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명준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요새 일자리 문제가 심각하다. 어떻게 답을 찾아야 하는지 여러 사람들이 고민 중이다. 하지만 답은 명쾌히 보이지 않는다. 이유가 뭘까. 어쩌면 문제를 ‘문제화하는 방식(mode of problematization)’ 자체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닐까. 문제를 바라보고 답을 찾는 우리의 사고 틀 자체가 답을 못 찾게끔 짜여 있는 건 아닐까.

일자리 문제를 고민하면서 흔히들 어떻게 고용관계(employment relations)를 바꿀지를 생각한다. 고용주와 피고용인과의 관계를 가리키는 고용관계는 일자리 문제를 바라보는 우리의 익숙한 사고 틀이다.

한편에서는 비정규고용은 나쁜 거니까 정규직으로 바꾸면 된다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에서는 정규직은 너무 경직된 과보호 속에 있으니 그들의 권한을 좀 약화시켜 비정규직이 누리게 하자고 한다. 둘 다 일자리 문제를 고용관계의 형태로 치환한다.

일자리 문제를 고용관계 중심으로 보면서 해법을 찾다 보니 결국엔 노사관계(industrial relations)상의 팽팽한 대립이 전개된다. 정규직에게 집단적으로 또 전일적으로 양보와 희생을 요구하는 건 현실에서 노동조합이 받아들이기 힘들다. 역으로 비정규직을 없애고 모두 정규직으로 돌리자는 주장도 사용자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어렵다. 물론 불법파견 시정 등 법 준수는 당연히 이뤄져야 하겠지만 말이다.

일자리 문제를 고용관계 중심적 사고 틀에서 벗어나 바라보면 어떨까. 일자리를 판단하는 기준을 정규직이냐 비정규직이냐 무기한 지속고용이냐 기간제냐 하는 류의 틀에서 먼저 사고하지 않고, 어떤 일자리 자체를 하나의 ‘사회적 구성물’로 바라보면서 그것이 언제부터 생겼고, 어떤 요소로 구성돼 있으며, 누구에게 적합하고, 다른 일자리들과는 어떠한 관련성을 맺고 있는지 등을 여러 각도에서 조망해 보면서 그것의 재구성과 전체와의 조화 가능성을 참신하게 고민해 보자는 거다.

분명 현재의 고용관계 제도를 반영한 정규직은 상대적으로 좋은 일자리, 비정규직은 상대적으로 나쁜 일자리일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그것이 일률적·획일적으로 그런 것만은 아니다. 현실에서 어떤 이들은 정규직이 부담스러워 비정규직을 선호하는 이들도 존재한다. 그 일을 수행하기 위해 고용관계상으로는 비정규직이 좋지만 비정규직이 갖는 여러 가지 취약성과 부당성을 피하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정규직을 택해야 하는 사람도 있다. 정규직과 비정규직은 현재 시점에서 어떠한 특정한 요소들이 결합돼 형성된 하나의 역사특수적이고 제도결부적인 구성체지만 그것은 계속해서 변화해 가고 또 얼마든지 부분적 변형이 가능할 수 있다.

이러한 시각에서 한번 ‘일자리 관계(job relations)’라는 새로운 사고 틀을 마련해 보고 싶다. 수학에서 함수는 독립변수들의 집합 X와 종속변수들의 집합 Y 간의 관계를 말한다. 일자리 문제를 그러한 함수관계처럼 놓고 사고해 보자. X는 노동자·구직자·실업자들을 원소로 하는 전체 집합이고 Y는 개별적인 일자리들을 원소로 하는 일자리들 전체의 집합이다. 여기에서 일자리 관계는 크게 세 가지 측면에서 조망 가능하다.

하나는 x·y·z 등 집합 Y에 속하는 개별적인 일자리들을 이루는 요소들 내부의 구성관계다. 두 번째는 집합 Y 내에 존재하는 x·y·z 등 다양한 일자리(원소)들끼리의 관계다. 그리고 세 번째는 어떤 처지에 있는 노동자 내지 노동하려는 자들(X의 원소 a·b·c 등)과 그들이 주어진 조건과 처지에서 선택하는 일자리(Y의 원소 x·y·z 등)의 관계다.

세 측면에서 지금의 일자리 문제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것들이 주로 쟁점일 것이다. 첫째는 어떤 일자리들이 그것을 영위하는 이들의 정상적이고 지속가능한 사회생활을 가능하게 하는 최소한의 조건을 제공하는 것인지, 과도한 노동투입을 요구하는 양적 보상만 비대해져 있는 일자리인지 등 일자리 구성과 관련한 쟁점들이다.

둘째는 어떤 일자리가 좋아지는 게 다른 일자리가 나빠지도록 하는 관계에 있는지, 혹은 상호 상승적일 수 있는지 등에 관한 쟁점이다. 만일 어떤 산업 내에서 일자리들 간에 체계적인 차별이 존재하고 그런 제로섬(zero sum)적인 부당한 관계가 형성돼 있다면 그것은 구조화된 고용불평등 상황으로 분명 정책적 내지 노사관계적 개입이 필요하다.

셋째는 이른바 매칭(matching)의 문제로, 누군가 자신의 조건에서 다른 기회가 없어서, 아니면 다른 더 좋은 일자리를 얻을 기회에서 체계적으로 배제돼서 그런 기회를 얻지 못하는, 일종의 ‘강요된 하향 매칭’ 상황이 발생하고 있는 건 아닌지 등이 쟁점이다. 만일 그렇다면 이 역시 어떻게 개선책을 모색해야 하고 그것은 앞서 두 가지 쟁점과 결부해서 사고해야 한다.

일자리 문제는 정부뿐 아니라 노사 모두 그에 대한 관심을 집중해서 높이고, 현재의 상태를 어떻게 바꿀지 선도적으로 고민하면서 풀어야 한다. 그 방향은 불평등을 해소하고 일자리 기회를 잘 배분해서 지속가능한 산업 및 경제구조와 더불어 개인들 삶에 기회를 부여하고 증진하는 데 맞춰야 할 것이다. 만일 ‘일자리 관계’라고 하는 보다 입체적이며 거시적인 시각 속에서 우리의 일자리 문제를 다시 그리고 상상하며 답을 찾게 되면, 현재의 고용관계 중심적 시각에 비해 훨씬 복합적으로 문제를 바라보고 다양한 대안을 생각할 여지가 있을 것이다. 일자리 문제는 이러한 식으로 사고방식을 바꾸면서 일자리와 일자리 관계에 대한 전방위적인 진단과 대화를 사회 곳곳에서 활성화시켜 나가면서 찾아야 제대로 된 해답을 구할 수 있다.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mjnpark@kl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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