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 파업에 긴급조정권을 발동할 수 있다는 뜻을 밝혔다. 지부 파업이 지속되면서 협력업체가 어려움을 겪고 우리 경제와 일자리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다.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에는 긴급조정 결정권이 노동부 장관에게 있고, “쟁의행위가 공익사업에 관한 것이거나 그 규모가 크거나 그 성질이 특별한 것으로서 현저히 국민경제를 해하거나 국민의 일상생활을 위태롭게 할 위험이 현존하는 때”라는 조건을 달았다. 국민경제를 해하거나 일상생활을 위태롭게 했는지를 두고 논란의 여지가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과 경제주체들에게 긴급조정권 발동과 관련한 의견을 들었다.



긴급조정권이 오히려 공익성 침해
권영국 변호사(전 민변 노동위원장)

▲ 권영국 변호사(전 민변 노동위원장)

긴급조정권은 국가가 예외적으로 노사관계에 강제적으로 개입하는 규정이기 때문에 엄격하고 예외적으로 해석돼야 한다. 기본적으로 입법취지는 공익성을 수반하는 경우 긴급조정권을 발동하는 것이다. 사기업의 영업활동을 보장하기 위한 조항이 아니다. 물론 현대자동차 규모로 볼 때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있을 수 있다. 자동차 생산에 차질이 생긴다고 국민 일상생활이 위태로워지는가. 협력업체가 어려움 겪는 것은 의무를 다하지 못한 원청이 책임질 문제다.

쟁의행위는 사용자의 업무를 방해해서 교섭력을 확보하는 행위다. 오히려 긴급조정권을 발동하게 되면 노사관계 교섭력은 기울어진 운동장이 되고, 자본에게 무소불위 힘을 주게 된다. 공익적이라기보다 자본이나 재벌의 경영을 위해 일방적으로 편을 드는 것이다. 그 자체가 헌법상 노동기본권을 박탈해 오히려 공익성을 침해한다.

정부는 자본에 합리적인 합의와 교섭으로 문제를 해결하도록 촉구해야지 기본권 박탈로 노동자에게 굴복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링에서 두 사람이 싸우고 있는데 국가권력이 한 사람 손을 묶어 버리는, 일방적인 행위를 하는 거다. 파업이 공익성을 침해하고 국민 위해가 심도해서 어쩔 수 없이 발동하는 것이지 기업 규모가 크니 영향 크다고 발동하는 권한이 아니라는 얘기다.



대기업노조의 이기적 파업, 협력업체 근로자 생계 위협
임서정 고용노동부 노사협력정책관

▲ 임서정 고용노동부 노사협력정책관

금속노조 현대차지부는 이달 26일 12년 만에 전면파업에 돌입한 것을 포함해 올해 7월부터 지금까지 20여차례 넘게 파업을 진행했다. 대표적인 상위 10% 고임금 근로자에 해당하는 현대차 조합원들이 협력업체·비정규직 등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지 않고 과도한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이어 가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게다가 노사가 잠정합의안을 도출했음에도 임금인상 폭이 낮다는 이유로 부결시키고 다시 파업에 돌입하는 상식 밖의 행태를 보이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기업과 근로자 간 상생이라는 시대적 요구에 역행하는 모습이다.

또 현대차는 우리나라 제조업에서 고용의 12%, 생산의 13%, 수출의 14%를 차지하는 자동차산업 선도기업이다. 따라서 현대차지부 파업은 국가 경제에도 심각한 악영향을 미친다. 파업 기간 12만1천167대의 자동차 생산차질이 빚어졌고 2조7천여억원의 피해가 발생했다. 특히 1차 협력업체에서 1조3천여억원의 매출손실이 발생했다. 중소 협력업체들의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대기업 노조의 이기적인 행태는 곧바로 협력업체의 수많은 근로자의 피해로 이어지게 된다. 영업 중단과 임금 손실을 그대로 감수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현대차의 경우 지난해 평균임금이 9천600만원에 이르고 있으나 1차 협력업체는 65%, 2·3차 협력업체의 경우 30~35% 수준에 머물고 있어 현대차 노조의 파업은 협력업체 근로자의 생계를 직접적으로 위협한다.

조속한 시일 내에 현대차 노사 간에 합의가 이뤄지지 않고 파업이 지속된다면 정부는 우리 경제와 국민의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 등을 고려해 긴급조정결정을 포함해 법과 제도를 통해 마련돼 있는 모든 방안을 강구해 파업이 조기에 마무리되도록 할 계획이다.



