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공운수노조 5678서울도시철도노조 조합원들이 27일 오전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경기장역 청소년광장에서 총파업 출정식을 열었다. 윤성희
▲ 공공운수노조가 27일 전국 13개 지역에서 국민피해 성과퇴출제 저지 총파업 출정식을 열었다. 이날 오후 서울역에서는 철도노조와 건강보험노조가 수도권 총파업 공동출정식을 열었다. 윤성희

공공운수노조 공공기관 시기집중 전면파업 1일차인 27일 철도·지하철·병원·가스를 비롯한 10개 사업장 5만4천여명이 파업에 돌입하고 출정식을 했다. 출정식 현장 곳곳에서 만난 공공부문 노동자들은 성과연봉제로 파괴될 조직문화를 걱정하면서 공공성을 지키기 위해 "함께 싸워 함께 승리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돈벌이 성과급 거부하고 국민건강 지킨다"

가장 먼저 파업 출정식을 시작한 곳은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분회(분회장 박경득)다. 필수유지업무 인력을 제외한 분회 조합원 400여명은 이날 오전 서울대병원 본관 로비에서 파업 출정식을 열고 "의사 성과급제를 폐지하고 전 직원 성과연봉제를 포기하라"며 "돈벌이 성과급을 거부하고 국민건강을 지키겠다"고 선언했다.

무기한 파업에 들어간 분회는 병원 입구에서 "성과퇴출제는 국민 피해"라는 선전물을 배포하고 환자와 가족을 대상으로 서울대병원 성과연봉제 도입을 반대하는 서명을 받았다. "의료는 상품이 아니다, 노동개악 반대" 문구를 넣은 주황색 티셔츠를 맞춰 입은 조합원들이 로비를 채웠다.

박경득 분회장은 "환자와 가족분들이 왜 파업하냐고 물어보면 죄송스럽지만 우리가 파업을 안 하면 더 죄송할 일들이 벌어진다"며 "부서별·개인별 실적경쟁을 하고 돈벌이를 위한 병원으로 운영되면 환자 안전이 더욱 위협받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현직 의사인 우석균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환자의 차도를 의료진 성과로 계량화할 수 없기 때문에 수익으로 성과를 따질 수밖에 없다"며 "병원에서 수익을 추구하는 행위는 의료 질 하락으로 연결되는데, 협력이 핵심인 의료부문에서 경쟁은 위험한 일”이라고 강조했다.

분회는 성과연봉제뿐만 아니라 병원의 부대사업 확장을 통한 상업화에도 반대하고 있다. 병원측은 최근 지하 공간에 건립하는 첨단외래센터 설계를 임의로 변경했다. 외래진료 공간으로 설계된 지하 1층을 판매점과 음식점 등 상업시설로 바꾸면서 진료 공간을 축소해 버렸다. 부대사업 운영권을 민간기업에 넘긴 채 내용을 공개하지 않고 있다. 분회는 "재벌기업 이윤을 위해 병원이 운영되는 상황을 더는 두고 볼 수 없다"며 "첨단외래센터 부대사업 확장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 5678서울도시철도노조 총파업 출정식에서 명순필 노조 위원장과 노조 간부들이 투쟁사를 하고 있다. 윤성희
▲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서울대병원분회가 27일 오전 파업 출정식을 하고 있다. 윤자은 기자

"조직문화 파괴하는 성과연봉제 반대"

성과연봉제를 반대하며 무기한 파업을 결의한 지하철노조들도 이날 오전 9시(승무직은 오전 4시)부터 무기한 파업에 돌입했다. 지하철 6호선은 차량마다 '국민파업복장'인 아웃도어룩을 입고 파업배낭을 둘러맨 노동자들로 꽉꽉 들어찼다. 월드컵경기장역으로 향하는 5678서울도시철도 노동자들이었다. 지하철 5~8호선을 운행하는 5678서울도시철도노조(위원장 명순필)는 서울 마포구 월드컵경기장역 청소년광장에서 출정식을 열었다.

