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민수 청년유니온 위원장

하반기 신규채용 시즌이 이어지고 있다. 언론사는 ‘좁아진 문, 높아진 문턱’이라는 헤드라인으로 상황을 진단했다. 전경련이 500대 대기업을 조사한 바에 따르면 올해 신규채용 규모를 전년에 비해 줄일 것이라 응답한 비율은 48.6%나 됐다. 전년 조사에서 줄이겠다고 응답한 기업보다 12.8%포인트 높아진 비율이다. 취업준비생이 모이는 커뮤니티에는 자신이 지망하던 기업이 신규채용의 문을 열지 않았다는 우울한 소식이 오르내린다. 경영진들은 수년째 경기 불황을 이야기한다. 구직자들이 자신이 믿는 신을 향해 ‘경제가 성장하게 해 주세요’ 기도를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니 답답하다.

많은 전문가들이 ‘실업세대의 탄생’을 걱정하는 요즈음, 역설적인 조사 결과도 눈에 띈다. 지난 6월 한국경총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취업에 성공한 신입사원의 28%가 1년 이내에 퇴사를 한다. 당사자들은 끝없는 회식과 경직된 조직문화, 이유 없이 이어지는 야근, 그리고 성장의 전망을 찾지 못하고 조직의 부속품으로 전락한 자신의 모습을 비관한다. “어렵게 취업한 회사를 왜 때려치우냐”는 주변의 만류를 가까스로 이겨 낸 사람들의 선택이 이 정도 규모인데, 마음속에 상상의 사직서를 품고 있을 사람들의 속앓이는 말할 것도 없다.

인사담당자들의 고충도 들려온다. 최근 신입사원들은 스펙은 높을지언정 독립성과 문제해결 능력이 떨어지고, 조직에 대한 충성심이 떨어진다는 것이다. 개인주의적 성향이 너무 강해 한 조직의 팀으로 일하기 어렵다는 평가도 만연하다. 이를 반면교사로 삼아 향후에는 지원자들의 인성을 중심으로 선발하겠다는 기업들이 늘어난다. 악순환이다. 지원자 입장에서는 갖춰야 할 스펙이 하나 더 늘어날 뿐이다. 그리고 예비 신입사원에게 조직에 충성할 수 있는 ‘인성’을 검증하겠다는 마음이 앞서면, 정작 기업이 쇄신해야 할 공간은 줄어든다.

오늘날 기업들은 새로운 경험을 가진 직원을 적절한 업무에 배치하고 상호작용을 통해 조직의 구성원으로 성장시킬 역량을 갖추고 있는가. 소위 일을 못한다는 이유로, 아니면 그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젊은 사원에게 가해지는 은밀한 일터 괴롭힘과 폭력을 적절하게 제어하고 있는가. 부모의 직업이나 재산, 알고 있는 지인의 사회적 권위를 묻는 촌스러운 이력서를 아직도 쓰고 있지는 않는가. 애사심과 연대의식 고취라는 명분으로 신입사원들을 해병대 캠프에 보내거나 카드섹션을 시키는 경악스러운 사건들을 접하다 보면 진짜로 일을 못하는 건 젊은이들이 아니라 기업조직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오늘날 일터를 떠나는 사람들이 각자 간직한 사연과 고민을 다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서로 다른 개인들의 선택들이 일정한 수준을 넘어서게 되면, 우리는 이를 구조의 문제로 진단할 수밖에 없다. 취업을 위해 들이는 에너지와 일터를 떠나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상실감은 모두 우리 사회가 감당해 나가야 할 비용이다. 그런 점에서 오늘날 한국 사회는 몹시 비효율적이다.

바람이 있다면, 내가 앞서 언급한 나쁜 사례들을 정면으로 반박할 좋은 기업들의 모습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다양한 관점과 경험이 존중되며, 노동의 과정에서 배움과 성장이 있고, 강요된 충성이 아닌 합리적 전망으로 미래를 그려 나갈 일터가 많아지길 바란다. 좋은 일터가 경제적으로도 성공하고 일반화되는 사회가 정의로운 모습 아니겠는가.



청년유니온 위원장 (cartney13@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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