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혜진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우리는 적어도 민주적인 정부라면 한 사람 한 사람을 소중하게 여길 것이고, 그 바탕 위에서 정책이 만들어진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노예를 사람으로 여기지 않아서 그 생명을 무시했던 시대를 우리는 부끄러워하며, 명예살인이라는 이름으로 여성의 생명을 사회적 관습보다 우습게 여기는 사회를 우리는 인권의 이름으로 지탄한다.

그런데 현재 대한민국 정부와 여당은 시민들의 생명보다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많은 것 같다. 정부와 여당은 자신들이 더 중요하게 여기는 뭔가를 위해 시민들의 생명을 우습게 여겨도 된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박근혜 정부를 민주정부라고 말할 수 없는 이유다.

이 정부는 ‘생명의 안전’보다 ‘기업의 이윤’을 더 중요하게 여긴다. 원전이 활성단층 위에 지어져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전기가 모자라서’가 아니라 원전에 얽혀 있는 이해관계자들의 이익을 위해서 그 사실을 숨기는 정부다. 수십만 원전 주변 주민들의 생명보다 ‘이윤’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정부는 고속으로 달리는 KTX에서 승객들의 안전을 지켜야 할 승무원을 비정규직으로 사용하고 ‘안전업무’를 하지 못하게 만든다. 세월호 참사 당시에도 과적과 불법 개조를 눈감아 주던 수많은 정부 관료들을 보라. 이 정부는 지금도 기업의 이윤을 위해서 안전에 대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정부는 권력의 유지를 시민들의 생명보다 더 소중하게 여긴다. 이 정부는 전 국민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 있는 전쟁을 함부로 언급하고 위기를 조장한다. 쌀값 폭락에 항의하는 농부에게 향한 물대포로 인해 그 농민이 죽음에 이르렀는데 "불법시위 가담자니 사과할 필요도 없다"고 한다. 집회를 하는 이들은 ‘적’이 아니다. 이 나라 헌법에 보장된 권리를 행사하는 시민이다. 민주사회라면 당연히 집회와 시위를 통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이 정부는 집회의 자유를 제한하고, 몇 가지 절차적 하자를 들어 집회를 ‘불법’으로 규정하며, 공권력이 집회 참여자의 생명을 함부로 해도 된다고 말한다.

이 정부는 사람을 살리지 못하는 자신의 무능력에 대해 아무런 위기의식도 없다. 재난 상황에서 사람을 살리는 것이 정부의 의무라는 인식도 없다. 세월호에서 단 10분이면 모든 승객이 살아나올 수 있었다. 그러나 해양경찰청장·서해지방해경청장·목포해경서장 등 그 누구도 승객들에게 퇴선하라고 말하지 않았다. 그렇게 90분이 흘러 무려 304명이 죽었다. 그런데 이 정부는 그 심각한 범죄행위에 대해 뻔뻔한 변명으로 일관한다. 사람을 살리는 역할을 정부에게 맡겼으나 그 정부가 생명에 대한 공감이 없고 무능력하면 너무나 많은 이들이 억울하게 죽을 수밖에 없다. 우리는 304명이 사망한 세월호 참사에서, 38명의 사망자를 낸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에서, 무려 920명이 목숨을 잃은 가습기 살균제 사태에서 그 비극을 봤다.

이 정부는 그렇게 해서 죽음에 이르게 된 생명들을 모독하고 무시한다. 경북 김천역에서 철로 유지보수를 하다가 KTX에 치여 사망한 노동자에게 ‘무단침입’ 운운하며 본인 과실이라 말했다. 그 노동자들은 더 큰 사고를 막기 위해 철로 위 손수레를 기를 쓰고 바깥으로 밀어내다가 숨졌는데 말이다. 아직 세월호에는 9명의 미수습자가 남아 있다. 그러나 이 정부는 ‘인양쇼’만 하고 선체만 훼손했을 뿐이다. 새누리당은 국회 가습기살균제 사고 진상규명과 피해구제 및 재발방지 대책마련을 위한 국정조사 특별위원회 활동기간 연장에 반대하고 정부는 피해를 구제한다면서 피해자들의 등급을 나누고 있다. 물대포에 의해 숨진 백남기 농민의 사인을 왜곡하고 부검이 필요하다면서 피해자를 두 번 죽이려고 한다.

정부가 생명을 소중히 하지 않으므로 시민들은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고, 안전상품이 비싸게 팔리며, 곳곳에 CCTV가 등장하고, 서로가 서로를 두려워하게 됐다. 골프를 치러 가던 승객이 쓰러진 택시기사를 내버리고 간 일도 ‘남의 생명을 돌볼 필요 없다’는 이 정부의 신념이 개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보여 준다. 우리 생명의 안전과 존엄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업의 이윤보다 중요하고, 돈보다 중요하고, 정치권력보다 중요하고, 법체계보다 중요하다. 사람의 생명을 지키지 못하는 정부라면, 죽게 내버려 두는 정부라면, 심지어 죽이기까지 하는 정부라면 그 정부는 존재할 가치가 없다. "모든 시민의 생명은 존엄하다"는 전제를 부정하고, 생명을 지키라고 시민들이 부여한 공적 권력을 정권을 지키는 도구로 사용하는 이 정부를 그대로 둬서는 안 된다. 이 정부가 무너져야 생명이 살아난다.



전국불안정노동철폐연대 상임활동가 (work21@jinbo.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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