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호 한국노총 조직본부 교육국장

나폴리를 여행하던 여행객이 햇빛 아래 누워 있는 열두 명의 걸인들과 마주쳤다. 그가 가장 게으른 걸인에게 1리라를 주겠다고 하자, 열한 명이 벌떡 일어나 자기가 갖겠다고 했다. 1리라는 여전히 누워 있던 열두 번째 걸인의 몫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고위공직자 고르기를 마치 게으른 거지 뽑듯 한다. 가장 하자가 많은 이를 낙점하고, 무대에 올리기를 반복하기 때문이다. 최근 경찰청장이 임명되는 과정이나 국회에서 열리는 장관 인사청문회를 보고 있자면 마치 경쟁하듯 서로의 부적격함을 뽐내는 듯하다. 대통령은 가장 결격사유가 많은 사람을 장관으로 임명하기로 마음을 먹은 것 아닌지 의심이 든다. 진즉부터 알고 있었던 고위공직자 등용문의 필수요소인 위장전입은 이제 명함도 못 내미는 수준이 돼 버렸다.

교통사고를 내고 음주운전을 하고 '부끄러워서' 신분을 숨기고 징계를 피한 경찰청장 후보자의 임명을 강행한 이 정부에 대한 창피함과 부끄러움은 오로지 국민 부담이다. 여성가족부 장관을 거쳐 대통령비서실 정무수석 그리고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까지, 한 정부 임기 동안 트리플크라운을 달성한 후보자는 연간 생활비 5억원 논란과 자격미달 딸의 인턴채용 특혜 논란을 일으켜 쥐꼬리만 한 생활비를 쪼개 쓰고 아껴 쓰는 아버지와 어머니, 취업절벽에 막힌 자식의 가슴을 멍들게 한다.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후보자의 재테크 기술은 경이로움 그 자체다. 우연히 시세보다 2억1천만원 싼 아파트를 은행으로부터 전액 대출받아서(1천만원은 자기 돈이라고 주장) 1년 살다가, 미국으로 파견발령이 나자 우연히 대기업에 전세를 줬다가 돌아오자마자 집을 팔아서 3억7천만원의 시세차익을 올렸다고 한다. 도대체 서민들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꾸는 행운이 왜 고위공직자들에게만 기막힌 우연으로 발생하는지 설명할 방법이 없다.

각종 비리 의혹과 위법행위가 확인되고 있는 민정수석은 또 어떠한가. 그를 지키기 위해서 대통령 본인이 임명한 특별감찰관도 내치고, 정권창출의 우군이었던 보수언론마저 부패 기득권세력으로 몰아가는 것을 보면 우병우 민정수석은 대통령의 수족을 넘어 신체 장기의 일부라는 세간의 이야기가 사실에 가까움을 알게 한다.

차라리 이들이 살고 있는 세상은 노동자 서민들의 그것과는 다르다, 고 속편하게 생각하자. 하지만 그러기에는 이쪽 세상의 삶은 너무나 팍팍하고 고되다.

폭언과 막말은 예사고, 일상적 성희롱에 성추행까지 벌어지는 회사를 생계 때문에 다녀야 하는 김포공항 청소노동자들은 처우개선을 요구하며 삭발을 하고 무기한 단식에 들어갔다.

헌법이 보장한 권리인 파업을 했다고 해서 수백억원의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당해 전월세 보증금까지 가압류당하는 노동자들의 심정을 저 위에 있는 사람들은 절대로 모를 것이다.

노동자라는 단 하나의 이름이 사내하청·파트타임·파견·시간제·특수고용으로 나뉘다 못해 이제는 저성과자라는 이름으로 찢기는 세상은 어찌할 것이며, 굴지의 대기업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산재로 사망하는 비정규 노동자는 또 어떻게 할 것인가.

"이곳에 들어오는 그대여, 모든 희망을 버려라." 단테의 <신곡> 지옥편에 나오는 지옥의 문에 새겨져 있는 마지막 글귀다. 절망의 숲 가운데 희망의 길이 잘 보이지 않는다면, 노동자와 청년들에게 희망을 줄 수 없는 나라라면 이곳은 ‘헬조선’이 맞다. 이것은 결코 자기비하가 아니며 지옥에서 탈출하기 위한 명확한 현실인식이다.



한국노총 조직본부 교육국장 (labo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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