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출퇴근 사고를 산업재해로 인정하지 않는 현행 산업재해보상보험법(산재보험법)에 대해 위헌에 해당하는 헌법불합치 판결을 내렸다. 관련 조항을 수정하는 산재보험법 개정안이 19대와 20대 국회에 연이어 제출됐지만 정부·여당이 이른바 노동개혁 4대 법안 중 하나로 묶으면서 논의가 지지부진하자 헌재가 나서 “내년 12월31일까지 해당 조항을 개정하라”고 결정한 것이다. 노동 4법 논의의 변수가 될지 주목된다.

3일 법조계에 따르면 헌재는 지난달 29일 재판관 6 대 3의 의견으로 “사업주가 제공한 교통수단을 이용하는 등 사업주의 지배관리 아래 출퇴근하다가 발생한 사고만 업무상 재해로 인정하는 산재보험법 제37조 제1항 제1호 다목은 헌법에 위반된다”고 결정했다.

회사 출퇴근(통근) 버스만이 아닌 자전거·자가용 같은 개인적 교통수단을 이용해 출퇴근하다 사고가 발생해도 산재로 인정해야 한다는 의미다.

헌재는 △출퇴근은 업무의 전 단계로 업무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고 △산재근로자 보호·보상 강화가 사회적·국제적 추세이며 △특히 해당 조항은 자가용·대중교통 이용 직원에 대한 차별(통근 버스 이용자들과의)에 해당해 위헌이라고 봤다.

해당 조항은 이명박 정부 때인 2012년부터 위헌 논란에 시달리면서 개정이 검토됐다. 2013년 9월에는 헌법재판관 9명 중 절반 이상인 5명이 위헌으로 봤지만 위헌 결정 정족수인 6명에 못 미쳐 합헌 결정이 나기도 했다.

정부·여당 역시 이러한 추세를 반영해 지난해 9월 출퇴근 재해를 산재로 인정하는 산재보험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야당은 물론 노동계도 크게 반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정부·여당이 파견 대상·기간 확대 방안을 담은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개정안과 함께 노동 4법으로 묶으면서 1년 넘게 논의조차 되지 못했다. 야당과 노동계는 파견법과의 묶음 처리를 반대하고 있다.

헌재 결정에 따라 국회는 산재보험법 개정에 나서야 한다. 민주노총도 이날 성명을 내고 “헌재 판결을 환영한다”며 “국회는 즉각 입법에 나서라”고 촉구했다.

그동안의 추세로 봤을 때 여당은 헌재 결정을 빌미로 노동 4법 처리를 압박하고 나설 가능성이 커 보인다. 반대로 야당은 산재보험법 개정의 시급성을 강조하면서 분리 처리 목소리를 높일 것으로 전망된다.

노동 4법 중 근로기준법도 산재보험법과 비슷한 운명에 처할 개연성이 있다. 근로기준법 개정안은 휴일근로를 연장근로한도에 포함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2012년부터 이어진 4건의 서울고법 판결을 반영하고 있다. 대법원은 국회에서 관련법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감안한 듯 4년째 확정판결을 미루고 있지만 언제까지 늦출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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