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대통령도, 중소기업청장도, 중소기업 사용자도 말한다. 그리고 고용노동부 장관도 말한다.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가 임금인상을 자제하고 양보해야 중소기업·비정규 노동자가 살 수 있고, 나라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이 나라에서 권력과 자본이 말하는 노동개혁도 이것을 내세워 추진해 왔다. 이런 사고가 대기업노조를 귀족노조라고 일컫고 그 파업투쟁을 귀족노조의 배부른 투쟁이라고 비난하는 근거의 하나였다. 여기에 대기업 사용자 자본까지 합세해서 노조의 임금인상 요구가 과도하다고, 경쟁력이 저하된다고 덧붙이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은 중소기업·비정규직과의 격차 해소를 말하며 대기업 정규직의 고임금·고용보장을 완화시킬 방안으로 노동개혁을 추진해 왔다. 현대·기아차지부가 2016년 임금·단체협약 파업투쟁을 한 걸 두고서 이기권 노동부 장관은 지난 7월18일 “청년일자리 창출을 위해 현대·기아차가 임금인상을 자제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을 비롯해서 수시로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인상 자제를 말해 왔다. 원청 대기업 노사가 임금인상을 자제하고 남은 재원으로 협력사를 지원하는 상생정책을 펼쳐 중소기업을 청년이 가고 싶은 직장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의미다. 정규직 임금인상분의 10%를 협력업체 처우개선에 사용하기로 노사합의한 에스케이하이닉스 사례를 선전해 왔다. 주영섭 중기청장도 현대·기아차지부 파업투쟁이 진행 중이던 지난달 23일 대기업 노동자의 임금인상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같은날 중소기업중앙회는 중소기업 노동자 500명을 대상으로 '대기업 노조 파업과 임금격차에 대한 중소기업 근로자 인식 조사'를 통해서, 중소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 10명 중 9명은 대기업과 협력사 임금이 차이 나는 상황을 불평등하다고 인식하고, 중소기업 노동자 10명 중 6명은 대기업노조 파업이 부적절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를 밝힌 바 있다. 이제 이 나라에서 노동자까지도 대기업 노동자의 임금인상 자제가 필요하다고 인식하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럴까.

2. 이 나라에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들이 임금인상을 자제한다면 중소기업·비정규 노동자들의 처우가 개선되는 것일까. 만약 그렇다면, 정말로 대기업 노동자가 임금인상을 자제할 경우에 중소기업·비정규 노동자의 임금이 그만큼 인상되는 것이라면 노동자를 대리하면서 노동자권리 타령으로 사는 나는 어째야 할까. 그래도 노동자권리를 말하며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인상 투쟁을 응원해야 할 것인가. 아마도 나는 고민을 했을 것이다. 1980년대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 수준은 대기업 노동자의 90% 정도였으나 2014년께에는 60% 정도에 불과하고, 자동차 업계만 보더라도 1차 하청업체 노동자 임금은 원청 대기업 노동자의 절반, 3차 하청업체 노동자는 3분의 1수준이라고 알려져 있다. 거기에 비정규 노동자의 수준은 그보다도 못하다. 이렇게 이 나라에서 중소기업·비정규직의 임금수준이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과 비교해서 형편이 없다. 나는 그래도 대기업 정규직의 임금인상을 응원하겠다고 망설임 없이 말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과연 그럴 수 있는 나라에서 우리 노동자는 살고 있을까. 대통령도 장관도 중기청장도 중소기업 사용자도 대기업 사용자 자본도 모두가 한통속으로 대기업 노동자의 임금과 중소기업·비정규직의 것이 연동돼 있다는 걸 당연하게 전제해서 말하고 있는데 말이다. 대기업 노동자의 임금이 적게 인상되면 그만큼 중소기업·비정규 노동자의 임금이 더 인상되는 나라라면, 대기업과 중소기업·비정규 노동자들의 몫이 고정적으로 정해져 있고 대기업 노동자의 몫이 정해지면 그 나머지는 중소기업·비정규직의 차지가 되는 법이다. 그런데 이 나라에서 나는 그런 법을 찾지 못했다. 노동자의 임금은 근로계약·단체협약·취업규칙 등에서 정한 바에 따른 해당 사업장 사용자의 처분에 맡겨지는 것이라는 법만 알 뿐이다. 하도급업체를 아무리 협력업체니 뭐니 긴밀히 연결돼 있는 듯 불러 대도 대기업 사용자가 해당 대기업 소속이 아닌 중소기업·비정규 노동자의 임금을 지급하는 법은 없다. 설사 지급한다 해도 임금으로 지급할 몫을 정해 놓고서 일부 노동자의 몫이 줄어들면 자동으로 다른 노동자의 몫이 늘어나도록 한 법은 없다. 우리의 법은 해당 사업장에서 자신의 노동자에 대해 임금을 지급하고서 나머지는 사용자 자본의 몫으로 귀속하는 걸 당연히 전제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순이익으로 주주에게 배당되든지 아니면 사내유보금으로 사용자의 것으로 축적될 뿐이지, 그것이 당연하게도 중소사업장·비정규 노동자의 몫으로 돌려지는 법은 없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사이에 초과이윤을 공유하도록 하는 제도를 입법하자는 주장이 종종 있어 왔다. 지난 7월5일 심상정 정의당 의원이 발의한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촉진에 관한 법률(상생협력법) 개정안은 이 초과이익공유제 도입에 관한 것이다. 수탁·위탁기업이 사전에 설정된 공동의 이익을 위해 협력하고, 목표달성시 약속된 배분규칙에 따라 이익을 공유하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이러한 초과이익공유제도 대기업이 차지할 이윤의 일부를 중소기업의 몫, 즉 중소기업 사용자의 것으로 귀속하도록 하는 것이지 그것이 중소기업·비정규 노동자의 차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중소기업 사용자의 것이면 임금교섭 등으로 그 일부만이라도 노동자의 몫이 될 수 있지 않느냐고 반론을 할지도 모르지만, 이 나라는 이런 법마저도 존재하는 것도 아니니 지금 내가 여기서 그에 답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지지도 않는다. 이상을 통해서 살펴봤다. 이 나라에서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가 임금인상을 자제한다고 중소기업·비정규 노동자의 임금이 인상되는 법은 없다는 걸 살펴봤다. 그러니 나는 대기업 노동자의 임금인상 투쟁을 응원하는 걸 두고 어떤 고민도 할 필요가 없다. 그것이 노동자권리를 쟁취하는 일이니 지지하면 되는 일이다.

