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용자는 안전하고 건강한 작업장을 제공할 의무가 있다. 이를 위해서 관련 법률의 준수도 중요하지만, 현장에서 더욱 필요한 것은 안전보건 정책에 노동자의 참가를 인정하고 허용하는 것이다. 사업장에서 업무는 물론 작업 환경에 관해 지식과 경험이 가장 풍부한 사람은 노동자다. 직업과 일터에서 오는 안전과 건강상의 위협 요인을 줄이고 사고율을 낮추기 위해서는 노동자의 참여와 적극적인 역할이 결정적이다.



정보권-교육권-협의권-참가권



안전과 건강 문제에 대한 노동자 참가의 원칙은 다음과 같다. 첫째, 노사가 대화한다. 둘째, 각자의 관심사와 우려사항에 대해 귀 기울인다. 셋째, 관점과 정보를 공유한다. 넷째, 적절한 때에 문제점을 토론한다. 다섯째, 각자가 말하는 바를 진지하게 고민한다. 여섯째, 함께 결정한다. 일곱째, 서로 신뢰하고 존중한다. 이 원칙은 사용자와 노동조합 사이의 집단적 노사관계뿐만 아니라, 사용자와 노동자 사이의 개별 관계에서도 관철돼야 한다.

사용자는 노동자와 노동조합에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교육을 실시하고, 대화와 협의를 해야 한다. 이를 바탕으로 의사결정에서 노동자와 노동조합을 참여시켜야 한다. 이는 안전과 보건에서의 정보권-교육권-협의권-참가권을 노동자와 노동조합에 보장하는 것을 뜻한다. 노동자를 보호하는 데 있어서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노동자 참여를 증진하는 것이다.

계획 단계에서부터 노동자를 참여시킴으로써 문제 발견과 대안 개발, 그리고 그 실천 등 모든 단계에서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노동자 참가는 사업장 작업방식의 설계와 기획 단계부터 이뤄져야 한다. 노동자의 조언, 제안, 개선을 흡수함으로써 사용자는 일과 관련된 사고와 질병을 사전에 예방하는 조치를 실행하는 데 효과성은 물론 효율성을 개선할 수 있다. 또한 안전과 보건에서의 노동자 참가는 불필요한 비용의 발생을 줄임으로써 회사의 수익성을 증대시킨다.



사용자의 역할



사용자는 다음의 기본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첫째, 노동자 및 노동조합과 협의하고 사업장의 안전과 보건에 관련된 모든 문제를 논의할 수 있도록 노동자 및 노동조합의 참가를 허용한다. 둘째, 노동자와 노동조합이 적절한 조치를 취하고 해결책을 제안하도록 사용자에게 요구할 권리를 인정한다. 셋째, 보건안전위원회 운영 등 법과 관행을 통해 보장된 정보 제공과 협의 실행을 위한 정책을 개발하고 이를 준수한다. 넷째, 공식적인 제도와 정책은 물론 비공식적인 대화도 활용함으로써 최선의 결과를 만들기 위해 노력한다.

사용자는 안전과 건강 문제의 최종적인 책임이 자신에게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는 사업장에서 일어나는 사고와 재해, 그리고 질병으로부터 노동자를 보호하는 데 법률적으로는 물론 도덕적으로도 최선을 다해야 함을 뜻한다. 사용자에게는 사업장 위험 요소를 사전에 파악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는 위험 요소를 통제하고 사고와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실질적 조치를 취할 의무로 나아간다.

하지만 사용자가 모든 것을 잘할 수는 없다. 사고와 질병의 예방은 사용자 혼자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바로 여기서 안전과 보건에서 노동자 참가의 실천적 필요성이 제기된다. 노동자에게 정보를 제공하고, 관련 교육훈련을 실시하고, 문제를 공동으로 협의하고, 나아가 정책을 공동으로 결정함으로써 사고를 방지하고 질병을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노사가 공동으로 국가와 사회가 정한 최저기준을 살펴보고 사업장의 실제 상황을 비교하는 데서 노동자 참가는 시작된다. 최저 기준을 바탕으로 노동자 및 노동조합과의 정보-협의-교육-참가를 활성화함으로써 사업장 상태를 개선할 단초를 마련할 수 있다. 물론 최저기준 실현에 만족하지 않고, 기존의 법과 제도를 뛰어넘는 기업과 사업장 차원의 정책을 마련하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를 위해 사용자는 안전보건위원회 운영과 활동을 실질화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노동자의 역할



사용자의 역할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안전과 보건 문제에서 노동자의 역할도 중요하다. 자본주의라는 현실에서 사용자는 이윤 극대화를 우선하는 자본가로서의 속성을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이윤을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보다 앞세우려는 사용자의 탐욕을 규제하는 데 노동조합만큼 중요한 집단도 없다.

