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호동 노동자투쟁연대 대표

철도민영화 공세에 맞서서 공공철도 사수의 길을 걸어온 사람. 반백년이 넘는 어용노조를 민주노조로 탈바꿈시키고 사수해 온 철도인.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을 함께 했던 박태순을 가슴에 안고 영원한 철도인 이수갑 선생의 정신을 잊지 않는 노동운동가. 노동운동의 올곧은 원칙을 지키며 원직복직의 그날을 위해 투쟁하는 해고자. 철도해고자원직복직투쟁위원회 대표 김갑수.

김갑수는 1985년 대학에 입학해 학생운동을 시작했다. 이때 만난 박태순 열사와는 현장으로 들어가 노동운동을 하던 절친이었다. 함께 운동하던 친구가 92년 의문의 죽음을 당한 뒤 친구의 뜻을 이어받기로 더욱 결심을 굳혔고 94년 철도청(현 철도공사) 청량리 개화차 사무소에 입사했다. 어용노조 민주화를 위해 싸우던 김갑수는 2000년 청량리지부장에 당선되며 노조민주화의 선봉에 서게 된다. 2001년 감격적인 철도노조 민주화에 성공하며 민주철노의 조직국장을 맡아 철도민영화 반대투쟁의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게 된다. 같은해 박태순의 죽음이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서 의문사로 확인됐다. 그는 추모사업회를 만들었다. 당시 철도·발전·가스노조를 중심으로 국가기간산업 민영화 반대 공투본이 결성돼 본격적인 투쟁을 준비하며 필자와 만났다. 2002년 2월25일 역사적인 국가기간산업 민영화 반대 동맹파업을 함께 조직했다. 80년대 학업을 중단한 뒤 공장으로 들어갔고 친구가 의문사를 당한 공동의 경험을 가진 우리 두 사람은 각각의 노조 민주화를 쟁취하고 서로 만났다. 기이하면서도 긴 인연의 시작이었다.

민영화 저지 투쟁이 계속되던 2003년 철도노조 서울본부장으로서 6·28파업의 선봉이었던 김갑수는 당연한 절차처럼 구속·해고됐다. 이후 현재까지 복직투쟁을 전개하고 있다.

2004년 필자가 공공연맹 위원장이었을 때 그는 수석부위원장을 맡아 7·21 전국 지하철노조 총파업을 조직하고 지원했다. 11월에는 공공연대 소속이었던 공무원노조의 사상 최초 파업에도 총괄 지원하는 역할을 했다. 2009년 철도노조 미조직비정규실장을 맡아서 비정규사업을 담당하기도 했다. 같은해 맡았던 철도지하철노조협의회 집행위원장을 올해 5월까지 수행하다가 현재는 철해투 대표를 맡고 있다. 오랜 해고자 활동을 하면서 철해투 대표를 여러 차례 역임했다. 긴 세월의 해고와 수배·구속을 훈장처럼 당당하게 여기며 노동운동의 역사적 부름에 미련 없이 나섰다. 필자가 전해투 위원장 등으로 활동했던 지난 10여년의 세월 동안 곳곳에서 묵묵히 함께했다. 철도 레일이 나란히 함께 가듯이, 한국의 전력이 병렬 전기이듯이 그와 필자는 복선 철도와 병렬 전기처럼 나란히 각자의 처해진 위치에서 행진을 함께하고 있다,

험난했던 공공 철도와 공공 전력을 향해 미련 없이 우리의 젊음을 던졌듯이 국가기간산업 국유화와 국영화 투쟁은 앞을 예측하기 어려운 상황이지만 우회로를 기웃거리지 않는다. 공공부문 사유화는 길이 아님을 실천으로 입증해 온 우리의 삶과 운동은 어떤 위치에서 어떤 일을 하더라도 변함이 없을 듯하다.

현재 공공부문 노동운동의 명운이 걸린 성과퇴출제를 둘러싼 노정 간의 치열한 투쟁이 전개되고 있다. 파업이 시작된 지난달 27일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 조합원 교육을 하러 가는 길에 그와 노조간부들을 만났다. 당당한 투쟁의 주체들답게 승리를 위한 고민을 하고 있었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노동운동의 답은 투쟁을 통해서 만들어 가야 한다. 특히 중층적·다면적 교섭구조에서 정부와 맞상대해야 하는 공공부문의 경우 실질사용자인 정권과 투쟁할 수밖에 없다. 박근혜 정부의 불통 정책에 맞서서 투쟁하는 그들의 헌신이 이 사회의 공공성을 확대강화하는 유일한 길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9·27 공공총파업이 일주일을 넘기고 있는 상태에서 그는 묵묵히 투쟁현장을 지키고 있다. 한국 사회 변혁을 위해 운동의 출발을 함께했지만 의문사 당한 친구를 가슴에 담아 두고 지천명에 이른 철해투 대표 김갑수는 변함없이 노동자세상을 향한 투쟁의 길에 서 있는 것이다.

김갑수. 전력과 철도의 노조 민주화, 공공부문 민영화 저지를 위한 15년에 이르는 투쟁의 길을 동반한 벗. 긴 세월의 해고를 견뎌 내며 공공철도와 공공성 강화를 위해 임무를 이어 온 30여년의 세월.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이마가 벗겨져 어른 대접을 받으며 별명이 '머리갑수'인 만년 청춘, 김갑수. 그의 삶과 운동에 박수를 보낸다.



노동자투쟁연대 대표 (hdlee2001@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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