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내년 12월20일 제19대 대통령선거가 치러진다. 2017년은 노동운동 진영에서 정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해다. 민주노총은 95년 11월 창립선언문에서 '민주세력과 연대한 정치세력화'를 주요 목표로 내걸었다. 97년 국민승리21 때부터 따지면 20년, 2000년 민주노동당 창당을 기점으로는 17년이 된다.

민주노총은 국민승리21 창립과 민주노동당 창당에 함께했다. 민주노동당은 2004년 총선에서 10석을 확보해 첫 원내 진입에 성공했지만 2008년 분당 사태를 겪었다. 분열과 통합 과정을 거쳐 지금은 여러 개의 진보정당이 존재하고 있다.

민주노총은 2008년 분당 사태 이후 배타적 지지 방침을 철회한 뒤 정치방침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 4·13 총선에서는 민주노총이 지지한 정의당 의원 6명과 울산 노동자의원 2명 등 8명이 원내에 진입했다.

민주노총은 지난달 22~23일 정책대의원대회를 열고 2017년 대선과 2018년 지방선거 관련 정치전략을 수립하려고 했으나 논란 끝에 채택하지 못했다. 민주노총 주도의 새로운 진보정당 건설(1안)과 민주노총 주도의 노·농·빈 진보대통합당 건설(2안), 전 조직적 토론을 통해 내년 정기대의원대회에서 정치세력화 방안 의결(수정안) 안건이 모두 부결됐다.

내년부터 굵직한 선거가 이어지는 만큼 민주노총의 정치방침은 주목받을 수밖에 없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진보정치의 현주소를 짚어 보고 나아갈 길을 모색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일이다. 이와 관련해 <매일노동뉴스>와 민주노총의원단(김종훈·윤종오 무소속 의원)은 지난 7일 오후 서울 마포구 매일노동뉴스 회의실에서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진보정치, 길을 묻는다’를 주제로 좌담회를 개최했다.

정성희 소통과혁신연구소 소장이 사회를 본 가운데 김상구 금속노조 위원장·이성우 공공연구노조 정책위원·임순광 비정규교수노조 위원장·김종훈 무소속 의원이 토론에 참여했다.

 

갑을오토텍·구조조정·성과연봉제 '노동탄압 폭발 국면'

사회 : 먼저 노동자 당면요구와 투쟁, 노조운동의 혁신발전에 대해 다루고자 한다. 그런 다음 지난 진보정치에 평가와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 실현방안, 그리고 2017년 대선과 2018년 지방선거에 어떻게 대응할지 논의해 보자. 김상구 위원장이 금속사업장 현황을 말해 달라. 당면한 투쟁과 임금·단체협상 특징, 갑을오토텍 사태 등 현안이 많다.

김상구 : 이명박·박근혜 정권하에서 노동탄압이 집중적으로 이뤄지면서 (금속노조에) 투쟁사업장이 많다. 올해는 10년 전망이 걸린 투쟁이란 측면에서 재벌개혁, 산별교섭 강화, 제조업발전특별법 제정이 핵심 쟁점이다. 이에 7월22일 총파업 투쟁을 벌였다. 이런 상황에서 갑을오토텍 사태가 터졌다. 여름휴가를 전후해 공권력 투입이 예상되면서 결의대회가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현대자동차를 비롯한 그룹사교섭과 공동파업이 이슈화되지는 못했다.

사회 : 조선산업 구조조정은 어떤가.

김상구 : 조선업종노조연대가 조직돼 있다. 조선산업 노사정 교섭을 꾸준히 요구해 왔다. 자동차나 철강도 마찬가지인데, 정부가 거부했다. 비정규직이 제대로 조직되지 않다 보니 (구조조정 국면에서) 비정규직 대응이 거의 안 되고 있다.

이성우 : 이명박·박근혜 정권을 지나면서 공공기관 선진화와 공공기관 가짜 정상화가 진행됐다. 지난 3년간 당하고 있다. 2014년에는 방만경영 문제로 복지가 축소됐고, 지난해에는 임금피크제로 맞붙었다. 냉정히 평가하면 사실상 밀렸다. 올해는 제대로 붙어 보자는 입장이다. 금융노조가 23일 10만 하루파업을 예고하고 있고, 공공운수노조의 경우 27일 철도·건강보험·국민연금·서울대병원·가스공사 등 주요 공공기관이 동시파업에 나선다. 성과퇴출제로 대변되는 노동개악을 막겠다는 것이다.

