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쓰다 버린다. 자본이 노동을 취급하는 방식이다. 아니다. 자본이 노동을 대하는 기술이라고 말해야겠다. 인간의 역사를 읽어 보면 노예도 농노도 그렇게 취급되지 않았다. 그저 쓰다 버리지는 않았다고 배웠다. 그런데 말이다. 이 자본의 세상에서 사용자 자본은 노동자를 쓰다 버린다. 그걸 당연하다고 여긴다. 이렇게 취급되는 노동하는 인간의 지위로 보자면 인간의 세상은 진보해 왔다고 말하기 어렵다. 그런데도 우리는 발전의 역사라고 말해 왔다. 이 세상에 태어날 때부터 주인으로서 자유와 권리를 타고난 이들이 아닌, 노동하는 인간에게 역사는 자유와 권리를 향해 전진해 왔던 거라고 가르쳤지만 오늘 나는 알 수가 없다. 정말 그럴까. 오늘 이 나라에서는 쓰다 버린다. 노동자는 쓰다 버리면 그만이다. 사용자 자본이 노동자를 쓰다 버리는 방법은 다양하다. 사용자가 경영사정이 어렵다고 내쫓는 정리해고가 있고, 희망과 명예라고 포장한 퇴직처분도 있으며, 권고하고 요청해서 퇴직시키는 권고사직과 의원면직도 있고, 뭐 이런 포장 없이 내쫓는 해고도 있다. 그런데 사용자는 이런 거 말고도 좀 더 교활한 짓도 한다. 그들은 대기업 사업장에 입사해 근무해 왔다. 회사의 필요로 합작사를 설립하게 돼 회사 방침에 순응해서 합작사로 이전했는데 근무하다가 버려졌다. 처음부터 쓰다 버릴 목적으로 합작사를 설립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고, 당초 예상과는 달리 합작사가 운영되지 않자 그런 것일 수도 있다. 최근 대법원에서 심리불속행으로 기각판결이 선고된 한 사업장은 합작사의 사업 전망이 없게 되자 지분을 양도하고, 사업장이 폐업할 때까지 버틸 자금을 인수자에게 주고서 정리하는 일을 하게 한 사례였다. 합작사를 설립해서 보낼 당시에는 장차 경영방침이 변경돼 합작 철수를 하게 되면 롤백, 즉 되돌아올 수 있다고 부서장들이 설명해서 이를 믿고 노동자들은 합작사로 이전했다. 당시 노동자들은 문서로 약속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문서로 작성해 주지 않은 것이 해당 기업의 문화라면서 '롤백'이 원칙인 걸 알고 가라 해서 믿고 갔던 것이 그들의 잘못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것은 자신의 운명을 결정지은 치명적인 잘못이었다. 노동자들은 졸지에 합작사와 함께 쓰다 버려지는 신세가 됐다. 우리 사무실에서 진행했던 안타까운 사건이었다. 수개월 전 나는 심리불속행 판결을 염려해 담당 변호사가 작성한 초안을 몇 번이고 수정하도록 해서 상고이유서를 대법원에 제출하게 했는데 쓸데없는 일이 되고 말았다.

2. 하긴 뭐 이런 하소연도 이 합작사에 새로 채용된 노동자의 경우는 할 수도 없었다. 이 세상에서 노동자는 그저 쓰다 버림을 당해도 뉴스거리도 되지 못하는 세상이니 상고이유서로도 억울함을 다 토로할 수는 없었다. 오늘도 쓰다 버린다. 그것이 이 자본의 세상에서 노동자의 운명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법은 노동자 지위를 그렇게 규정짓고 있다. 주인으로 세상에 태어나지 않은 인간은 근로계약을 통해서 사용자가 사용하는 노동자가 된다. 이렇게 해서 천부의 인권으로 자유를 가지고 태어난 인간이 근로계약을 통해서 사용자에 복종하는 노동자로 전환되는 것이다. 그리고 생존의 수단인 임금을 대가로 지급받는다. 자유로운 인간으로 이 세상에 태어났지만 이 세상에서의 생존이 그를 자유 없는 인간으로 살아가게 한다. 스스로 세상의 주인이 아닌, 인간이 이 세상을 살아가기 위해선 사용자에게 자유를 반납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제 자유를 내주고서라도 노동자에겐 사업장이 절박한 것이다. 그런 노동자에게 해고는 이 세상에서 자유를 내주고서 취급한 지위를 박탈하는 것이고, 생존을 위협하는 것이다. 노동자가 근로계약을 제대로 이행하지 않은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도, 오늘 이 나라에서 해고는 노동자의 운명이 돼 버렸다. 인원을 감축할 경영 사정이 있으면 사용자가 노동자를 해고할 수 있다고 근로기준법과 법원의 판결은 선언해 왔다. 그저 사용자의 경영 사정에서 인원을 감축할 객관적인 합리성이 존재하면 근로기준법 제24조가 규정한 정리해고의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인정된다고 법원은 판결해 왔다. 그것이 생산성 합리화든 뭐든 인원을 감축할 경영 사정이 인정되기만 하면 정리해고를 할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가 인정된다는 것이니 이 나라에서 정리해고는 노동자의 운명이 돼 버렸다. 회사가 어려우면 쓰다 버리라고 우리의 법은 노동자의 운명을 규정짓고 있다.

