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죽어도 못하겠다고 뒤에 숨으면 방법이 없잖아요. 상위 10%에 속하는 근로자들이 청년들에게 일자리 기회를 더 주기 위한 변화를 거부하겠다고 하면…. 중소기업 근로자나 청년들 입장에서 굉장히 억울함이 느껴진다는 거죠.”

이기권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 20일 정부서울청사에 진행된 기자회견에서 한 말이다. 금융·공공부문 노조들이 정부의 성과연봉제 확대시행 방침에 반대하는 연쇄파업을 앞둔 상황에서 나온 발언이다. 한마디로 임금체계를 바꿔야 청년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얘기다.

돌고 돌아 임금체계 개편이다. 정부가 추진하는 노동시장 구조개혁이 “고액 연봉자 임금 깎아 청년 일자리 늘리자”는 도그마에 기대고 있고, 이를 관철하려면 임금을 손쉽게 깎을 수 있는 시스템 재편이 선행돼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금융권과 공공부문에 성과연봉제를 확대하려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직무성과급 도입하면 임금차별 개선된다더니…

정부가 추진하려는 임금체계 개편은 연공급 체계를 직무성과급 체계로 바꾸겠다는 것이다. 정부는 근속연수에 따라 자동으로 임금이 오르는 연공급제가 우리 사회의 저성장·고령화 추세에 맞지 않고, 노동시장 차별 해소에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나이가 아닌 능력에 따른 보상체계를 마련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정부 주장에 대한 반론도 거세다. 노인빈곤 문제가 심각하고 공적연금 기능이 취약한 현실에서 연공급제가 노후를 버티게 하는 최소한의 지지대 역할을 하는데, 저임금에 호봉상승도 없는 비정규직과 형평성을 논하기 시작하면 ‘임금 하향 평준화’라는 결론을 피하기 어렵다는 우려다.

더구나 연공급제가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주도적 임금체계로 자리 잡은 것은 순전히 사용자들의 필요에 의해서였다. 고성장 시기에 연공급제는 낮은 수준의 초임을 유지하면서 숙련인력을 확보하게 해 주는 유효한 수단이었다.

외환위기 이후 은행권 임금체계는 크고 작은 변화를 겪었다. 큰 틀에서 집단성과급이 도입되고, 연공급과 직무급이 섞인 ‘병존형 직무성과급’이 확산됐다. 개별성과급이 전면 적용되지 않았을 뿐, 성과와 연동된 임금의 변동적 성격이 강해졌다.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임금체계가 연공급제 틀을 유지한 '혼합 임금체계'로 변하고 있다는 뜻이다.

정부 주장대로라면 은행권에서 꾸준히 이뤄진 직무성과 중심의 임금체계 변화가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임금차별 해소에 기여했어야 한다.

현실은 어떨까. 2007년 비정규직 관련법이 시행되자 은행들이 들고나온 분리직군제나 직무차등제는 정부 주장과 현실 사이의 거리를 보여 준다. 직무급제 도입으로 차별이 해소되기는커녕 직무급제가 차별을 정당화하는 수단으로 사용된 대표적인 경우다.

"정부의 성과주의 강요, 그 자체가 관치"

정부 주도 임금체계 개편 논란은 "감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 중국의 고사를 떠올리게 한다. 정부가 정책적 의도를 가지고 임금체계 개편 논의를 주도하면서 정작 임금을 둘러싼 노사의 진지한 논의를 가로막고 있는 탓이다. 형식적으로나마 산별교섭 체제를 유지해 온 은행 사용자들이 올해 3월 금융산업사용자협의회를 집단 탈퇴한 것은 건전한 노사관계를 해치는 주범이 다름 아닌 정부라는 것을 웅변한다.

정부가 은행권에 성과주의 문화를 강요하는 것은 관치금융의 전형이다. 정부가 특정한 정책적 목적을 관철하기 위해 은행 보상체계를 노동통제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윤석헌 서울대 경영대 객원교수는 “성과주의 문화를 강요하는 것은 그 자체가 관치이며 이런 방식으로는 진정한 의미의 성과 증진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보상체계는 어디까지나 보상체계를 적용받는 당사자인 임직원의 충분한 공감대를 바탕으로 시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가 주장하는 개별성과급 확대 방식이 아니더라도 ‘일자리 친화형’ 임금체계 개편의 길이 열려 있다는 의견도 있다. 김성희 고려대 노동대학원 교수는 “노동시간단축과 통상임금 판결을 통한 기본급 비중 확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과제를 역동적으로 결합하면서 청년실업 해결의 전향적 방안을 마련하는 정책혼합은 얼마든지 가능하고 또한 바람직하다”며 “문제는 기업의 비용부담인데, 이때 정부의 정책지원금이 임금체계 개편의 견인책으로 쓰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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