사회 : 임순광 위원장은 대학 구조조정과 함께 민주노총 상반기 투쟁을 평가하고 하반기 흐름을 말해 달라.

임순광 : 한상균 민주노총 위원장이 최근 밝힌 대로 정부 노동개악에 맞서 강력히 투쟁하지 못한 한계를 짚고 넘어가야 한다. 법과 자본, 권력이 결탁한 노동탄압이 전면화하고 있다. 많은 고민과 노력에도 돌파구가 안 보인다. 하반기 투쟁도 어려움에 봉착해 있다.

지난달 29일부터 교육혁명 대장정을 시작했다. 교육 안에는 노동문제가 다 들어가 있다. 교육노동자가 당면한 노동문제를 학교현장에서 풀지 못하면 밖에서는 더 풀기 어렵다.

민주노총은 다음달 1일 대구에서 10월 인민항쟁 70주년을 기념해 전국노동자대회를 개최한다. 46년 대구에서 촉발한 10월 인민항쟁은 (노동자가 선두에 서서) 전국적 항쟁으로 확산됐다. 노동계급의 혼을 일깨운다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사업이다.

김종훈 :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이 위치한 울산이 지역구다. 하도 답답해서 7월7일부터 22일까지 현대중공업 앞에 천막을 치고 의정보고회를 했다. 조선산업 구조조정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노동자에게 일방적인 희생을 전가하고 있다고 주민들에게 호소했다. 우리가 힘을 합쳐 일자리를 지키고 지역경제도 살리자고 말이다.

현재 울산에서 물량팀을 비롯한 하청노동자 1만명 이상이 해고되고 정규직도 2천500여명이 해고된 것으로 추산된다. 정부가 무리하게 조선산업 구조조정을 추진하는 본질은 외주화와 노조 무력화, 임금 저하에 있다.

▲ 정기훈 기자

대기업·공기업·정규직 중심 노동운동 낙인 극복이 관건

사회 : 정부·재벌·언론은 대기업·공기업·정규직 중심의 노동운동이라고 낙인을 찍는다. 국민도 그렇게 알고 오해한다. 이를 극복해야 하는 주체도 노동운동이다. 제조업은 일자리와 임금 외에 관심 없다고 부각되고, 공공기관은 이미 높은 연봉을 받으면서 왜 성과연봉제는 못 받느냐는 소리를 듣는다. 그러면서 대의에 입각한 요구는 외면받는다.

진정한 공공개혁은 무엇인가 같은 담론과 대안을 갖고 전선을 깔지 않으면 국민에게서 고립된다. 민주노총 창립 초창기에는 사회대개혁을 총 기치로 내거는 등 그런 점을 많이 강조했다. 국민의 오해를 돌파할 방법은 없나. 민중적인 지지를 이끌어 내는 노동운동으로 가는 혁신대책이 있다면 얘기해 달라.

이성우 : 지난해 공공기관 노조들이 인센티브를 반납할 테니 그걸로 비정규직 임금을 올리자고 정부에 제안했다. 출연연구기관의 경우 연구개발비가 연간 7조5천억원 규모다. 그중 1%를 청년일자리(정규직)를 위해 투입하자고 제안했다. 1%면 750억원인데, 연봉 5천만원의 박사급 1천500명을 뽑을 수 있고, 연봉 3천만원을 기준으로 하면 2천500명을 채용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는 이를 무시하고 임금피크제를 도입했다. 우리가 임금피크제와는 질적으로 다른 대안을 내놨는데도, 언론이 차단하고 정부가 무시해 버렸다.

김상구 : 투쟁과 교섭은 일치되는 문제라고 생각한다. 우리 내부에 민주노총의 사회적교섭과 산별교섭을 부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있다. 오로지 투쟁만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 것처럼 말한다.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수준의 ‘뻥파업’을 선언해 놓고는 금속노조 얼굴만 쳐다본다.

