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주영 인더스트리올 아태지역 전력네트워크 의장

전기요금 누진제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럽다. 언론과 정치권이 나서면서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된다. 필자가 이 지면을 통해 누진제에 대한 소고를 밝힌 바도 있지만, 사실 누진제에 대해 무려 10여년 전부터 정치권과 학자, 오피니언 리더, 청와대와 관련 부처에 호소하는 편지도 쓰고 정책요구서를 전달하면서 합리적 개편을 읍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누진 폭과 단계를 합리적으로 개선하는 한편, 기업이나 사무실 등 대형빌딩에서 사용하는 전기에 대해서는 페널티와 인센티브를 강화해 국가 차원에서 에너지 사용의 효율성을 강화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묵묵부답, 공염불이었다. 에너지 절약이나 물가안정 논리에 밀리기도 했고, 엉뚱하게도 부자감세 논란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그 와중에 민자 발전이 확대되고 듣도 보도 못한 전력거래 제도로 인해 전기요금뿐만 아니라 전력산업정책 전체가 만신창이가 됐다.

그 중심에 그들이 있었다. 80년대 중반부터 지금까지 전력 민영화를 줄기차게 주장하며 ‘힘’과 ‘돈’의 편에 서서 그들의 논리에 충실했던 사람들. 학자라기보다는 돈과 권력의 논리를 추구하며 그것이 던져 주는 알량한 떡고물에 더 충실했던 사람들이 전력산업 민영화의 중심에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주장은 한결같았다. 정부 규제가 아니라 시장경쟁 효율성을 통해 에너지 가격을 합리화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캘리포니아 대정전이 엔론 같은 부도덕한 기업에 의해 확대됐고, 미국과 캐나다 동부지역 대정전, 이탈리아 전면 대정전 같은 사태가 민영화로 인한 불필요한 거래 확산 때문이었다는 것이 지적되면서 민영화와 경쟁은 더 이상 전력산업 정책에서 고려 대상이 될 수 없었다.

그럼에도 이들의 주장은 단 한 번도 제대로 수정되지 않았다. 연구회를 조직해 정부와 자본가의 편에 서서 요구하는 대로 하는 ‘연구’를 독식하고, 정부 산하 각종 위원회와 연구소·공기업 요직에 중용되는 혜택을 구가하면서 그들만의 잔치에 골몰했다. 그리고 전력산업에서 발생하고 있는 정전이나 가격폭등 같은 전력산업의 심각한 문제는 시장경쟁과 민영화만이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2011년 9월 전국적으로 발생한 순환정전 사태에 대해서도 문제의 핵심을 비껴간 채 “전력산업에서 올바른 가격신호를 주지 못한 것이 9·15 정전사태의 근본 원인”이라며 민영화를 통한 시장경쟁만이 해법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자신들이 주장해 온 민영화와 시장경쟁, 그리고 그에 따른 정보의 비대칭 문제, 전력시스템 운용능력 약화 같은 핵심적인 정전 원인은 숨긴 채 말이다.

그랬던 그들이 이제 전기요금 개편에 나섰다. 시장에 의한 가격을 주장하던 그들이 집권 여당의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 TF팀에 합류하면서 정작 누진제 개편이 목적이 아니라 누진제를 빙자한 ‘시장’과 ‘민영화’를 위한 포석을 둔 셈이 됐다. 지난 7월 정부가 기능조정을 내세우며 전력산업의 판매경쟁을 도입해 다양한 사업자와 다양한 요금제를 선보이겠다고 발표했기 때문에 여당발 전기요금 개편은 결국 민영화를 위한 신의 한 수가 될 가능성이 높고 그 마중물로서 ‘그들’이 나서게 된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전기요금 누진제 개편의 첫 일성이 바로 선택형 요금제 검토 같은 이른바 소비자인 국민의 선택을 강조한 것이다. 민영화를 통해 다양한 상품이 시장에서 경쟁하고 소비자는 이를 합리적으로 선택함으로써 효용이 증가한다는, 이른바 경쟁을 통한 효율과 소비자 선택권을 주장해 온 이들의 한결같은 주장이 엉뚱하게도 누진제 개편의 ‘방향’이 된 셈이고, ‘목적’이 된 셈이다. 어찌 된 일인지 이들 주장에 대해 정치권이나 언론, 전문가들조차 그 어느 누구도 문제제기하지 않은 분위기다 보니 이제 남은 일은 전기요금을 내세운 민영화의 착실한 전개만이 그들의 할 일이 된 셈이다.

10여년 전 참여정부 시절, 필자는 당시 전력산업 배전분할 정책에 관해 청와대 비공개 토론에 참여한 적이 있었다. 당시 함께한 조합간부가 ‘그들’의 수장 격인 이아무개 서울대 교수를 향해 “국민의 재산을 팔아넘기는 매국노”라며 거침없이 독설을 퍼부었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하지만 지금 그 인사는 우리나라 핵심 에너지 공기업 사장으로 건재하다. 무려 14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들만의 잔치는 여전히 진행형인 것이다.

반면 국가와 국민을 위해 민영화가 아니라 민주적 지배구조를 통한 통합적 에너지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해 온 많은 학자와 전문가들은 눈에 보이지 않은 홀대를 받으며 철저히 배제되고 있다. 가진 자와 그들의 편이 아니기 때문에 오로지 반대 목소리만으로 치부되고 있고, 연구 활동은커녕 합리적 토론이나 제대로 된 발언기회조자 보장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단언컨대, 가진 자들의 편에 서 있는 그들만의 잔치가 계속되는 한 전기요금 개편은 결국 가진 자가 원하는 민영화의 스위치가 될 뿐이다.

인더스트리올 아태지역 전력네트워크 의장 (peoplewin6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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