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임금·단체협상 타결 속도가 더디다. 적어도 지난해와 비교하면 다른 양상이다. 지난해 상반기 100인 이상 사업장의 임금교섭 타결률은 43.7%였다. 타결률은 외환위기 직후 수준과 비슷하다는 평가였다. 임금교섭 타결률이 높다보니 뉴스의 한 꼭지를 장식할 정도로 화제였다. 경기침체의 영향을 받아 임금교섭 타결 속도가 빨라졌다는 분석이었다.

반면 올해 상반기 100인 이상 사업장의 임금교섭 타결률은 고작 34.4%다. 기업규모가 클수록 임금교섭 타결률은 낮다. 지난해에 비해 올해 체감 경기는 더 어려워졌다.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2.6%였다. 올해도 같은 수준을 유지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그런데 임금교섭 타결 속도는 둔화하고 있다.

저성장 기조가 뚜렷해지고 있는 가운데 올해 상반기 임금교섭 타결률이 낮아진 이유는 무엇일까. 지난해와 올해 상반기 모두 경제사정은 어려웠다. 때문에 경제적 요인이 임금교섭 타결률을 전적으로 좌우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물론 올해는 조선·해운 업종에서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다. 때문에 관련 사업장의 단체교섭이 장기화하고 있다. 단체교섭 타결률이 낮아진 요인이다. 그런데 이것만으론 단체교섭 타결 속도가 더딘 이유를 설명하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또 다른 ‘외적요인’이 단체교섭에 영향을 주고 있다고 분석한다. 바로 고용노동부의 2대 지침과 단체협약 시정명령이다.

노동부는 지난 1월 ‘공정인사 지침’과 ‘취업규칙 해석 및 운영지침’을 발표했다. 전자는 사용자가 저성과자에 대한 교육훈련을 포함해 해고까지 가능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후자는 노동자 과반수 또는 과반수 직원을 조직한 노동조합의 동의 없이 사용자가 취업규칙을 불이익하게 변경할 수 있도록 했다. 노동부는 2대 지침을 바탕으로 사업장에 대한 지도·감독을 벌였다. 노동부는 단체교섭에 직접 영향을 주는 단체협약 시정명령까지 내렸다. 지난 3월에 발표된 ‘위법·불합리한 단체협약 개선 지도계획’이 바로 그것이다. 노동부가 나서 사용자의 인사·경영권을 제한하는 단체협약 조항을 손보겠다는 의도다.

노동부의 거침없는 행보는 노사의 단체교섭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공공기관의 경우 상반기 내내 성과연봉제 도입을 두고 갈등을 겪었다. 핵심적인 노동조건에 해당하는 성과연봉제 도입은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에 해당한다. 사용자가 이를 도입하려면 과반수 노동자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럼에도 공공기관들은 이사회를 열어 성과연봉제 도입을 결의했다. 노사 합의나 과반수 노동자의 동의가 없음은 물론이다. 때문에 공공기관 노사의 단체교섭은 파행을 거듭했다. 양대 노총 공공기관노조들은 이달 22일부터 파업에 돌입한다는 계획이다. 민간기업도 사정은 비슷하다. 노조 파괴혐의로 사용자가 구속된 갑을오토텍은 노동부의 시정명령을 바탕으로 노조에 단체협약 해지를 통보한 사례다. 갑을오토텍 노사 단체협약에는 배치전환·징계절차에 노조가 참여할 수 있도록 돼 있는데 노동부는 이 조항을 문제 삼았다. 결국 노동부는 꼬일대로 꼬인 갑을오토텍 노사교섭에 개입해 갈등의 원인을 제공한 모양새다. 민주노총 금속노조는 노동부의 단체협약 시정명령으로 소속 사업장의 단체교섭이 진척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한다. 노동부가 일방적으로 사용자 편을 드니 노사관계가 악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대다수 유노조 사업장들도 ‘관망세’로 돌아섰다는 분석이다. 단체교섭 타결률이 낮아진 것은 이러한 배경에서다.

최근 국가인권위원회는 노동부의 2대 지침에 대해 “노동부가 지침이라는 표현을 쓰면서 국민에게 구속력 있는 행정규칙이라는 오해를 불러일으켰다”고 지적했다. 2대 지침은 근로감독관의 행동요령에 불과한데도 이를 근거로 사업장을 지도·감독하는 관행은 불합리하다는 것이다. 노동계는 2대 지침이 근로기준법 등 모법을 침해하거나 위반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노동부의 단체협약 시정명령도 마찬가지다. 양대 노총이 자율교섭에 노동부가 부당하게 개입하고 있다며 국제노동기구(ILO)에 제소할 정도다. 노사 교섭타결을 유도해야 할 노동부가 갈등을 부채질하고 있다는 얘기다.

우리나라는 헌법에 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보장하고 있는 나라다.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에는 최저 노동조건 보장과 노동조합의 설립·단체교섭·단체행동 절차를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도 노동계가 ‘자율교섭’을 보장하라고 절규해야 하는가. 그야말로 어처구니없는 나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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