혁신은 현실을 인정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언제까지 반대와 저지만 할 건가. 수세적인 투쟁으로는 국민 지지를 못 받는다. 공세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금속은 재벌개혁, 공공은 공공성 강화로 싸워야 한다. 공공서비스까지 민영화를 통해 재벌로 넘어갈 판이다. 민주노총과 노동운동을 혁신하려면 물 위에 떠 있는 것처럼 투쟁할 게 아니라 현실을 바탕으로 대안을 찾아야 한다.

사회 : 투쟁을 기본으로 하면서 이슈를 어떻게 제기할 것인지 고민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으로 들린다. 민주노총에서는 전통적인 논쟁 주제다.

임순광 : 최근 쟁점이 되는 성과연봉제가 어떤 폐해를 가져오는지는 대학사회를 보면 알 수 있다. 교수 재임용심사평가제도가 있다. 그런 식으로 들어오면 오래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쫓겨난다. 대학 내부에서 계층화 현상도 발생할 것이다. 전반적인 하향 평준화를 막을 수 없다. 대학 교수사회에도 성과연봉제가 들어와 있다. 우리는 이를 상호약탈적 성과연봉제라고 부른다. 재원은 같은데 누군가에게 빼서 다른 사람에게 조금 더 주는 방법밖에 안 된다. 계급적 동질성이 다 파괴되는 제도다. 이를 막지 못하면 앞으로 공공기관에서 싸우기 어려워질 것이다. 미조직 노동자에게 미치는 영향력이 큰, 한 사업장만이 아니라 전체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산별교섭 법제화에 동의한다.

김종훈 : 정부와 자본의 의도를 어떻게 분쇄하고,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가 무엇인지를 구분해서 봐야 한다. IMF 외환위기 이후 신자유주의가 확산되면서 비정규직이 급속히 늘었다. 이들은 현장에서 위화감을 느낀다. 때로는 정규직 임금투쟁에 불만을 갖는 게 현실이다. 지역도 마찬가지다. 왜 지들만 다 가져가냐, 위험한 일은 비정규직이 하는데. 정부가 프레임을 그렇게 만들었다고 해도 우리가 어떻게 할 것인지 답을 주지 않으면 안 된다. 대기업 노동자가 사회적 책임을 다할 테니 비정규직 처우도 개선하자는 식의 다양한 연대전략이 필요하다. 노동자가 사회적 약자와 함께하고 해결하기 위해 사회·정치 주체로 나선다면 노조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다시 살아날 수 있을 것이다.

“진보정치 의제 선도에도 위탁정치 한계 못 벗어나”

사회 : 노동자 정치세력화와 진보정치는 20년여간 진행돼 왔다. 이에 대해 두 가지 평가가 있다. 하나는 노동자가 위탁정치를 했다는 것이다. 노동이 주체적으로 정치역량을 강화해서 통합력을 쥐고 실현하지 못했다는 말이다. 또 하나는 정파의 갈등과 분열이 노동정치를 망쳤다는 지적이다.

임순광 : 긍정적인 게 많았다.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오랜 시간 희망을 가진 경우도 있었다. 지금도 절망적이진 않다. 운동과 사업의 영역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어떻게 활용할지 인식의 확장을 가져왔다. 그것이 성장하는 과정에서 진통을 겪는 측면이 있다.

우리나라 운동진영에서는 분단 모순을 피해갈 수 없구나, 하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종북 등 딱지 붙이는 것을 좋아한다. 어디나 패거리 문화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편법이나 바람직하지 않은 방법이 활용돼서 갈등이 격화됐다. 공안탄압 시절에는 다 흩어져 있었다. 그렇다 보니 제대로 모여서 (패권 등) 문제를 해소한 경험이 없었다.

그렇다고 마냥 안 보고 살 건가. 이런 점에서 고민이 많이 된다. 누구나 정치사상의 자유가 있다. 여기에서 출발해야 한다. 차이는 인정하지만 같이할 수 있는 공통분모를 찾아내서 공동활동을 같이한다면, 거기서부터 복구할 수 있을 것이다.

