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중공업에 다니던 ㄱ씨(질병 당시 53세)는 2013년 5월 협력업체 면담 중 입이 돌아가고 말을 잘 못하는 증상이 나타났다. 병원 진단 결과 뇌경색·우측편마비·실어증으로 판명 났다. 근로복지공단은 질병을 산업재해로 인정해 달라는 ㄱ씨의 주장에 대해 단기성·만성과로가 인정되지 않아 업무와 관련성이 낮다고 결정했다. 그는 발병 전 1주 59시간, 4주 60시간, 12주 57시간가량을 일했다. 공단은 이 정도는 과로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봤다. 재판부의 판단은 공단과 달랐다. 재판부는 ㄱ씨가 상당한 장시간 근로를 했다며 산재를 인정했다.

제약회사 영업직으로 일하던 ㄴ씨(사망당시 48세)는 2012년 4월 거래처 병원 의사·직원들과 토요일 등산에 나섰다가 등반 중 갑자기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응급실로 후송됐으나 쓰러진지 2시간 만에 급성관상동맥증후군으로 사망했다. 공단은 ㄴ씨에 대해 주말 산행은 불가피한 작업의 일환이라고 볼 수 없고, 스탠드 삽입술 시행을 받은 전력 등 기존 질병 상태에서 자연경과적으로 동맥증후군이 발생했다고 보고 산재를 불승인했다. 반면 재판부는 고인이 주말에도 일을 하는 등 체력적 부담을 느꼈을 것으로 보인다며 산재로 인정했다.

공단은 산재 불승인, 법원은 산재 인정 '왜?'

업무상 재해나 질병이 발병할 경우 해당 노동자나 유족은 근로복지공단에 산업재해보험급여 혹은 유족급여 등을 신청할 수 있다. 질병으로 인정받지 못할 경우 재심사청구를 하고, 이마저도 불인정될 경우 행정소송 제기가 가능하다.

19일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에 따르면 공단은 업무상재해·질병이 아니라고 판단했으나 법원에서 최종적으로 산재로 인정되는 사례가 많다.

2014년 기준 공단의 행정소송 패소율은 11.2%다. 그런데 패소가 예견된 사건에 대해 공단이 조정을 요청해 소송을 취소하고 산재로 인정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2012년에는 375건, 2013년 446건, 2014년 586건으로 해마다 늘고 잇다. 패소가 예견된 사건을 포함시켜 계산할 경우 2014년 공단의 행정소송 패소율은 46.6%로 늘어났다.

뇌심혈관계 질환에 대한 공단의 산재불승인 비율도 높았다. 연구소가 확인한 결과 지난해 뇌심질환 소송은 모두 333건 이뤄졌다. 그 중 같은해 공단이 패소로 확정된 경우는 43건(12.9%)이다.

"노동부 고시에 매몰돼 획일적 산재 심사 이뤄져"

연구소와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한정애 의원은 이날 오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의 뇌심혈관질환 심의 과정의 쟁점과 개선 과제'를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뇌심혈관 질환에 대한 공단의 산재심사 문제점을 점검했다. 토론회 발제자로 나선 권동희 공인노무사(법률사무소 새날)는 "패소 사례를 분석한 결과 공단이 고용노동부 고시에 매몰돼 획일적으로 산재 심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로 인해 업무와 질병의 상당인과관계를 기준으로 심사하지 않고 불승인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했다.

노동부는 올해 7월1일 '뇌혈관질환 또는 심장질환 및 근골격계 질환의 업무상 질병 인정 여부 결정에 필요한 사항'이라는 고시를 발표했다. 2013년 발표한 고시와 내용은 바뀌지 않았다. 여기에서 노동부는 "발병 전 12주 동안 업무시간이 1주 평균 60시간(발병 전 4주 동안 1주 평균 64시간)을 초과하는 경우에는 업무와 발병과의 관련성이 강하다"고 규정해 놨다. 앞서 ㄱ씨와 ㄴ씨는 이 같은 기준에 부합하지 않아 산재가 불승인 된 것이다.

"상당인과관계 여부 우선시 해야" … "국감에서 제도개선 요구"

권 노무사는 "고시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각 경우마다 질병과 업무의 상당인과관계 여부를 면밀히 검토해서 산재 여부를 판단해야 하는데도 공단은 그러지 않고 있다"며 "주 60시간 이상을 과로로 보는 노동부의 획일적인 고시는 위법에 해당한다"고 주장했다.

토론회에 참석한 이혜은 교수(가톨릭대 직업환경의학과)도 "공단의 행정소송 패소 사건을 검토했더니 공단의 과로 평가가 편협하게 이뤄진 게 확인됐고 이로 인해 해당 노동자가 소송까지 가는 고통을 겪게 만들었다"며 "과로의 평가는 노동부 고시의 기준시간 이외에도 활용할 수 있는 많은 정보들을 최대한 반영해 과로로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한정애 의원은 인사말에서 "만성적으로 과로하는 노동자의 산재 인정을 돕는다는 취지로 2013년 노동부 고시가 개정됐지만 2014년 뇌심혈관질환의 산재 승인율은 22.5%에 불과하다"며 "공단과 법원의 판단 기준 간격이 매우 커지고 있는 상황을 국정감사에서 따지고 제도개선을 노동부에 요구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토론회에는 이철 근로복지공단 요양부장·임성호 한국노총 산재국장·최민 직업환경의학전문의·이희자 공인노무사가 토론자로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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