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형동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지난 24일 대법원이 우리에게 너무나 친숙한 ‘야쿠르트 아주머니’의 노동자성을 판단하는 판결을 내렸다. 결론은 “노동자가 아니므로 노동법에서 정한 퇴직금 등을 받을 수 없다”는 것이다. 안타까울 따름이다.

서울 여의도 한국노총회관에도 매일 아침 일찍 야쿠르트 아주머니가 방문한다. 봄·여름·가을·겨울을 가리지 않고 늘 같은 모습이다. 필자가 알기로 아주머니는 능력을 인정받아 지난해에는 회사 추천으로 ‘동남아 4박5일 여행’까지 다녀왔다. 무려 24년 경력의 베테랑이다.

마침 아주머니께 대법원 판결에 대한 감상을 물어봤다. 아주머니는 “판결 결과를 알고 있다. 너무나 속상하다”고 말문을 열었다. “사업자 자격으로 입사한 것은 맞지만….” 이어지는 말씀의 핵심은 “근무장소·근무시간·복장 등 업무와 관련해 상당 부분 한국야쿠르트의 지시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한참을 쉴 틈 없이 한탄을 했다.

가장 크게 느낀 점은 아주머니 역시 자신이 노동자(근로자)인지 아닌지 확신이 없다는 점이다. 너무나 당연하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 노동법만큼 노동자로 인정받기 어려운 제도도 없지 않는가. 게다가 아주머니는 이른바 제조업 같은 고전적이고 전형적인 형태의 노동자들만 봐 오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아주머니께 아니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아주머니는 노동자가 맞다”고 말이다. 세상은 정말 빠르게 변하고 있음을 바쁘게 일하느라 몰랐을 뿐이라고. 도대체 나의 사용자가 누구인지 알기 어려운 일자리가 얼마나 많이 등장했는가. “사용자가 없다”는 것에만 집중하게 되면 결과적으로 “나는 노동자가 아니다”는 오류함정으로 빠지고 만다.

노동자성 판단의 핵심인 ‘종속적 관계’는 점점 더 모호해지고만 있다. 계약형식을 조작하는 게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야쿠르트 아주머니도 회사와 요구르트 위탁판매 계약을 체결했을 뿐이지 근로계약서를 본 적이 없을 것이다. 그러니 정체성을 정확히는 알지 못하지만 아마도 스스로를 노동자가 아니라 생각하기 쉽지 않겠는가.

이번 판례에 대한 주요한 비판은 대법원이 노동자성 판단기준에 대한 기존 입장에서 크게 후퇴했다는 데 모아졌다. ‘구닥다리’‘갈파파고스’판결이라는 혹평이다. 이번 판결이 대법원 입장이라면 우리나라 노동현장에서 노동자로 인정받을 수 있는 자는 제조업 등 일부 사업장 종사자로 한정될 것이다.

최근까지 대법원이 견지해 온 기준에 맞춰 내린 판결에도 미치지 못한다. (다행스럽게도) 대법원은 그동안 학원강사·채권추심원·캐디 등에 대해 노동자성을 인정하거나 노동조합 조합원 자격을 확대해 인정해 오지 않았나. ‘종속적 관계’를 야쿠르트 아주머니가 처한 현실에 맞게 판단했어야 한다. 요컨대 사용자가 불분명하는 것은 노동자 여부를 판단하는 절대적인 요건이 될 수 없다.

노동현장은 법원에서 노동자성 판결이 내려질 때마다, 그 결과에 따라 크게 술렁인다. 이번 판결도 그렇다. 무려 전국적으로 1만3천여명의 야쿠르트 아주머니들의 노동자성에 영향을 미칠 게 분명하다. 노동자성을 인정받는 자체는 굉장히 중요하다. 일하는 자가 노동자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제도적으로는 노동법의 보호를 받게 된다. 헌법상 노동기본권과 근로기본권이라는 명시적인 보장도 받게 되는 커다란 의의가 있다.

그런데 판결이 이처럼 관심을 받는 데는 역설적이게도 다른 활로가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제도를 뜯어보면 노동법 말고는 일하는 자들을 그나마 보호하는 제도자체가 전무하지 않는가. 만약 노동법상 노동자 지위를 확인받지 않더라도 일하는 자가 안전한 일터에서 자신의 노동 가치를 충분히 보상받을 수 있는 제도적 고안이 충분하다면 굳이 노동자성 판단에 큰 관심을 보이지 않을 것이다. ‘사회안전망’‘사회보장’‘재취업’ 등 그 무엇이라고 이름 붙여도 상관없다.

경직된 제도를 쉽게 바꾸기는 어렵겠지만, 분명 전환이 필요한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방향은 간단명료하다. 일하는 자 모두는 노동자여야 한다. 특히 상대적으로 매우 열악한 노동조건에서 일하는 자들은 언제나 노동법으로 보호받아야 한다. 그렇지 않더라도 노동법과 동일한 수준의 제도적인 보호가 있어야 한다. 야쿠르트 아주머니 사건처럼 개인사업자로 등록됐지만 최저임금 정도의 수익조차 얻지 못하는 수많은 노동자들이 여기에 속할 것이다. 언제까지 노동자인지 아닌지 여부에 목을 맬 수는 없지 않는가.



한국노총 중앙법률원 실장(변호사) (94kimhyung@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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