이성우 : 민주노동당 창당으로부터 17년간 쪼개지고 합쳐지고 해산되기까지 많은 것을 겪었다. 진보정치 실패와 오류의 상당 부분은 노동자와 민주노조운동에 책임이 있다. 노동 중심의 진보정치가 돼야 하는데, 노동자들이 당원으로 참여하면서 중심에 서지 못했다.

노동운동도 변화·발전 의제를 계속해서 만들지 못했다. 그냥 조합주의에 머물렀다. 산별노조로 전환했지만 아직도 기업노조 틀을 넘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노동정치와 진보정당이 정규직노조의 이해를 대변하는 수단으로 치부됐다. 스스로 참여해서 정치개혁을 만들지 못한 것이다. 이런 현상이 불거진 데에는 왜곡된 정파가 가장 크게 자리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그러는 사이 소통하지 못하고 나뉘어졌다. 이것이 병을 치유하는 데 장애물인 것은 분명하다.

현재로서는 반성과 성찰로 새로운 진보정치를 시작할 수 있을 것 같진 않다. 워낙 대중과 조합원의 냉소가 크다. 예전처럼 민주노총이 몰아서 갈 수도 없다. 다양한 진영이 새롭게 형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 : 노동자들이 정치역량을 강화하고 정치간부를 육성하려는 의지가 약한 게 사실이지만 설사 있더라도 현장에서 근무해야 하기에 조건 자체가 어렵다.

김상구 : 현장에서 금속노조로 올라온 뒤 보니까 (민주노총 차원에서) 노동자 정치세력화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안 되고 있었다. 민주노총은 2008년 민주노동당 분당 이후 배타적 지지 방침을 철회하는 등 정치방침을 정하지 못하고 있다. 2009년 이후에는 정치방침 없이 선거방침만 정했다. 민주노총은 정치세력화에 실패했거나 혹은 후퇴했다고 평가한다.

정치간부의 경우 미조직사업 전략적 활동가를 키우듯이 하면 육성할 수 있다고 본다. 물론 재정적 기반이 중요하다. 민주노총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상대적으로 재정상태가 나은 금속노조에서는 불가능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대중조직으로서 정치세력화를 평가해야 한다. 조합원이 100% 동의하지 않더라도 대중적인 평가를 할 필요가 있다.

사회 : 한국노총은 야당과 정책연합을 통해 개별적으로 국회에 진출하고 있다. 반면 민주노총은 20여년간 집단적·독자적 가시밭길을 걸었다. 민주노총도 야당과 연대하면 개별적으로 의원을 만들 수 있을 텐데.

김종훈 : 임순광 위원장이 한 말에 동의한다. 진보정치를 하는 동안 어려움이 있었지만 긍정적인 면도 많았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참 많은 것을 사회의제로 만들었다. 무상급식·무상의료·생활임금 등 다양한 시도를 했고 실현된 것도 많다. 그런 긍정성은 온데간데없이 진보정치 하면 분열과 다툼만 남아 있어 가슴이 아프다.

그런 긍정성에서 새롭게 출발했으면 좋겠다. 여전히 위탁정치·대리정치 성격이 강하다. 노동자를 실제 주인·주체로 당의 중심에 세우려는 노력을 하지 않았다. 새롭게 시작한다면 노동자가 실질적 정치의 주인이 되고 집행·결정하는 권한까지 가져야 한다. 그렇게 되면 어떤 정치세력에 의해 떠내려가거나 휩쓸려 다니지 않을 것이다.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진보정치 실현방안 이견 확인

사회 : 민주노총 정책대대에서 정치방침을 정하지 못했다. 과제와 투쟁이 많은데 정치문제로 균열해서야 되겠냐는 입장도 있고, 상처와 갈등이 많아 치유가 안 됐다는 주장도 있었다. 정치다원주의가 좋다는 의견도 나왔다. 그럼에도 이를 극복하면서 통합적 리더십을 세우고, 튼튼한 대중적 기반과 진취적 문화를 갖춘, 다시는 갈라지지 않는, 하나로 모아서 할 수 있는 좋은 방안이 없겠나.