3. 그런데 그들은 자제하라고 말하고 있다. 대기업 노동자가 임금인상을 자제해야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이 인상된다고, 정규직 노동자가 자제해야 비정규 노동자의 처지가 개선된다고 말하고 있다. 대기업의 임금수준을 낮추고, 정규직의 고용보장을 약화시키는 걸 노동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추진하고 있다. 그들의 개혁에서 대기업 정규직의 권리를 삭감하는 법은 규정돼 있지만, 그것이 중소기업·비정규직의 권리로 되도록 하는 법은 없다. 그들이 말하는 자제는 노동자의 권리 삭감을 말한다. 그러니 그들이 말하는 노동자의 자제는 사용자 자본의 차지일 뿐이다. 그래서 이 나라에서는 그들이 말하는 자제를 사용자들이 임단협 투쟁하는 대기업 노동자들에게 하고 있는 것이다. 그들이 말하는 대로 자제를 한다면 노동자의 권리는 사용자 차지가 되고 만다. 대기업 노동자의 임금인상분 10%를 협력업체 노동자의 임금인상 재원으로 사용토록 하는 노사합의가 상생협력의 모범사례라고 선전하며 자제를 촉구했지만, 대기업에서 임금인상 요구안에서 10%를 훨씬 밑도는 수준으로 해마다 임금인상 합의서가 작성되는 것이 바로 이 나라의 임단협 실태다. 진정으로 이 나라에서 사용자들이 중소기업·비정규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자제를 말하는 것이라면 그저 임금인상 요구안에서 합의안을 뺀 것을 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으로 지급토록 하면 된다. 하지만 이런 사례는 없다. 분명히 모범사례라고 나도 소개했을 텐데 없다. 이렇게 이 나라에서는 자제는 노동자의 일이 아닌 것이다. 대기업 노동자가 임금인상을 자제한다고 해서 자제한 것이 중소기업 노동자의 처지로 되는 법이 없으니 자제는 노동자의 권리로 되지 못한다.

4. 그들의 말에는 순서가 있어야 했다. 대기업 노동자가 임금인상 자제분을 당연하게 협력업체 중소기업·비정규 노동자의 임금으로 전환시키는 법을 만들겠다고 말을 하고, 그런 걸 노동개혁법안으로 입법하고 나서, 억대 연봉을 받는다는 대기업 노동자들에게 임금인상을 자제해 달라고 부탁해야 했다. 만약 그랬다면 나도 임금인상을 자제하고 노동시간을 단축해서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고 칼럼에 썼을지도 모른다. 그렇지가 않으니, 대기업 노동자가 임금인상을 자제한다면 그건 그렇지 않아도 엄청난 규모의 배당·사내유보금으로 자본축적을 하고 있는 대기업 사용자 자본의 몫이 커질 뿐이니 노동자의 자제는 노동자권리 타령하는 내가 할 말이 아니라고 규정짓고 이렇게 그것은 노동자권리를 빼앗는 말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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