노동자 역시 안전과 건강 문제가 자신의 책임임을 인정해야 한다. 노동자 자신, 그리고 노동조합 자체의 노력 없이는 사고 방지와 질병 예방을 통한 안전하고 건강한 사업장의 실현을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노동자가 합법주의(legalism) 혹은 법률만능주의, 즉 법률적 최저기준에 만족하는 수준을 뛰어넘어 사용자와 대등하게 평등한 주체로 서야 함을 뜻한다. 합법주의 극복은 개별적 노동자가 이뤄내는 데 한계가 있다. 때문에 이 지점에서 노동자 집단, 즉 노동조합의 역할이 필요하다. 안전과 건강은 노동자 개인의 책임인 동시에 노동조합을 통한 집단적 책임이기도 하다.

앞에서 언급한 노동자 참가의 권리들인 정보-협의-교육은 사용자들의 자비나 시혜로 이뤄지는 것들이 아니다. 또한 정부의 법과 정책으로 이뤄지는 것들도 아니다. 노동자 개개인의 노력, 특히 노동조합을 통한 노동자들의 집단적 참가가 이뤄지지 않는다면 법과 제도는 종이에 적힌 문구로 전락하고 만다.

안전과 보건에서 노사의 대화와 협력이란 다른 것이 아니다. 노동자와 노동조합에게 정보권-협의권-교육권, 즉 참가권을 보장하는 것이다. 협의와 관련해서는 노동자가 개별적으로나 노동조합을 통해서 사업장의 위험 요소를 자유롭게 사용자에게 알리고 토론할 수 있는 조직 문화를 만드는 것이 급선무다. 위급한 상황에서는 작업 중지 등의 조치를 먼저 취한 다음, 사후에 보고하는 제도를 정착시키는 것도 중요하다.



안전과 건강, 노동이사의 핵심 활동 영역



개인·부서·교육·회의 등 각종 수준에서 노동자가 사용자에게 질문하고 문제를 제기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분위기를 활성화시켜야 한다. 정기적으로 노사 공동으로 관련된 조사와 연구를 진행해야 한다.

문제가 발생하면 부담 없이 자유롭게 사용자에게 보고하는 체제를 확립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사용자가 노동자 대표, 즉 기업별노조는 물론 산업별 노동조합의 개입과 지원을 인정해야 한다. 현장 방문, 정보 제공, 사고 조사, 피해자 면담, 보고서 작성, 관계당국 보고, 교육·훈련 등 사고와 질병의 모든 단계에서 노동조합의 참여가 보장돼야 한다.

노동이사제는 노동자의 정보권-협의권-결정권을 보장하고 활성화하는 중요한 수단이다. 정보 제공과 문제 협의, 그리고 의사결정에서 사용자만이 아니라 노동자도 권리와 책임을 공유하는 것이 그 핵심이다. 이 점에서 산업보건안전의 문제는 노동이사가 자기 역할을 펼칠 핵심 영역이 된다.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이야말로 노동자 경영 참가의 기본 의제인 것이다.

노동자를 대표해 회사의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노동이사는 사고 방지와 질병 예방을 위해 노동자 대표로서의 관점·지식·경험을 총동원해야 한다. 이는 사용자에 의해 임명돼 안전과 건강 업무를 책임지는 관리자의 역할과는 전적으로 달라야 함을 뜻한다. 사용자가 아닌 노동자 입장에서 법이 정한 최저기준의 준수 여부를 살피고, 질 높은 정보를 요구하고 분석하며, 노사 공동의 조사 연구를 주도하고, 노동자 관점에서 산업안전을 바라보는 교육을 진행하며, 정책 수립과 의사결정에 적극 참가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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