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호동 노동자투쟁연대 대표

분단 시기에 태어나 청년기 이후 일생을 시종일관 국가폭력에 저항하며 장렬히 산화한 사람. 박정희 정권 탄압에 의해 20대 10여년을 송두리째 빼앗겼고 박근혜 정권의 국가폭력으로 비통하게 생을 마감한 농민. 이 땅의 생명과 평화를 염원하며 참여했던 민중총궐기의 날 직사살수에 쓰러져 317일간 사투를 벌이다 안타깝게 세상을 떠난 백남기 어르신.

아내와 함께 밀농사 등을 짓고 된장과 고추장을 담그며 칠십 평생을 땀 흘리며 살았던 그의 삶은 이 땅의 모순에 저항하는 행로 그 자체였다.

1947년 8월24일(음력) 전남 보성군 웅치면에서 태어나 광주에서 중고등학교를 졸업했다. 68년 중앙대에 입학했고, 71년 10월 위수령 시위 혐의로 1차 제적됐다. 73년 10월15일 교내에서 유신 철폐 시위를 주도했고 이듬해 수배돼 75년까지 명동성당에 피신했다. 같은해 전국대학생연맹에 가입했다가 2차로 제적된다. 갈멜수녀원 잡부 1년, 일흥농원 포도원 1년, 갈멜수도원 수도사 3년 등 박정희 정권 시대를 버텨 낸 뒤 80년 3월 '서울의 봄' 때 복교했다.

학교로 돌아가 어용 학도호국단을 철폐하고 재건 총학생회 1기 부회장을 맡았다. 5월8일 박정희 유신잔당(전두환·노태우·신현확) 장례식을 주도했다. 같은달 15일 의혈중앙 4천인 한강 도하와 흑석동 캠퍼스에서 서울역까지 도보행진을 이끌었고, 5월17일 군부 계엄 확대 조치로 기숙사에서 계엄군에 체포됐다. 그에게도 서울의 봄은 참혹하고 짧았다. 7월30일 다시 퇴학 처분(3차 제적)이 내려졌다.

덧붙여 군부독재정권은 8월20일 수도군단보통군법회의에서 계엄 포고령 위반으로 그에게 징역 2년을 선고했다. 이듬해 3월3일 3·1절 특사로 가석방됐다.

백남기 어르신은 고향 보성으로 귀향해 수도작·낙농업·밭농사 등을 시작했다. 11월에는 박율리아나님과 결혼했다. 83년 정치활동 규제자에서 해금·복권됐다.

86년 가톨릭농민회에 가입하며 이후 30년을 함께하는 활동에 나섰다. 이듬해 가톨릭농민회 보성·고흥협의회 회장을 지냈다. 89년부터 91년까지 전남연합회장, 92년부터 93년까지 가톨릭농민회 전국 부회장을 역임했다. 92년 우리밀살리기운동 광주·전남본부 창립을 주도했고 94년에는 우리밀살리기운동 광주·전남본부 공동의장으로 일했다.

2014년 가톨릭농민회 전남동지회 회장, 지난해에는 우리밀살리기운동 광주·전남본부 자문위원을 맡아 활동 중이었다.

문제의 2015년 11월14일. 백남기 어르신은 민중총궐기 대회 행사 중 폭력경찰의 살인적인 물대포에 의해 쓰러진 후 의식불명 상태로 317일 동안 서울대병원에서 사투를 벌였다. 병상에서 고희를 맞았지만 끝내 일어나지 못하고 이달 25일 애통하게 세상을 등졌다.

마을 사람들은 "우리 농업을 지키기 위해 애쓴 흥 많고 성실한 일꾼. 서둘러 밀을 뿌리고 다음날 전국농민대회와 민중총궐기에 참가했으며 평생을 땀 흘리며 살아온 정직한 농민. 자기 농사뿐만 아니라 이웃 농민들과 더불어 살며 우리 농업 살리기에 매진한 사람”으로 백남기 어르신을 기억한다.

그를 무참하게 쓰러뜨리고 죽음에 이르게 한 행위자와 명령자들에 대해 수사와 처벌, 재발방지책 그 어느 것 하나도 제대로 이뤄진 것이 없다. 분노의 시간이 속절없이 지나가는 사이 안타깝게도 2016년 9월25일 14시15분을 맞이하고 말았다. 317일간의 사투를 벌이는 동안에도, 죽음을 맞이한 현재 상황에서도, 국가폭력의 진범들은 활개를 치고 유족과 국민은 가슴을 친다. 국가폭력 살인을 저지른 천인공노할 당국의 태도에 분노한 사람들은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을 지키고 있다. 망자에 대한 예의조차 갖추지 않는 정권에 대해 그가 믿던 신의 섭리와 심판을 어찌 헤아리랴만 이 몹쓸 놈의 땅을 떠나기가 이리 어렵단 말인가.

그의 영세명인 '임마누엘'은 "하느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이제라도 신의 '공의'가 만시지탄의 땅에 임하기를 바란다. 다시는 무도한 정권의 땅에 이런 불행한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그의 역사적인 삶과 죽음을 올바르게 자리매김해야 할 것이다.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고, 공의가 샘솟 듯하는 세상을 향해 임마누엘을 하늘나라에서 입증할 역사가 된 인물. 생명과 평화를 위해 불의와 폭력에 저항하며 자신의 삶을 온전히 바친 척박한 땅의 사람 백남기 어르신. 그의 지난했던 삶과 죽음 앞에 경건하게 옷깃을 여민다. 임마누엘!



노동자투쟁연대 대표 (hdlee2001@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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