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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노동자들이 파업하는 이유

한 국책금융기관 사무실에서 6명의 직원이 경직된 자세로 선 채 관리자에게 혼나는 사진이 화제가 된 적 있다. 사진 속 한 여성은 눈물을 훔치고 있다. 이런 식으로 국책금융기관에서는 직원들에게 성과연봉제 도입에 찬성한다는 개별 동의서를 받았다. 이런 채찍질로도 효과가 나지 않자 이사회를 열어 강제로 도입한 곳이 부지기수다. 민간은행도 상황이 별반 다르지 않다. 금융위원회는 가이드라인을 만들었고, 은행연합회는 이보다 강화된 성과연봉제 도입방안을 내놓았다. 산별교섭을 하지 않겠다고 사용자협의회를 탈퇴하는 극약처방도 했다.

금융노조가 예고한 23일 총파업이 현실로 다가왔다. 이번 파업은 금융노조 설립 이래 사상 최대 규모가 될 전망이다. 높은 파업 참여 열기는 그만큼 성과연봉제를 걱정하는 금융노동자들이 많다는 방증이다. 시중은행 노동자들에게 파업을 하는 이유를 들어 봤다.

성과연봉제, 시민들에게도 큰 피해
성낙조 금융노조 KB국민은행지부 위원장

   
▲ 성낙조 금융노조 KB금융지부 위원장

KB국민은행지부를 비롯한 금융노조 조합원 10만명이 23일 성과연봉제 저지를 위한 총파업을 벌인다. 금융과 공공부문 노동자들이 총파업을 통해 막아 내려는 성과연봉제는 ‘해고연봉제’‘노예연봉제’라고도 불린다. 왜냐하면 성과연봉제는 정부 2대 지침 중 하나인 ‘쉬운 해고’에 필요한 저성과자 판단 기준이 될 것(해고연봉제)이고, 금융노동자들에게 과도한 실적경쟁을 부추길 것(노예연봉제)이기 때문이다.

성과연봉제는 금융노동자뿐만 아니라 시민들에게도 큰 피해를 줄 수 있다. 실적에 쫓긴 나머지 불완전판매가 늘어날 것이고, 실적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 금융소비자들은 지금보다 더 금융기관에서 외면받을 것이다. 총파업 한 번으로 모든 걸 해결할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우리 금융노동자들은 단결과 투쟁으로 잘못된 것을 바로잡은 승리의 경험이 있다.

2009년 신입행원 초임삭감을 2011년 원상회복한 것이 바로 그 사례다. 신입직원들에게 말도 안 되는 희생을 강요했던 신입직원 초임삭감이 원상회복됐던 것은, KBS 스포츠월드(옛 88체육관)와 서울광장에서 수만명의 금융노동자들이 모였던 단결의 힘이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미지근했던 물에 있는 개구리가 ‘아직은 괜찮겠지’라고 생각하다가, 결국 뜨거워진 물속에서 자기도 모르게 죽고 만다는 이야기가 있다. 23일 총파업은 서서히 끓고 있는 성과연봉제라는 물속에 있는 금융노동자들, 그리고 금융소비자들을 꺼내기 위한 일이라는 점을 알아주시길 바란다.


9·23 총파업은 불법 정부에 맞선 합법 파업
박원춘 우리은행지부 위원장

   
▲ 박원춘 우리은행지부 위원장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불법 파업에는 책임을 물을 것이며 법과 원칙에 따라 엄중 조치하겠다. 명분 없는 파업을 즉각 철회하라”며 9·23 총파업을 비난했다. 또한 은행 인사담당자를 소집해 ‘무노동 무임금’ 원칙을 확실하게 적용할 것을 지시했다. 하지만 9·23 총파업은 합법적 파업이다. 조합원들은 쟁의행위 찬반투표에서 95.7%의 압도적 찬성으로 파업을 가결했다.

공기업과 민간금융기관의 사용자협의회 탈퇴를 종용하고 강제 동의서 징구, 이사회 의결 강행처리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노동조합의 동의 없이 불법적 노동개악을 시도한 정부가 정당한 파업을 불법 파업으로 규정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임종룡 금융위원장은 “파업 동참시 급여를 삭감하고 불법행위엔 사법 및 징계처리를 하겠다”고 했는데 9·23 총파업으로 발생하는 사태에 대해서는 위원장으로서 모든 책임을 질 것이다.

우리은행지부는 정부 정책 실패의 모든 책임을 노동자에게 전가하고 헌법과 노동법을 어겨 가며 해고연봉제 도입을 강요해 온 정권의 불법적 노동개악 시도에 맞서 끝까지 투쟁할 것이다. 법으로 보장된 합법적 파업을 가로막는 사용자측의 부당노동행위는 묵과하지 않겠다.