임순광 : 민감한 문제일 수 있다. 민주노총 정책대대에서 정치전략을 의결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토론 과정이 대의원대회가 아니라도 연속적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 민주노총 정치위원회가 주최할 수도 있고, 민주노총 외곽에서 주최할 수도 있다. 당이든 전선이든 뭐든지 결론을 내려면 수많은 사람들이 공감해야 한다. 그런 과정에서 공통분모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당으로 합쳐지기 전부터 함께할 수 있는 게 있다면 그것부터 하면 된다.

그런 점에서 제안할 게 있다. 정치활동가 양성에 공감한다. 정치학교나 정치프로그램을 현장과 지역별로 야간과 주말을 활용해서 끊임없이 돌아가도록 만들어야 한다.

이성우 : 다시 민주노총이 중심이 돼서 뭘 해 보자는 것은 적절한 판단이 아니다. 지금은 여러 진보정당이 존재한다. 지형이 달라졌는데 이 상황에서 또 하나의 진보정당을 만든다고 조합원 대중은 차별성을 느끼지 못할 뿐 아니라 별로 지지하지도 않을 것이다. 내가 활동하는 노동정치연대는 처음부터 새로운 당은 안 만든다고 결의하고 시작했다. 기존 당들과 조합원 대중을 묶어 전체를 아우르는 진보정치 흐름을 만들자고 나름대로 애써 왔다. 그중 절반은 정의당과 통합하는 방식으로 갔고, 나머지는 밖에 있다. 이 과정에서 느낀 것이 있다. 대중의 요구는 진보정당을 따로 만들지 말고 진보정치의 큰 흐름을 만들어 가라는 것이다.

사회 : 보충질문을 하겠다. 노·농·빈 등 기층 민중이 밖에서 세력을 형성해 기존 정당을 모으는 것에는 동의하는가. 노·농·빈 당이라도 별도로 당을 먼저 만드는 것은 어떻게 생각하나.

이성우 : 당을 만드는 순간 이미 경쟁하는 것이다. 노동이 중심이 되는 새로운 당은 없다.

김상구 : 지금 자기 위치에서 정확히 해야 한다. 민주노총대로 평가와 방향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민주노총의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실패했다는 평가가 올라온다.

왜 정치참여가 아니고 당을 만들자고 하나. 민주노총은 체제변혁이라는 목표가 있다. 그에 따른 정치전략이 있어야 한다. 없다는 게 문제다. 진보진영을 통합해야 한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만 ‘되겠냐’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대다수다. 되게 하려면 방법이 뭔가. (진보통합이란) 목표에 동의한다면 그것이 실현되도록 구체적인 내용을 갖고 토론하고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반대가 정치전략인 것처럼 얘기해서는 안 된다. 민주노총은 대중조직답게 고민하고 결정해야 한다. 지금은 근본적 전략을 세워 어떻게 갈 것인지를 논의해야 하는 시점이다. 그렇지 않다면 민주노총의 방향은 상실될 것이다.

김종훈 : 진보정치 초기엔 1명의 국회의원을 만들자고 했다. 20대 국회에 정의당 6명, 민주노총의원단 2명 등 8명이 있지만 할 수 있는 게 많지 않다. 최근에도 느끼는 것이지만 상처가 너무 깊은 것 같다. 현장에 가면 똑바로 하라는 사람이 적지 많다.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전체가 하나가 돼서 해 보자는 희망을 주지 않으면 앞으로 현장이든 지역이든 우리에게 표를 던질 사람은 없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지금까지는 네가 좋은 일 한다니까 하는 정도다. 네가 뭘 할 수 있는데, 라고 말할 때가 머지않았다. 계속 지금과 같은 실험을 할 수는 없다. 정치 대안을 중심으로 가려면 모두가 하나가 돼서 단결하고, 실질적인 정치권력을 만들지 않으면 안 된다.

