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효진 변호사(경기도의회)

한진해운 법정관리로 인해 세계적 물류대란이 우려되고 소속 근로자들의 고용불안이 커져 가고 있다. 특히 컨테이너선사인 사업 특성상 화주인 수출기업은 물론이고 하역과 운송 등의 협력업체 소속 근로자들의 위기감도 커지고 있는데, 단지 국내 문제로 끝날 것 같지 않다. 당장 한진해운 소속 직원과 선원 중에도 외국인이 상당수다.

한진해운처럼 국내기업의 해외진출에 따른 외국인 고용이나, 외국인고용허가제 도입으로 인한 국내에서의 외국인 채용 또는 외국기업의 국내 진출에 따른 내국인 고용 등 다양한 형태의 국제적 근로관계가 증가하고 있고 그에 따른 분쟁 발생도 늘고 있다.

미국 기업과 근로계약을 체결한 한국인이, 또는 우리나라 기업과 근로계약을 체결한 미국인이 우리나라에서 근무하다 특별한 귀책사유 없이 해고를 당한 경우 상대적으로 해고가 쉬운 미국법에 따라 그냥 감수할 수밖에 없을까. 아니면 근로기준법상 정당한 이유 없는 해고임을 이유로 해고무효를 다투는 소송을 우리나라 법원에 제기할 수 있을까. 사용자와 근로자 간에 근로계약에 관한 분쟁은 미국법에 따르기로 미리 합의한 경우엔 어떨까. 이처럼 이국적 요소가 있는 노동분쟁에서는 재판관할권 유무와 준거법 결정이 선결적 문제로 등장한다.

대부분 국가는 근로계약 당사자인 사업주와 근로자 간 힘의 불균형을 인지해 상대적 약자인 근로자를 보호하고 실질적 평등을 구현하려는 취지의 법체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 보호 정도는 사회경제적 여건을 고려한 각국의 정책 목표에 따라 서로 다르다. 따라서 국제적 근로관계에서 당사자가 소를 제기한 경우 법원이 어느 나라 법률을 기준으로 판단할 것인지, 즉 준거법을 무엇으로 할 것인지에 따라 근로자에 대한 보호 수준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일반적인 계약의 경우 당사자 자치 원칙에 따라 준거법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원칙을 근로계약에도 엄격히 적용하면, 경제적으로 유리한 지위에 있는 사용자가 자기에게 유리한 외국법을 준거법으로 지정해 근로기준법 등 근로자 보호를 위한 강행법규 적용을 회피할 수 있게 되는 문제가 발생한다.

이에 우리나라는 2001년 개정된 국제사법에 따라 근로계약의 준거법 결정과 관련해 근로자 보호를 위해 당사자 자치의 원칙을 일정 범위에서 제한하고 있다. 즉 근로계약의 경우 당사자가 준거법을 선택하더라도, 준거법을 선택하지 않은 경우 지정되는 준거법 소속 국가의 강행규정에 의해 근로자에게 부여되는 보호를 박탈할 수 없다. 준거법을 선택하지 않은 경우 지정되는 준거법은 근로자가 일상적으로 노무를 제공하거나 사용자가 근로자를 고용한 영업소가 있는 국가의 법으로 정하고 있다.

또한 소송을 제기한 경우 해당 법원이 그 사안을 판단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지, 즉 재판관할에 대해서도 근로자가 제기하는 소송의 경우에는 더욱 확대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법원은 당사자 또는 분쟁이 된 사안이 대한민국과 실질적 관련이 있는 경우에 국제재판관할권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근로계약의 경우 근로자가 자신의 일상적 노무제공자 또는 사용자가 그를 고용한 영업소 소재지의 국가, 또는 현재 그러한 장소가 없다면 최후로 일상적 노무를 제공했거나 사용자가 그를 고용한 영업소가 있었던 국가에서도 소를 제기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서면 관할 합의와 관련해서도 부당한 합의를 방지하기 위해 이미 분쟁이 발생한 경우인 사후적 합의나, 근로자에게 법이 허용하는 관할법원에 추가해 다른 법원에 제소하는 것을 허용하는 사전적 합의 경우만 인정하고 있다.

국제적 요소가 있는 사안을 규율함에 있어 가장 적절한 준거법이 무엇인지 정하는 국제사법은 매우 형식적이고 가치중립적 성격이 강하다. 그럼에도 특별히 근로계약 관계에 대해서 별도 규정을 둔 것은 그만큼 사업주에 비해 근로자의 지위가 열악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씁쓸하긴 하지만, 늘어나는 국제적 근로관계 분쟁에서도 근로자의 권리가 ‘법대로만’ 보장될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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