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준상 전 KBS 이사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개병제를 기본으로 한 군 복무체제를 모병제로 바꾸자는 논의가 시작되려는 듯하다. 지금은 대통령선거에 나설 뜻을 공개적으로 내비친 남경필 경기도지사가 제기했지만, 2012년 당시 민주당 대통령후보 경선 과정에서는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가 공약으로 내걸었다. 현재로선 모병제에 대한 반대여론이 우세하긴 하지만, 여론조사 결과 등을 보면 2012년과 견줘 반대의 강도가 10%포인트 이상 낮아진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모병제를 하려는 이유는 여러 가지다. 2012년이나 지금이나 공통점은 인구가 줄어서 50만~60만명의 군대를 유지하기가 어렵게 된다는 점이다. 군 전력의 강화, 양심적 병역 거부, 잦은 군대 내 사고, 군 입대 비리 등의 문제 해결도 그때나 지금이나 모병제를 도입하자는 공통된 이유를 이룬다. 모두 일리가 있다.

하지만 모병제를 통해 군 입대 비리를 예방하는 효과가 있다는 남경필 지사의 주장에는 상당한 어폐가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군에 갈지 말지 선택하게 되면 군에 안 가거나 편하게 가기 위한 목적 때문에 벌어지는 병역비리는 없어지는 게 당연하기까지 하다. 부유층만이 아닌 서민층 자녀도 군에 갈지 말지 선택하는 건 동일하니 문제가 아니라고 하지만, 이건 동등한 국방의 ‘의무’를 지지 않으려 한다는 문제의 핵심을 은폐하는 것에 해당한다. ‘부유층 자녀는 군대에 가지 않고 서민층 자녀만 가게 될 것’이라는 반론이 강력한 힘을 얻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한국 사회의 그동안 경험에 비춰 볼 때 수십년간 유지돼 온 병역의 ‘의무’ 체제를 순수한 병역의 ‘선택’ 체제로 바꾸는 데 심리적 저항감이 그만큼 큰 것이다. 군 복무기간을 줄이면서 개병제 취지는 유지하되 군의 핵심 전력을 모병제로 하자는 혼합 방안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런 혼합 체제에서 병역비리가 없어지거나 축소된다면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최근 모병제에 대한 반대 여론이 이전보다 상당히 줄어든 데는 북한과 견준 국방력 약화 우려 등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각장 큰 이유는 심각한 청년실업 문제가 아닐까 한다. 군대에 가게 되는 자녀를 둔 부모들이 직업군인으로서 군대를 일자리로 바라보게 되면서 반대 여론이 이전보다 줄어든 것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9급 공무원 수준으로 월 200만원 정도의 월급을 주는 직업군인이 15만~30만명 정도 된다면 심각한 실업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 그만큼 늘어난 게 아니냐는 얘기다.

실제로 2012년 김두관 전 지사의 모병제 방안을 보면 청년실업 문제의 해결과는 좀 거리가 있는 내용들을 찾아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군 복무 대신에 경제활동에 종사해 사회적 부를 창출할 수 있다’거나 ‘경제활동인구의 증가로 GDP 상승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등의 내용이 그렇다. 군 복무 대신 각종 경제활동에 참여할 수 있다고 가정하고 있는 것이다. 불과 5년 전이지만, 버젓한 일자리가 절대적으로 태부족인 지금의 상황과는 격세지감이 느껴질 정도다.

바로 이 지점이 2012년 모병제 논의와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는 게 내 생각이다. 2016년 모병제 논의에서는 경제적 측면, 특히 청년실업 해소 측면이 핵심을 이룬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모병제 도입 논의는 한국판 ‘군사적 케인스주의’(military keynesianism)라고 부를 수도 있겠다 싶다. 애초 군사적 케인스주의는 미국에서 군산복합체가 전쟁을 통해 유효수요를 창출하는 것을 두고 붙여진 부정적인 이름이지만, 직업군인 양성을 통한 청년실업 해소와 유효수요 창출이라는 측면에서 이런 명칭을 적용해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이런 경제적 측면 때문에 2012년 때와는 달리, 내년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모병제 논의는 시간이 흐를수록 관심과 논의가 더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앞서 강조했다시피, 한국 사회에서 순수 모병제 체제는 동등한 의무를 부담하지 않으려는 데서 빚어진 병역비리 문제를 은폐하는 효과를 낳고, 이는 필연적으로 ‘용병’ 논란으로 이어지게 된다. 개병제 체제가 지닌 동등한 의무의 취지를 기본으로 깔지 않는 한 사회 정의 문제에 부닥칠 수밖에 없다. 개병제를 적용한 일반병제와 모병제를 적용한 직업병제를 혼합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순수 모병제 체제에서 노블레스 오블리주 차원에서 군대를 가는 선택을 하지 않았다고 해당 당사자의 피선거권을 사실상 제약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의무 상황에서도 실현되지 않았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오히려 선택 상황에서 기대하기란 더 어렵다고 보는 게 상식에 부합한다. 모든 정당이 정치인이 되려는 사람의 경우 군에 갔다 와야 한다는 내규를 두고 있다고 해도, 기본권 침해를 이유로 헌법소원 대상이 될 것이다.

전 KBS 이사 (cjsang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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