부터 부여되는 것이 아니라 노동자라면 누구나 가지는 헌법상 권리라는 것에 다툼이 없다면, 부지런함이라는 형용사의 수식을 받는 ‘근로’라는 용어를 폐기하지 못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러한 용어 사용을 부차적인 것으로 치부할지 모른다. 그러나 용어는 사용하면 사용할수록 그 용어를 사용하는 사람 스스로 용어의 용법을 의식하게 되고, 적절하지 않은 용어를 반복하게 되면 결국 적절하지 않은 가치가 언어의 외피를 통해 그 용어를 사용하는 사용자에게 내면화하기 마련이다. 노동의 가치를 바로잡는 것은 우리 시대의 화두다. 반노동적 용어에 의구심을 품고 이를 사용하지 않는 행위가 작지만 중요한 시작이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원래 큰일은 작은 곳에서 시작하지 않던가.

최용근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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