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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 노동인권은 없다최영연 공인노무사(민주노총 법률원)

▲최영연 공인노무사(민주노총 법률원)

어느덧 찾아온 가을, 추석 명절을 앞두고 4명의 건설노동자들이 민주노총 법률원을 찾았다. 이들은 천안의 한 건설현장에 배관기술자로 취업해 발주처와 1차 도급관계인 A업체에 최초 고용됐다. 건설노조 조합원인 노동자들은 원수급인 A업체에 서면근로계약서 체결과 개인 안전보호장구 지급을 요구했다. 원수급인 A업체는 근로계약서에 사업주 서명날인을 차일피일 미루더니, 며칠 후 다른 업체에 배관업무를 하도급줬다면서 B업체와 근로계약서를 쓰라며 회피했다. 그러나 하수급인이라는 B업체도 근로계약서 작성을 미루더니 C업체에 재하도급을 줬다며 C업체와 근로계약서를 쓰라고 떠넘겼다. A·B·C업체는 건설현장에서 같은 사무소를 쓰고 있다.


노동자들은 고용노동청에 근로기준법 등 노동법 위반으로 진정을 제기했고, 마지못해 C업체가 근로계약서를 쓰자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노동자들은 C업체와 서면근로계약서를 작성했는데, C업체는 근로계약서 작성 2시간 만에 구두로 노동자들에게 해고를 통지했다. C업체 현장소장은 “위에서 해고지시가 내려왔다. 더 이상 커버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이들 노동자는 노동법상 권리를 요구했다는 이유만으로 해고를 당했을 뿐만 아니라 해고당하기 직전까지 일한 대가인 임금도 받지 못했다. 노동자들은 A·B·C업체 3곳을 피고소인으로 해서 노동청에 체불임금 고소장을 접수했다.

추석은 다가오고 노동자들은 애가 타는데 노동청에서는 아무 연락이 없고, 업체들은 서로 자기들은 사용자가 아니라고 떠넘겼다. 노동자들이 추석을 앞두고 노동청에 찾아가 “추석 전에 해결하라”고 근로감독관에게 민원을 제기하자, C업체에서 “추석이니 인정상 조금 주겠다”는 답변과 함께 체불임금 일부만 지급했다.

노동자들은 최초 채용시 A업체가 채용건강진단을 요구해 A업체가 지정한 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은 뒤 건강진단서를 제출했고, A업체는 건강진단서 비용을 지급하겠다는 약속까지 했다. 뿐만 아니라 최하위 수급인 C업체가 노동청·노동위원회에 제출한 ‘안전교육일지’에는 A업체 현장소장과 안전관리자가 담당자로 기재돼 있고 근태관리까지 했음에도 원수급인 A업체는 자기들은 사용자가 아니라고 발뺌하고 있다.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제5조3항1호는 ‘건설현장에서 이뤄지는 업무’는 파견이 불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추석이 지난 지금도 노동자들은 법적으로 부당해고와 체불임금을 다투고 있다. 원청 A업체와 하수급인 B·C업체는 서로 사용자가 아니라고 책임을 회피하면서도 “노동자들이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고 임의로 퇴사해 손실과 피해를 발생시켰다”며 “건설현장의 질서를 어지럽혔다”는 이유로 해고는 정당하다고 우기고 있다. 개인 안전보호장구 지급과 근기법 준수를 요구한 것이 공포 분위기 조성이라는 것이다.

불법 다단계 하도급 구조에서 노동인권은 없다. 건설현장은 다른 현장에 비해 안전사고가 많이 발생한다. 지난해 건설현장에서 493명이 사망재해를 당했다는 통계가 있다.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노사관계에 따른 재해율을 분석한 결과를 보면 건설업에서는 노사 간 신뢰가 쌓이고 협조적일 때 재해율이 0.53%인 반면 비신뢰적·비협조적일 때에는 1.72%로 나타났다고 한다. 하지만 검찰과 경찰은 건설노조의 산업안전활동을 ‘떼쓰기’로 매도하고 공갈협박으로 둔갑시킨다.

건설현장 불법 다단계 하도급이 부실시공의 원인이 돼 대다수 시민의 재산권과 생명을 위협하고 있는데도, 정부에게 이를 근절하겠다는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건설현장에 만연한 임금체불과 안전사고,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근기법 위반 등 노동인권 침해가 단지 악질 사업주 문제만이 아니라 불법 다단계 하도급 구조 때문이라는 점은 이제 건설노동자 당사자뿐 아니라 국민도 인식하고 있다. 정부는 건설현장 불법 하도급 근절과 그것에서 비롯되는 각종 노동조건 악화를 개선하기 위해 근본적이고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최영연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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