현대차 노사문제, 정부개입·공적조정으로 못 풀어
이문호 워크인연구소 소장

▲ 이문호 워크인연구소 소장

올해 현대차 노사의 임금협상이 장기화하는 이유는 현대차 노사관계가 안고 있는 고질적인 문제 때문이다. 매년 일어났던 일이고 새로운 문제도 아니다. 쉽게 풀리지 않을 문제다.

그런데 정부는 국민경제를 해한다는 이유로 긴급조정권을 검토한다고 한다. 지금 진행되는 현대차 노사 임금협상과 국민경제가 무슨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다. 노조법상 '국민경제를 해한다'는 기준도 모호하다. 물론 파업이 장기화하면 해당 기업에는 부담이 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현대차 노사관계에 정부가 개입하면 정치적인 문제가 되고 만다.

현대차 문제는 노사자율교섭에 맡기는 것이 원칙이다. 더구나 지금 현대차지부 파업은 합법파업이 아닌가. 정부가 나서면 문제는 더욱 꼬일 뿐이다. 공적인 조정으로 풀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공적조정이 지금까지 그 역할을 제대로 한 적도 없지 않나. 노사자율에 맡기되 필요하다면 사적조정을 생각해 볼 수는 있다. 전문성을 갖추고 노사 양측으로부터 신뢰를 받는 전문가들이 중재에 나서는 방법에는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자본 편향 제도 뜯어고쳐야
송보석 금속노조 사무차장(대변인)

▲ 송보석 금속노조 사무차장(대변인)

박근혜 정부의 재벌 감싸기가 도를 넘고 있다. 노사관계를 파탄으로 몰아가는 긴급조정권을 금속노조 현대자동차지부에 적용할 수 있다고 한다. 노조가 사용자와 자율적 교섭을 통해 근로조건을 향상시켜 나가는 것은 세계보편적인 역사다. 그런데 긴급조정권은 노사 대화에 정부가 개입하고, 파업을 제한해 노조의 투쟁을 멈추게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사용자에게 일방적으로 유리한 제도다.

금속노조는 올해 재벌개혁을 주요 목표로 내걸고 총파업을 실시했다. 사용자에게 기울어진 법과 제도를 바로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긴급조정권 사태는 재벌을 개혁해야 하고, 자본에 편향된 제도를 뜯어고쳐야 한다는 금속노조 주장이 정당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 주고 있다. 정부의 역할은 노사 교섭이 원만히 진행되도록 지도하고 감독하는 데 있다. 그런데 지금은 본사 지시에 의해 좌우되는 그룹의 잘못된 노사관계를 바로잡기는커녕 노동자의 정당한 파업을 어떻게 해서든지 탄압하려고 골몰하고만 있다. 정부가 노조 존재를 부정하는 행태인 긴급조정권 발동을 시행할 경우 금속노조는 이에 맞서 단호히 대응할 것이다. 조직의 명운을 걸고 대정부 투쟁을 위한 모든 수단을 강구할 것이다.



성과주의 확대 위해 긴급조정권까지 만지작거리는 정부라니
이지현 한국노총 언론홍보국장

▲ 이지현 한국노총 언론홍보국장

정부가 현대차에 긴급조정권 발동을 검토하겠다고 밝히며 노조를 압박하고 있다. 게다가 이기권 장관은 현대차 노동자들이 상위 10% 고임금 노동자들이면서도 과도한 임금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이고 있다고 비난했다. 그러나 이번 현대자동차 조합원들의 파업은 단순히 임금인상 폭이 낮은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현대자동차 조합원들이 부결시킨 잠정합의안에는 올해 말까지 임금체계 개편방안을 논의해 내년부터 시행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현대차가 임금체계 개편을 시작하게 될 경우 민간부분에 끼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정부는 이를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정부가 긴급조정권을 발동하려는 이유는 현대차 파업이 국민경제를 해하거나 국민의 일상생활을 위태롭게 해서가 아니다. 박근혜 정부의 노동개악을 민간부분으로 확대시키는 데 현대자동차만큼 좋은 케이스가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부가 섣부르게 긴급조정권을 발동한다면 그에 따른 책임도 모두 정부가 져야 함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군사독재시절 현 대통령의 아버지가 노동자들의 단결권을 무력화시키려고 만든 긴급조정제도를 그의 딸이 휘두른다는 조롱 정도는 약과다. 앞으로 현대차에서 파업이 일어날 때마다 정부가 나서서 해결해 줄 것이라는 인식이 각인될 것이다. 현대차뿐만 아니라 조금 큰 사업장에서 파업이 발생할 때마다 사용자들은 성실히 교섭에 임하기는커녕 정부에 긴급조정권 사용을 촉구할 것이다. 그때마다 모든 파업에 개입할 것인가. 오래 걸리더라도 노사가 자율적으로 해결하도록 둬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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