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만간 산업현장에 단체협약 시정명령 바람이 거세게 불 것으로 전망된다. 고용노동부가 올해 4~6월 위법하거나 불합리한 것으로 분류한 단협과 관련해 자율개선 권고를 한 사안만 1천503건이다. 노동위원회 의결과 시정명령은 예정된 수순이다. 1천개 안팎의 단협이 시정명령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1998년부터 제도가 시행된 뒤 노동위 시정명령 의결이 가장 많았던 때는 2010년으로 90건이었다. 그때와 비교해도 10배를 웃도는 시정명령이 나올 수 있는 상황이다.



MB 정권 때부터 정부가 단협 시정 주도



단협 시정명령 제도 폐지 혹은 개선을 요구하는 노동계가 가장 우려하는 것은 시정명령이 현장 노사관계에 가져올 파급력이다. 단협 시정명령 제도가 시행된 98년부터 2008년까지 10년 동안 노동위의 시정명령 의결이 9건을 넘은 해가 없었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행정관청이 시정명령을 요구하기보다는 노동자들이 단협에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9년 갑자기 35건으로 껑충 뛰더니 2010년에는 90건으로 급증했다. 그것도 노사 어느 한쪽의 문제제기가 없는 상황에서 정부가 나서 단협 시정을 밀어붙였다.

노동부와 행정자치부는 2009~2010년 공무원노조들의 정부 정책에 대한 교섭, 전임자 유급활동 보장 같은 조항을 문제 삼기 시작했다. 전교조와 각 지방교육청이 맺은 단협에 대해서도 비슷한 이유로 시정명령을 내렸다. 논란이 됐던 단협 내용을 규약에 반영했던 전교조와 전국공무원노조는 결국 정부에 의해 법외노조가 돼 버렸다.

이와 함께 2010년 7월과 2011년 7월 각각 전임자임금 지급 금지 및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와 사업 또는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제도가 시행되자 노동부는 금속노조 사업장을 중심으로 대대적인 단협 시정명령을 내렸다.

예컨대 △전임자임금 지급 △사무실·차량제공을 포함한 노조 운영에 대한 회사 지원 △유니온숍 △산별노조에 대한 유일교섭단체 인정 △부당해고 관련 대법원 판결이 나올 때까지 해고자에 대한 조합원 인정 및 회사출입 보장 △유효기간 만료를 이유로 한 단협 해지 금지 조항이 시정 대상이었다.

노동부는 문제의 단협 조항들이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의 강행규정을 위반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조운영에 대한 사측 지원이 부당노동행위라며 시정을 요구했는데, 이와 관련한 법원 판례는 엇갈리는 형국이다. 해고자 지위 보장이나 단협 해지 제한 조항의 경우 노사 자치의 영역에서 얼마든지 합의가 가능한데도 노동부가 무리하게 개입하고 있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노조가 부당노동행위 기소당하는 아이러니



일부 시정명령은 산업현장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유성기업은 2010년 단협 해지를 제한하는 내용에 관한 시정명령을 받았지만 금속노조는 시정을 거부했다. 그러자 사측은 창조컨설팅과 공모한 노조 파괴 시나리오에 단협 해지를 포함시켰고, 2012년 실제 단협을 일방 해지했다. 노동부의 시정명령이 2011년부터 올해까지 6년간 이어진 노사갈등과 노조탄압의 신호탄이 된 셈이다.

노동부와 법원은 "단협 해지를 제한하면 교섭지연 행위 같은 피해가 발생한다"는 논리를 댄다. 과연 그럴까. 유성기업을 포함한 여러 사업장 사례를 보면 단협 해지로 피해를 보는 쪽은 언제나 노동자들이었다. 단협 해지는 직장폐쇄·복수노조 설립과 함께 노조탄압 논란 사업장의 단골메뉴로 자리 잡았다. 노조에 대한 운영비 지원을 부당노동행위로 보는 정부의 그릇된 시각이 엉뚱한 피해자를 양산하는 셈이다.

서울에 있는 금속노조 소속 사업장의 사용자는 4년 전 노조에 지급한 1천만원의 노사발전기금 반환을 요구하고 있다. 노조 운영비를 지원해 부당노동행위가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노사발전기금은 노동자들이 체불임금을 포기하는 대신 받기로 한 것인데, 느닷없이 반환을 요구한 것이다. 최근 해당 사업장의 노조원들이 대규모로 탈퇴하자 마지막으로 남은 한 명의 조합원이 사측의 기금 반환 요구에 시달리고 있다

박주영 공인노무사(금속노조 법률원)는 “부당노동행위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종전에 지급한 기금이나 근로시간면제자 급여 반환을 요구하는 사례가 최근 늘고 있다”며 “마치 손해배상 가압류의 축소판 같은데, 신종 노조탄압 수단이 되고 있다”고 우려했다.

노동부가 2011년부터 올해 7월까지 내린 204건의 단협 시정명령 중 185건이 시정명령대로 바뀌었다. 19건은 노조 또는 사측이 시정을 거부했다. 그 결과 5건이 검찰에 의해 기소됐는데 4건이 노조를 대상으로 한 것이다.

기소된 사건 모두 노조 운영비 지원이나 전임자 인정에 따른 부당노동행위 혐의를 다루고 있다. 사용자가 아닌 노조가 부당노동행위로 기소되는 아이러니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



애초 타깃 민주노총에서 전체 노동계로 확대



올해 노동부가 단협 자율개선을 권고한 사안을 보면 기존에 문제 삼았던 유일교섭단체 조항과 노조 운영비 지원은 물론 퇴직자나 산재노동자 가족에 대한 우선·특별채용을 주요 대상으로 한다. 구조조정·전환배치·징계해고 등에 대해 노조와 합의하도록 한 조항에 대해서는 “위법하지는 않지만 노조가 인사·경영에 개입하는 불합리한 조항”이라며 시정을 유도하고 있다.

지금까지는 민주노총 주요 산별노조에 집중됐지만 한국노총 소속 사업장까지 그 범위가 대폭 늘어났다.

2011년부터 올해 7월에 나온 단협 시정명령 204건 중 한국노총 사업장은 6건에 불과했다. 그런데 올해 노동부의 자율개선 권고 대상을 보면 한국노총이 808건으로 민주노총(491건)보다 많다. 양대 노총이 “노동계에 대한 전면전 선포”라고 받아들이는 이유다. 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신군부가 노조탄압을 위해 도입한 제도를 부활시키려는 것이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신군부가 만든 제도, 폐지 목소리 커져



실제 단협 시정명령 제도는 신군부가 80년 12월에 처음 만들었다. 당시에는 위법한 단협뿐 아니라 ‘부당’한 단협까지 시정 대상이었다. 96년 12월 노사관계개혁위원회는 부당한 단협이 아닌 위법한 단협에 한해, 피해자의 청구가 있을 때에만 시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노조법 개정안에 합의했다. 그러나 현재 내용과 비슷한 정부안이 같은해 12월 날치기 통과됐고, 98년에는 시정명령 주체가 노동부에서 행정관청으로 바뀌었다.

헌법재판소는 2012년 8월 단협 시정명령 제도를 명시한 노조법 제31조3항과 벌칙조항인 제93조2호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그럼에도 단협 시정명령 제도를 폐지해야 한다는 주장은 끊이지 않는다.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노사협약 자치의 본질을 침해하는 데다 신종 노조탄압의 수단이 되기 때문에 폐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기덕 변호사(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는 “노사 단협에 위법소지가 있다면 소송으로 해결하면 되는데 굳이 시정명령 제도를 둘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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