3. 오늘은 구조조정이 특별한 일이 아니다. 사업장 사정으로 노동자를 내쫓는 것이 특별한 일이 아니다. 사업장의 영업양도와 매각, 합병과 분할, 폐업과 해산, 그리고 회사 회생과 파산 등 도산 등이 아니라도 사업장에서 인적 구조조정은 수시로 행해진다. 이미 법제화돼 있는 정리해고제도, 최근 고용노동부 안내에 따라 사업장마다 도입하고 있는 성과부진자 퇴출제도 상시적으로 노동자를 사업장에서 내쫓는 인적 구조조정을 위한 수단이다. 그나마 정리해고의 경우 적어도 인원을 감축할 경영 사정은 존재해야 하는 것이지만, 성과부진자 퇴출제는 이런 경영 사정도 필요 없다. 노동자 중 일부를 업무능력 결여 내지 근무성적 부족의 성과부진자로 사업장에서 내쫓겠다는 것이다. 노동으로 쌓아 올린 사업장인데 이래선 안 되는 것이라고 해야 마땅하다. 법적으로는 아니라도 노동자를 이렇게 취급해선 안 되는 것이다. 당장 쓰다 버림을 당하는 노동자야 일부라지만 사용자가 노동자를 이렇게 취급하는 걸 노동자들은 지켜보고 있다. 아무 말도 아무런 행동도 어떤 연대도 하지 않아도 그들은 자신도 사용자가 그렇게 취급할 수 있다는 것을 지켜보고 있다. 사실 쓰다 버리는 기술은 사용자만 사용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사용자가 노동자를 그런 취급하면 노동자도 얼마든지 사용자 회사를 그렇게 취급할 수 있다. 사용자 회사가 쓰다 버리는 쓰레기가 아니라면 노동자도 쓰다 버리면 안 되는 인간으로 대해야 마땅하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오늘 이 세상은, 특히 이 나라는 노동자는 어쩔 수 없이 쓰다 버림을 당하는 운명이라고 규정돼 있으니 말이다. 고용상 권리로 보자면 쓰다 버려지는 척박한 나라에서 살아가야 하는 노동자는 자신의 처지를 분명히 알고서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수밖에 없다. 법이, 그에 따른 근로계약이 쓰다 버리는 노동자로 규정짓고 있어도 그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 노동자는 그걸 숙명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세상이 노동자를 버린다 해도 노동자는 그 세상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척박한 대지에 나무를 심고 씨를 뿌려 노동자는 살아갈 꿈을 꿔야 한다.

4. 법과 근로계약이 버렸어도 노동자는 버릴 수가 없다. 노동자는 자신의 운명을 버릴 수가 없다. 그러니 척박한 대지에서 쓰다 버릴 수 없도록 노동의 꿈을 꿔야 한다. 이 세상에서 노동자는 단체협약으로 자신의 권리를 꿈꿀 수 있다. 적어도 사업장에서 내쫓기지 않을 수 있는 권리 정도는 꿈꿀 수 있다. 이 대한민국의 헌법과 법률은 노동자들은 노동조합이라는 단결체로 교섭과 투쟁으로 법과 근로계약이 규정지은 노동자의 운명, 쓰다 버리는 해고의 운명을 제한하는 단체협약을 체결할 수가 있다. 그러니 이 세상에서 쓰다 버려지는 노동자의 운명은 노동자들이 함께 거부하면 얼마든지 쓰레기통에 버릴 수가 있다. 사실 위에서 언급한 대법원 심리불속행 사건도 합작사로 이전할 당시에 노동조합이 있어 ‘롤백’을 문서로 보장받기만 했어도 오늘 그들의 운명은 달라질 수 있었다. 무노조경영 방침에 순응하느라 자신의 고용상 권리를 요구할 노동조합이 존재하지 않았다.

오늘은 구조조정의 날이다. 이 나라에서 수많은 사업장에서 노동자를 내쫓는 인적 구조조정이 행해지고 있다. 거기서 노동자는 쓰다 버려지는 존재로 취급되고 있다. 그 대부분의 사업장에서 노동조합은 존재하지 않으니, 쓰다 버리는, 노동에 대한 자본의 기술이 제한 없이 법과 계약의 힘으로 행해지고 있다. 그나마 노동조합이 있는 사업장이라고 해도 사용자의 인적 구조조정을 제한하는 경우는 드물다. 법과 근로계약에 의한 사용자의 권한을 제한하지 못하는 단체협약이 대부분이다. 벌써 오래전부터 사용자가 구조조정을 행해 왔는데도 그걸 제한하는 단체협약을 찾아보기 어렵다. 오늘 이 나라에서 정리해고와 성과부진자 퇴출이 크게 문제가 되는 것도 어찌 보면 그걸 제한하는 단체협약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쓰다 버리는 것이 사용자 자본의 기술로서 법이 보장한 것이라고 해도, 단체협약으로 제한할 수 있으니 우리는 오늘 쓰다 버려지는 것이 노동자의 숙명일 수 없다고 노동조합은 말해야 한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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