오전 11시께 "나쁜 정책에 맞선 착한 파업"이 인쇄된 대국민 선전용 스티커와 결의문·깔개·수건·우비·생수 등 양손 가득 파업물품을 받은 노동자들이 금세 서울월드컵경기장 청소년광장 스탠드를 빼곡히 채웠다. 이날 3천500개의 깔개를 준비한 주최측은 준비한 물량이 금방 동나자 황급히 은박깔개를 자르며 "생각보다 많이 왔다"고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빗속 출정식에도 노동자들의 기세는 수그러지지 않았다. 명순필 위원장은 "저들은 우리에게 A·B·C·D 등급을 매기고 동료들을 밀어내라고 한다"며 "성과주의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라 시민 안전과 가족 안전을 지키는 투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입사 2년차인 새내기 승무원부터 정년을 2년 앞둔 선배 역무원, 이달 1일부로 도시철도공사 직원이 된 안전업무직 전동차보수원까지 무대로 나와 "성과연봉제 폐해를 막기 위해 투쟁하겠다"는 결의를 밝혔다. 2014년 입사한 승무원 김혜정씨는 "많은 선배 기관사들이 공황장애를 앓고 있고 이 중 아홉분이나 세상을 떠났다"며 "지나친 경쟁과 압박이 공황장애의 원인으로 꼽히는데, 성과연봉제는 기관사들의 공황장애를 심화시키고 시민안전을 위협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씨는 "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해 싸우겠다"고 말했다.

역무원 황지철씨는 "정년을 앞두고 있지만 시국의 엄중함을 볼 때 가만히 있어서는 안 되겠다 싶어 파업에 동참했다"며 "직장문화를 파괴하려는 정부의 작태에 맞서 분연히 떨쳐 일어나자"고 호소했다. 전동차보수원인 정진영씨는 "성과연봉제·퇴출제는 조직문화를 파괴하고 노조를 무력화시킬 것"이라며 "안전업무직은 아직 성과연봉제 적용을 받지 않지만 이 제도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함께 싸우고 함께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현장에서 만난 노동자들은 한목소리로 성과평가의 불합리성을 지적했다. 고덕기술사업소에서 전기업무를 하는 김창명(가명)씨는 "전기일은 최소 2인 이상이 함께 움직여야 한다"며 "역사 조명을 하나 교체하더라도 사다리 잡아 주는 사람, 조명 교체하는 사람이 협력하면서 일하는데, 이들의 업무를 어떻게 나누고 너는 A, 너는 C, 너는 D로 평가할 수 있겠냐"고 비판했다. 역무원 정인철(가명)씨도 "평가기준이 합리적이지 않을 것"이라며 "결국 윗사람과 술 잘마시고 친한 사람들에게 더 좋은 평가를 주게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역무원 박인수(가명)씨는 "예전에 단체권이나 정기권을 많이 유치해 오면 점수를 준 적이 있었다"며 "역무원들에게 역사 관리 대신 뭐든 팔아 오라는 업무를 시킬 것 같다"고 걱정했다.

지하철 1~4호선을 담당하는 서울지하철노조는 서울 성동구 서울메트로 군자차량기지에서, 서울메트로노조는 서울 성동구 서울메트로 신답별관에서 파업출정식을 개최했다. 최병윤 서울지하철노조 위원장은 조합원 3천500여명이 모인 출정식에서 "2008년 이명박 정부가 추진한 공기업 선진화 정책으로 외주노동자 비율이 증가했다"며 "그 결과 노동자들이 잇따라 죽었고 시민안전이 위험에 노출됐는데 이게 정부가 말하는 효율성이냐"고 반문했다. 최 위원장은 "성과주의를 막기 위해 철도와 지하철이 22년 만에 공동파업을 이뤄 냈다"며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다짐했다. 출정식 후 조합원들은 60여개 역사에서 성과연봉제·퇴출제의 폐해를 알리는 스티커와 포스터를 열차와 승강장에 붙이는 등 대시민 선전전을 했다.

김철관 서울메트로노조 위원장은 신답별관 대강당에서 열린 조합원 총회 겸 파업출정식에서 "서울메트로노조는 박근혜 정부가 일방 추진하고 있는 해고연봉제 분쇄를 위해 27일 오전 9시부터 무기한 파업에 돌입한다"는 내용의 투쟁지침을 발표했다. 조합원 600여명이 모였다.

