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전 근무현장에서 고농도 비소에 장기간 노출된 2명의 노동자가 암으로 사망했다. 비소는 폐암을 유발하는 강력한 발암물질 중 하나다. 근로복지공단은 “업무와 사망 간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며 산재를 인정했다. 반도체 공정 노동자에게 발생한 폐암이 산재로 인정된 첫 번째 사례다.

1일 반도체 노동자의 건강과 인권지킴이 반올림에 따르면 공단은 지난달 29일과 30일 삼성전자 반도체·LCD 생산공정에서 일하다 폐암으로 숨진 고 송아무개씨와 고 이아무개씨의 유족들이 제기한 유족급여청구를 받아들였다. 이로써 법원과 공단에서 직업병 피해를 인정받은 삼성반도체 노동자는 14명으로 늘었다. 직업병으로 인정된 질병은 백혈병·림프종·재생불량성빈혈·유방암·다발성신경병증·뇌종양·난소암·폐암 등 8종에 이른다.

◇"비소 노출에 의한 업무상 사망"=공단 서울업무상질병판정위원회 업무상질병판정서와 공단 직업성폐질환연구소 업무상질병 여부 심의 결과 회신서에 따르면 고인들은 삼성전자 반도체·LCD 생산공장 ‘식각공정’ 설비엔지니어로 일했다. 송씨는 17년3개월, 이씨는 16년7개월간 근무했다.

식각공정은 반도체 웨이퍼나 LCD 패널에 회로패턴을 형성하는 과정에서 화학물질이나 가스 등을 이용해 불필요한 부분을 제거하는 공정이다. 고인들은 식각 설비의 셋업(설치)과 PM(유지보수) 업무를 수행했다.

작업은 밀폐공간인 체임버(chamber)에서 이뤄졌는데, 고인들은 체임버를 개방해 내부 벽면을 닦거나 환기장치의 펌프·스크러버 등 각종 부품을 교체·세정하는 작업을 직접 했다. 식각공정과 체임버 정비 과정에서 고인들이 비소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 공단의 판단이다. 해당 공정에서는 인·비소·붕소·알루미늄·인듐·칼륨이 사용됐다. 2012년 산업안전보건연구원이 국내 3개 반도체 제조사업장을 조사했는데, 고인들이 일했던 공정과 같은 공정에서 공기 중 비소 농도가 노출기준의 최대 6배를 초과한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도 했다.

공단은 “고인들이 식각장비 설치와 유지보수 작업을 수행할 때 비소에 지속적으로 노출됐다고 판단되며, 간헐적으로라도 상당 수준의 비소에 노출됐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며 “폐암의 다른 위험요인이 없는 상태에서 상대적으로 폐암 발생률이 낮은 연령에 폐암으로 진단된 점 등으로 보아 업무와 사망 간에 상당인과관계가 인정된다”고 밝혔다. 송씨의 사망 당시 나이는 43세, 이씨는 38세였다.

임자운 변호사(반올림 상임활동가)는 “삼성반도체 노동자의 직업병이 폐암으로 확대됐다는 데 의미가 있다”면서도 “노동자가 발암물질에 노출될 가능성이 충분했는데도 삼성전자는 그에 필요한 관리를 전혀 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공단 조사 거부한 협력업체들=삼성반도체 폐암 사망자에 대한 공단의 산재 승인 결정은 유족들이 산재신청을 낸 지 3년10개월 만에 나왔다. 공단은 올해 6월 삼성반도체 악성림프종 사망자에 대해서도 산재 승인 결정을 내린 바 있는데, 이 역시 3년8개월이나 걸렸다. 산재 피해자나 가족 입장에서는 피가 마르는 시간이다. 공단의 늑장 대처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잇따르는 이유다.

한편 폐암 사망자 조사 과정에서 삼성전자 협력업체들이 공단 직업성폐질환연구소의 업무관련성 전문조사 협조요청을 거부한 것으로 밝혀졌다. 연구소에 따르면 고인들이 담당했던 업무의 상당 부분이 삼성전자 사내·외 협력업체로 이전된 상태였다. 이에 따라 연구소가 협력업체들을 상대로 공기 중 비소 농도 노출평가를 실시하려 했는데, 해당 업체들이 거부해 조사 자체가 이뤄지지 않았다.

해당 업체들은 “반도체 제조공정과 업무환경이 다르다”거나 “매년 일반·특수·종합건강검진을 실시한다”는 이유로 조사를 거부했다. “폐질환 등 직업성질환 환자가 없다” 혹은 “영업기밀 유출 방지를 위한 보안상 이유로 조사에 응할 수 없다”는 답변도 내놓았다.

임자운 변호사는 “공단측의 조사에 협력업체들이 일제히 협조하지 않은 것은 엄중히 따져 물어야 할 문제”라며 “삼성측의 개입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면 누가 믿겠는가”라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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