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윤영 빈곤사회연대 사무국장

성과연봉제 중심 임금체계 개편을 두고 노정 갈등이 극에 달하고 있다. 금융·공공·보건의료 노동자들은 9월 하순에 연쇄파업에 들어간다. 노조가 요구한 노정교섭에 정부는 반응이 없다. 정부는 2대 지침을 발표하고, 지침을 근거로 공공기관에 노동자 동의 없이 이사회 의결로 임금체계를 바꾸라고 채근했다. 노정 모두 물러설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시민·사회단체는 공공기관 성과연봉제 도입에 우려를 표한다. 93개 단체가 참여한 공공성 강화와 공공부문 성과퇴출제 저지 시민사회공동행동이 그 이유를 기고로 알려왔다. <매일노동뉴스>가 세 차례에 걸쳐 싣는다.<편집자>


기초생활 수급자 상담을 하다 보면 간혹 이상한 이야기를 듣는다. 최근 상담에서 들은 얘기다. 한 수급자가 구청으로부터 "자활사업 참여자 절반을 시장 일자리에 참여시키는 게 우리 구의 목표"라는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현재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는 근로능력이 있는 사람의 경우 자활사업에 참여하는 것을 조건으로 급여를 받는다. 취업할 수 있는 일자리는 개인 역량에 따라 결정되는데, 최근 몇 년간 자활사업 등 공공일자리가 아닌 시장 취업을 우선으로 하는 정책들이 관철돼 왔다. 그리고 이제는 복지 이용자에게 "당신이 복지를 떠나는 것이 우리의 목표"라고 언급하기에 이른 것이다.

이러한 목표가 실제 있는 것인지, 내부 지침이나 구두로만 전달된 정도인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언급이 아니더라도 근로능력이 있는 것으로 보이는 복지 이용자를 복지 바깥으로 내쫓으려는 노력은 최근 몇 년 사이 눈에 띄게 늘어났다.

근로능력 평가의 객관성을 강화한다며 국민연금공단이 해당 업무를 수행하게 됐다. 공단이 근로능력 평가 업무를 이관받은 뒤 ‘근로능력 있음’ 판정이 세 배 늘어났다. 근로능력이 있는 수급자는 평가를 통해 시장취업, 자활사업 참여 등의 경로를 역량에 따라 선택하도록 돼 있었지만 2014년부터는 지역별 고용센터에 의뢰해 시장 일자리 취업을 우선적으로 하게 됐다. 이 과정에서 지방자치단체와 고용센터가 대상자의 70% 이상을 고용센터의 취업성공패키지사업에 연계할 경우 기관평가 가점이 주어졌다.

왜 빈곤층을 ‘시장 취업’ 시키는 것이 성과 척도일까. 복지제도 안에 안주하지 않고 탈빈곤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정부 설명이지만 이는 현실과 동떨어진 얘기다. 복지제도에 들어오려는 사람 대부분은 이미 시장에서 실패를 경험한 이들이다. 이들을 무작정 시장으로 내몰아 다시 저임금·불안정 노동을 반복하게 하는 것은 탈빈곤을 위한 제도 취지에 역행한다. 이들에겐 안정된 일자리와 기초생활이 보장돼야 하고, 이를 통해 탈빈곤 경로를 모색할 수 있는 양분의 시간이 보장돼야 한다. 그러나 정부는 공공 일자리를 직접 제공하는 방식은 예산이 너무 많이 들어 비효율적이라고 일축할 뿐이다.

공공기관 노동자들에게 성과연봉제를 도입한다는 정부 발표에 우리는 이러한 것들을 염려한다. 이윤을 기준으로 한 척도 안에서 공공기관의 ‘공공성’이 지켜질 수 있을까. 이것은 장애인과 가난한 이들에게 어떤 칼날이 될까. 가난한 환자를 마다하지 않고, 행려병자를 치료하는 몇 안 되는 공공병원들이 제 역할을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건강보험료를 내지 못하는 이들에게 더 많은 건강보험 재정을 사용해야 하는 역설을 어떻게 성과로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인가. 실제 서울시동부병원은 성과연봉제를 실시했던 8년간 수익창출이 어려운 취약계층 환자보다 일반 환자와 보험환자를 중심으로 운영됐다.

몇 해 전 쪽방에서 만난 한 주민은 주말 내내 배앓이를 심하게 했는데도 민간병원은 비쌀까 봐 못 가고, 보건소가 문을 여는 시간을 기다리느라 병을 악화시켰다. 참으로 답답한 사람이라고 화를 내고 다신 그러지 말라고도 했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 민간병원의 문턱이 얼마나 높은지 알기 때문에 더 할 말이 없었다. 우리에게 공공성이란 가혹한 세상에 마지막 기댈 한 평의 땅 같은 것이다.

공공기관 종사 노동자에게, 공공기관의 공공성을 신뢰하는 국민 모두에게 이 한 평의 땅을 지키고 확대해 나가는 것은 중요한 과제다. 성과연봉제 저지를 위한 공공부문 노동자들의 파업을 지지한다. 파업 승리로 노동권과 공공성을 지켜 낼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자.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