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헌법 제33조1항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근로자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해 자주적인 단결권·단체교섭권 및 단체행동권을 가진다.” 법학을 전공했는지라 노동자 권리에 대해 얘기할 때마다 이 헌법 조항을 중요하게 말하게 된다. 노동자가 노동조합에 가입하고, 노동조건 향상을 위해 사용자와 단체교섭을 하고, 파업을 할 권리는 헌법에 보장돼 있는 기본적 권리라고. 그러니 이런 기본권을 행사하는 것은 너무나 정당할 뿐 아니라 사용자나 정부가 함부로 침해할 수 없는 권리라고.

그러나 우리 사회에서 이러한 노동기본권은 결코 저절로 보장되지 않았다. 헌법의 하위규범이어야 할 노동법으로 노동기본권을 철저히 제한해 온 데다, 그 왜곡된 노동법마저 사용자에겐 힘을 발휘하지 못했다. 단체교섭권의 예를 들어 보자. 1987년 노동자 대투쟁과 민주노조의 분출이 있기 전까지 노동자가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고, 더구나 노동조건을 노사가 대등하게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생각은 불온하기 그지없는 관념이었다.

87년 이후에도 단체교섭권은 법·제도 안팎에서 공격받아 왔다. 가장 전형적 노동조건이라 할 임금인상 요구는 정부의 임금억제정책 앞에서 반국가적 이기주의로 탄압받았다. 헌법과 법률에 아무런 근거도 없이, 법원은 소위 ‘경영권’에 속하는 사항은 단체교섭 대상이 될 수 없다고 해서 노동기본권 행사를 불법화했다. 최근에는 박근혜 정부가 아무런 법적 근거도 없이 사용자의 경영권·인사권을 제약하는 단체협약은 위법·불합리하다며 시정명령을 휘두르고 있다.

역사적으로 보면 임금 억제는 실은 사용자의 가장 중요한 경영상 사항에 속한다. “시키면 시키는 대로” 위험하고 열악하고 모욕적인 환경에서 일하게 하다가, 자르고 싶을 때 마음대로 자를 수 있는 것이 인사권의 핵심이다. 노동자들은 투쟁을 통해, 또 노동조합을 통해 경영권·인사권에 대항하고, 인간다운 노동조건을 만들어 왔다. 정부와 자본이 아무리 이러한 노동기본권을 혐오하더라도, 헌법에 명문화돼 있고 투쟁의 역사가 있으니 대놓고 부정하긴 쉽지 않다.

그런데 90년대 말 이후 상황이 다시 역전됐다. 해고가 손쉬운 비정규직의 활용은 노동자들의 권리 행사를 억압하는 데 매우 효과적이다. 3개월·6개월·1년 뒤 재계약 여부를 사용자가 결정하니, 열악한 노동조건도 감내하고, 사용자 눈 밖에 날 일은 아예 생각도 안 하는 게 현실적 고용보장책이다. 외주화된 파견·용역·하청노동자들의 경우는 한결 심하다.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자신이 속한 업체가 계약해지·폐업으로 통째로 날아가 버리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이 모든 생사여탈권을 가진 원청은 자신은 법적으로 책임이 없다며 대화조차 거부한다. 그리고 법과 공권력은 이런 원청을 비호한다. 이것이 지금 티브로드에서, 김포공항(한국공항공사)과 인천공항(인천공항공사)에서, 조선소(현대중공업·현대미포조선·삼성중공업)에서, 동양시멘트에서, 아사히글라스에서, 톨게이트(한국도로공사)에서, 건설현장에서, 전국 방방곡곡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이다.

왜 고용주가 아닌 원청이 노동조합을 상대하고 교섭에 응해야 하느냐고 저들은 질문한다. 원청이 파견·용역·하청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을 지배하고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조건 향상을 위해서는 실제 그걸 가능하게 할 수 있는 원청과 상대해야 하기 때문이다. 18대·19대 국회에서도, 그리고 지금 20대 국회에서도 이러한 지배력을 가진 자를 노조법의 ‘사용자’에 포함시켜 합당한 책임을 부여하자는 법안이 제출됐다. ‘당해 노동조합의 상대방으로서의 지위를 인정할 수 있거나 또는 근로자의 근로조건에 대하여 실질적인 지배력 또는 영향력이 있는 자’가 단체교섭에 응해야 한다는 것은, 지금 시대의 헌법적 요구다.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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