새 진보정당 창당에는 이견, 대선·지방선거 공동대응에는 공감

사회 : 정치일정을 무시할 수는 없다. 내년 대선에서 정의당·노동당·민중연합당 후보 3명이 나올 수 있다. 연합정치든 통합정치든 약속이 없으면 대선에서 공동대응이 어렵다. 올해 총선만 해도 비례대표로 어느 당을 찍을지 답을 주지 못했다. 2017년 대선과 2018년 지방선거를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임순광 : 새로운 정당을 만드는 것에 반대한다. 현 상태로 가는 것에도 반대한다. (민주노동당이란) 진보적 대중정당에 처음부터 동의했다. 그런 논지에서 더 힘을 키우고 많은 것을 가져오기 위해 합의할 수 있는 방식을 최대한 찾아야 한다. 하지만 급할 것은 없다.

다만 2018년 지방선거가 중요하다고 본다. 선거연합 정도로 비례대표를 많이 당선시키지 못한다면 2020년 총선도 없다. 박근혜 이후 더불어민주당이 집권한다고 해도 신자유주의는 똑같다. 노동운동은 계속 후퇴할 것이다.

반격할 거점을 마련해야 한다. 초점을 2018년 지방선거에 맞추고, 앞서 대선에 어떻게 힘을 실을 것인지 말이다. 총파업은 쉽지 않다. 그럼에도 총궐기 정도는 해야 한다. 같이 고민하는 집단과 진보정당들이 힘을 모아 투쟁본부로서 끌어가고 거기에서 열심히 한 사람을 지방선거에 나가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대선후보는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정리될 가능성이 높다.

사회 : 조합원 총투표와 민중경선으로 민중단일후보를 뽑자는 의견이 있는데.

임순광 : 단일후보를 뽑는 것에 반대하지 않는다. 그걸 갖고 야권연대를 할 때에는 굉장히 신중해야 한다.

이성우 : 지난 대선에서 진보정당의 결과는 참담했다. 저마다 정치적 입장을 가지고 끝까지 달려가면 최악의 결과가 나온다. 전체 진보진영에서 그런 대선을 만들 수 없다고 전제하고, 각 정파와 정당의 책임 있는 사람들이 소통하고 연대하면, 통합하지는 못하더라도 대선판이 의미 있는 선거가 될 것이다. 야권연대는 총선 때 봤듯이 우리 힘이 모이면 저쪽에서 달려온다. 우리가 먼저 야권연대를 말하면 구걸과 다름없다. 결과도 좋지 않다. 지방선거도 그 흐름에서 형성해야 나아질 것이다. 국민의당이 들어온 마당이다. 지방선거에서 진보정당이 할 만한 곳도 드물게 됐다.

사회 : 임순광 위원장이 대선 때 단일 대응을 하고 그 성과로 지방선거 전에 연합당이든 뭐든 하나의 당으로 지방선거에 임하면 좋겠다고 했는데.

김상구 : 정책연대냐 야권단일화냐 이런 문제는 핵심이 아니라 전술적으로 검토해 놓고 가야 하는 문제라고 본다. 민주노총만 하는 게 아니라 모든 세력이 열어 놓고 검토·고민해야 한다. 당을 통합하는 게 도움이 되느냐도 중요한 논의 지점이다. 지방선거에서 뭉치려면 어떤 게 도움이 되는지 모든 걸 검토해서 조합원 대중에게 묻거나 지도부 결단으로 선택할 수 있다. 그런 전술을 열어 놓고 가야 한다.

임순광 : 단일 대응을 하려면 후보군을 경쟁시키고 후보가 결정되면 선거연합정당을 만들어 기존 정당을 탈당하고 들어갈 수 있게 하면 된다. 그것을 모태로 나중에 강력한 통합정당을 만들 수 있다.

김종훈 : 2018년을 준비하는 게 중요하다는 데 기본적으로 동의한다. 내년 대선에서 연합적 전술을 택할 수 있지만 근본적으로 진보세력이 확장성을 갖고 하나의 큰 힘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전략적 고민이 필요하다. 일차적 과제는 내년 대선이 될 수밖에 없다. 거기까지 가는 과정에서 어떻게 준비할 것인지 지금부터 고민하지 않으면 어려운 지점에 놓일 수 있다. 하나의 힘으로 단결할 수 있는 것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 노력의 기초를 지금부터 만들어야 한다.

사회 : 준비한 주제를 다 소화했다. 장시간 수고하셨다.

글=연윤정 기자
사진=정기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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