부산지하철노조(위원장 이의용)는 이날 오전 지부별로 파업출정식을 한 뒤 오후 7시부터 광안리해수욕장에서 조합원 2천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파업콘서트를 열었다.

▲ 5678서울도시철도노조 조합원들이 '국민피해 성과주의 반대' 구호를 외치고 있다. 윤성희
▲ 27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성과퇴출제 저지, 총파업 투쟁 승리, 철도-건강보험노조 수도권 총파업 공동출정식에서 조상수 공공운수노조 위원장이 투쟁구호를 외치고 있다. 윤성희
▲ 27일 오전 파업에 참여한 공공운수노조 5678서울도시철도노조 조합원들이 서로 악수를 나누고 있다. 윤성희
▲ 27일 오전 공공운수노조 5678서울도시철도노조 총파업 출정식이 열리는 서울시 마포구 월드컵경기장역사에 성과퇴출제 반대 홍보물이 붙어 있다. 윤성희
▲ 27일 오후 서울역광장에서 열린 국민피해 성과퇴출제 저지 총파업 출정식 참가자들이 '국민 피해 막는 착한 파업 손팻말을 들고 있다. 윤성희
▲ 공공운수노조 총파업 지도부가 깃발을 흔들고 있다. 윤성희
▲ 희망연대노조 다산콜센터지부 조합원들도 27일 오후 서울역광장에 나와 공공부문 노동자의 파업을 응원했다. 윤성희

철도노조·국민건강보험노조 수도권 조합원 1만여명 운집

동시파업 출정식 가운데 가장 많은 인원이 모인 곳은 서울역광장이었다. 이날 오후 서울역광장에는 철도노조와 국민건강보험노조가 공동으로 수도권 총파업 출정식을 열었다.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와 국민건강보험노조 서울·경기·인천지방본부 조합원 1만여명이 출정식에 참가했다. 출정식을 하기 직전에 빗줄기가 굵어졌지만 참가자들은 우산을 접고 우비만 입은 채 대오를 지켰다. 얼굴에 쏟아지는 빗줄기는 "국민 피해 성과주의 반대" 수건으로 닦아 냈다.

박종선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장은 "불법을 저지르는 정부가 합법파업을 하는 노조에 불법을 운운하고 있다"며 "국민 주머니를 털라고 요구하는 성과연봉제와 노조 파괴를 거부하고 한 치의 흔들림 없이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김철중 국민건강보험노조 서울지방본부장은 "귀족노조의 불법파업이라는 정부 선동에 위축되지 말자"며 "우리는 국민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투쟁을 한다고 당당하게 얘기하자"고 말했다.

김영훈 철도노조 위원장과 박표균 국민건강보험노조 위원장은 이날 "성과연봉제 철회시까지 무기한 파업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들은 파업 선언문을 통해 "정부가 주장하는 공공개혁의 종착역은 민영화이고 쉬운 해고일 것"이라며 "타협하지 않고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밝혔다.

출정식에서 만난 조합원들은 "이번엔 이길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였다. 철도노조 서울지방본부 차량지부 조합원 송화영씨는 "2013년 철도만 파업을 할 때는 불안감이 컸는데 이번에는 다른 공공기관노조들도 함께 파업하기 때문에 이길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갖고 있다"며 "오늘 출정식에서 이길 수 있겠다는 확신을 얻었다"고 말했다. 전기지부 조합원 서상빈씨는 "임금피크제도 도입됐는데 성과연봉제까지 도입되면 어떻게 일해야 할지 위기의식이 크다"며 "일단 내년 1월 시행이라도 막아야 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 있어 무너지지 않고 버틸 수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공공운수노조 가스공사지부(지부장 황재도) 역시 이사회 의결로 불법 도입된 성과연봉제 철회와 가스민영화 반대를 요구하며 이날 오전 9시부로 파업에 들어갔다. 같은날 오후에는 대구 가스공사 본사에서 파업출정식을 했다. 공공연구노조 교육학술정보원지부와 청소년활동진흥원지부는 이날부터 무기한 간부파업에 들어갔다.



배혜정 기자
윤자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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