부자만을 위한 은행 두고 볼 수 없다
유주선 신한은행지부 위원장

   
▲ 유주선 신한은행지부 위원장

성과연봉제가 도입되면 금융공공성이 훼손된다. 은행은 민간은행이라 해도 공공성을 띠고 서민금융, 중소기업금융 등의 역할을 해야 한다. 은행원 연봉이 성과와 실적에 따라 수천만원이나 차이 나게 되면 돈 많은 부자들, 대기업 위주 영업에 몰두하게 된다. 일반 서민대출금리가 올라가고 각종 수수료 수입에 치중하게 될 것이며 서민과 중소기업의 피해가 예상된다. 파업을 하는 이유는 정부의 일련의 잘못된 금융정책을 바로잡기 위해서다. 최근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나 계좌이동제 등 서민에게 아무 도움이 안 되는 국민현혹성 상품들을 정부가 내놓으면서 은행끼리 과당경쟁을 부추기고 있다. 부자들에게만 유리한 상품이어서 깡통계좌가 속출했다. 해당 상품 과잉판매 때문에 정작 서민들에게 제대로 된 양질의 금융서비스를 제공하지 못한 것이다.

정부는 불법적 노사관계 개입을 중단해야 한다. 근로조건을 변경하려고 하면 사용자측은 법적으로 노조와 합의해야 하는데 정부는 금융공기업에 노조 동의 없이 불법이사회 개최를 통해 성과연봉제를 도입했다. 이를 민간은행으로 확산하려는 정책을 폐기해야 한다. 더군다나 정부는 성과연봉제에 쉬운 해고를 접목했다. 성과연봉제를 도입하려는 정부의 의도는 저성과자를 양산해 정부의 쉬운 해고 지침에 따라 사용자측 마음대로 직원을 해고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노조가 무력화된다. 정리해고·임금삭감·복지축소 등이 예상되기 때문에 성과연봉제 도입은 반드시 막아 내야 한다.


노동자를 부품처럼 만드는 비인간적 제도 막겠다
김창근 하나은행지부 위원장

   
▲ 김창근 하나은행지부 위원장

성과연봉제의 가장 큰 문제는 금융산업의 공공성과 건전성을 저해한다는 것이다. 결국 그 피해는 금융소비자와 국민에게 돌아간다. 금융업에 성과주의가 확산하면, 직원들은 실적을 내기 위해 불완전판매를 하게 된다. 더 나아가 범죄와 사기를 부추기는 유혹에도 취약해진다. 이는 전문가들이 하나같이 지적하고 있는 문제다.

우리는 이미 지난 2008년 키코사태와 2013년 동양그룹 사태 같은 대재앙을 경험했다. 키코사태 이후 어떤 일이 벌어졌나. 중소기업들의 연쇄도산과 그 결과 수많은 노동자들이 직장을 잃었다. 1천여개 기업이 피해를 봤고 그 피해액만 10조원이 넘는다. 때문에 키코사태 이후, 금융회사의 지배구조에 관한 법률(금융사지배구조법) 시행령에 성과급제 대상을 제한하는 조항을 넣어 과도한 성과주의를 규제해 놓은 것이다. 그런데 이제는 정부가 앞장서서 성과주의를 압박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금융업의 공공성과 직무윤리가 더욱 강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은 오히려 거꾸로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정부는 지금 무얼 하고 있나. 더욱이 은행에는 이미 여러 형태의 성과제가 도입돼 있는 상황이다. 은행별 편차는 있지만 성과에 따른 연봉 차이가 있는 것이다. 더 이상의 성과연봉제 확산은 위험한데도, 동일 직급에서 연봉을 50% 이상 차별하고 저성과자는 해고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동료를 적으로 만들고, 경쟁에서 지면 해고된다면 노동자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게 된다. 결국 정부와 자본이 원하는 건 노동자들을 비인간화하고, 기업의 부품으로 만드는 것이고 노동자를 모두 파편화시켜서 연대를 막겠다는 것이다. 성과연봉제를 반드시 중단시켜야 한다.


금융권 무너지면 전체 산업 무너진다
김근용 외환은행지부 위원장

   
▲ 김근용 외환은행지부 위원장

금융권에는 이미 성과급제가 광범위하게 도입돼 있다. 지금 금융현장은 은행원에 대한 실적압박과 성과경쟁이 적어서가 아니라, 너무 많아서 문제가 되고 있다. 최근 상황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살인적인 실적압박과 과당경쟁이 문제가 된 것은 비단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만이 아니다. 경영진이 우선순위에 두는 모든 상품에 대해 똑같은 일이 일어나고 있다.

과로와 스트레스로 죽음 직전까지 내몰리는 노동자들이 수없이 많다. 어느 한 조직의 문제가 아니라 금융권 전체가 그렇다. 지금도 이미 생지옥과 다름없는 금융현장에 정부와 사측은 성과연봉제를 도입하겠다고 한다.

지금까지의 경쟁상대가 ‘타행’ 또는 다른 영업점들이었다면 이제는 옆자리 동료가 첫 번째 경쟁상대다. 객관적 평가가 불가능한 개인성과를 임금 및 해고 결정에 반영하겠다는 것이 성과연봉제다. 조직이 정상적으로 운영될 리 없고, 고객과 은행을 생각하는 영업이 될 수 없다. 공멸의 지름길이다.

지금은 금융업이 타겟이지만 금융노조가 무너지면 전 산업, 전국의 모든 직장에 성과연봉제 봇물이 터지는 것은 시간문제에 불과하다. 금융노동자가 역사의 죄인이 될 수 있다. 성과연봉제를 결코 인정할 수 없는 이유다.

편집부  labor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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