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

매년 이맘때 추석을 앞두고 나오는 단골 뉴스가 있다. 매체마다 “체불임금을 집중 단속하겠다”는 단신이 끊이질 않는다. 이어 고용노동부에서도 엄하게 처벌하겠다는 엄포성 발표를 하게 마련이다. 올해도 다르지 않았다. 부디 많건 적건 체불임금 없이 누구에게나 행복한 명절이 되길 바랄 뿐이다.

1조3천억원.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 전체 체불임금 총액이다. 몇 해 전부터 1조원을 넘나들더니 요즘은 추석 무렵이면 벌써 1조원을 채운다고 한다. 점점 악화되고 있다는 말이다. 만약 근로기준법상 협의의 체불임금을 넘어 보다 넓은 차원에서의 임금까지 포함한다면 체불임금은 수조원에 이를 것이다. 예를 들어 영세사업자들의 용역·도급 대금과 각종 수수료 등이 여기에 포함될 것이다. 겉포장만 다를 뿐이지 그 실질은 임금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이처럼 체불임금이 늘어나는 속도·대상·범위는 그 자체로 우리나라 노동정책 실패를 증명한다. 노동현장에서 일어난 노동정책을 되짚어 보면 묘한 법칙을 발견하게 된다. 3~5년 주기로 이른바 ‘노동개혁’이 진행될 때마다 체불임금은 되레 악화돼 왔다.

'노동개혁=양극화 심화' 법칙이랄까. 당초 사회 양극화를 줄이겠다는 정책 목표는 간 곳이 없고 항상 양극화는 심화했다. 급기야 상위 10%가 전체 소득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사회를 맞이하고 있다. 지난 5일 국회 입법조사처 발표에 따르면 상위 10%의 소득집중도가 44.9%로 세계 주요국 중 당당히 2위를 차지했다고 한다.

2007년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기간제법) 제정과 파견근로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파견법) 개정을 축으로 하는 ‘노동개혁’이 있었다. 입법 취지는 ‘비정규 노동자 보호’였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당사자인 노동자들은 극구 반대하고 사용자들이 찬성한 제도였다. 그럼에도 정부는 밀어붙였다. 그 결과는 뻔했다.

2010년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개정은 또 어떤가. 중소·영세 사업장 노동조합의 노동권을 더 보장하겠다던 근로시간면제(타임오프) 제도는 정반대 결과를 낳지 않았나. 노동자들의 자유로운 단결권을 보장하겠다고 했지만 노동현장에서마저 큰 노조의 독점을 공인하는 꼴이 되고 말았다. 든든한 울타리가 돼야 할 노동기본권이 무너지자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은 악화 일로다. 이것은 어쩌면 예고된 수순이었다.

체불임금 사업장은 대부분 중소·영세 또는 하도급에 하도급을 받은 사업장이다. 여기서 일하는 이들은 청년 아르바이트 노동자, 미숙련 여성노동자, 비정규 노동자들이다. 그렇지 않아도 급여가 최저임금 수준에 불과한데 임금체불까지 당하면서 살림은 더욱 어려워졌다.

추석을 맞이해 1조원을 쉬이 넘기는 체불임금은 바로 박근혜 정부의 노동정책 성적표다. "좋은 일자리와 고용률 70%, 4대 개혁, 금융·공공부문 노동개혁"을 4년 내내 외친 결과치고는 너무 초라하지 않은가. 체불임금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정부가 정책 집행 당사자인 노동자로부터 무슨 신뢰를 얻을 수 있단 말인가. 또다시 자신들의 실패를 “체불임금 악화, 양극화 확대는 귀족노조 탓”이라고 주장할 셈인가. 이제는 먹히지 않을 것이다.

사람은 실패를 통해 배운다고 한다.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정부라면 ‘노동개혁’ 실패에서 배워야 한다. 혹 어렵다면 노동자들이 외치는 요구에 귀 기울이면 충분하다. 전부가 아니어도 좋다. 시작은 현재 강행하는 금융 및 공공부문에 대한 성과연봉제 확대 도입 중단이다. 그 자체로도 근로기준법을 위반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이들 사업장에 복무하는 수십만명에 이르는 노동자들의 진지한 동의가 없기 때문이다.

동일가치에 대해 동일임금을 지급한다고 노동법에 못 박고 차별을 엄격하게 단속하는 것이 아마도 정부가 그토록 원하는 임금체계 개편의 첩경일 게다. 마침 노동자들도 원하고 있지 않는가. 대기업들의 불법 하청과 불공정거래를 엄히 금지해 공정한 시장질서를 만들어 주면 그만이다. 원인이 제거되면 자연스레 노동에서의 양극화는 줄어들 것이다.

노동기본권은 헌법대로 최대한 보장하는 게 답이다. 노동조합 때문에 기업하기 어렵다는 증명되지 않은 거짓말은 거둬라. 정부는 노사 힘의 균형을 맞추는 심판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부당노동행위가 이토록 만연함에도 그로 인해 사업주가 처벌받았다는 뉴스는 정말이지 드물지 않는가.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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