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비붐 세대의 은퇴는 이른바 ‘87년 세대’로 일컬어지는 민주노조운동의 주역들이 노동조합의 품을 벗어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동운동 세대교체가 이뤄지는 것이다. 금속노조 노동연구원(원장 김성혁)이 노동운동에 대한 선배-후배 세대의 인식 차이를 보여 주는 연구 결과를 31일 발표했다.

연구원이 노조 소속 단위사업장 임원·집행위원·대의원 등 현장간부 2천275명을 대상으로 ‘현장간부의 산별노조 인식과 전망’ 설문조사를 진행했다. 연구원은 응답자의 연령(20·30·40·50대 이상)과 소속 단위 조직형태(기업지부·지역지부)를 중심으로 조사 결과를 분석했다.

금속노조 산별노조운동, 허리가 약한 '모래시계형'

산별노조 효용성을 묻는 질문에 대한 응답자 평점은 3.45점이었다. 가령 △비정규직 권익보호 △지역 연대활동 △노동자 간 형평성 제고 △노동자 정치세력화 △노동시장 유연성 감소 △구조조정 저지 등 노동조합에 요구되는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는 데 있어 산별노조가 기업별노조보다 효과적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다. 1점은 "전혀 그렇지 않다" 3점은 "보통이다" 5점은 "매우 그렇다"를 의미한다.

그렇다면 노조의 실제 활동은 어떻게 평가하고 있을까. 가장 높은 점수를 받은 항목은 "시민·사회운동과의 연대활동"(3.52점)으로 나타났다. 그 뒤를 △사회경제적 변혁활동(3.46점) △노동자 정치세력화(3.44점)가 이었다. 긍정적 평가만 나온 것은 아니다. "기업별노조의 답습과 대공장 중심성"(3.23점)에 대해서는 부정적 평가가 우세했다.

연구원은 “금속노조의 산별노조운동은 모래시계형 구조, 즉 조합원의 경제적 권익보호와 노조 상층부를 중심으로 한 시민사회적 연대·정치세력화는 활발하지만 정작 산별노조의 허리라고 할 수 있는 지역 차원의 연대활동은 사업장 저마다의 기업별노조 관행에 가로막혀 있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연령별·조직형태별 조사 결과는 더욱 흥미롭다. 예를 들어 ‘사회경제적 변혁활동’ 항목에 대한 평점은 3.46점으로 매우 높게 나타났는데, 연령과 조직형태에 따라 상당한 편차를 보였다. 연령별로는 20대가 3.82점으로 가장 높은 평점을 매긴 반면 연령이 증가할수록 그런 인식이 점차 약해졌다. 일반적으로 나이가 들수록 조합원들의 임금 우선주의가 강해지는 경향을 감안하면 충분히 예측 가능한 결과다. 평균 연령이 높은 기업지부 현장간부(46.2세)들이 지역지부에 속한 현장간부(41.2세)보다 경제주의적 성향을 강하게 드러낸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제는 노동현장의 고령화다. 연구원은 “미래에 청년층 신규 조합원이 꾸준히 유입되지 않는다면 갈수록 경제주의적·실리주의적 요구가 거세질 것”이라며 “이러한 실리주의적 경향은 조직 내 온존하고 있는 기업별노조주의를 보다 강화시켜 향후 산별노조운동에 걸림돌로 작용하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후배들에게 '실리적 조합주의' 물려줄 것인가

노조 현장간부들은 “노조운동이 조합원만이 아니라 노동자 계급 전체를 대상으로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동시에 노조가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기보다는 경제적 권익 향상에 중심을 둬야 한다”고 인식하고 있었다. 실리적 조합주의에 입각한 관점이다.

연구원은 “노조의 후배 세대가 실리적 조합주의의 부정적 유산을 물려받는다면 산별노조운동의 미래는 변질될 것이 자명하다”며 “그러나 조사 결과 후배 세대는 임금 우선주의나 경제주의적 성향이 덜하고, 불합리한 노동법제 개선을 위한 대정부 투쟁과 미조직 노동자 조직화를 통한 조직 확대를 강조하는 등 기존 노조운동과는 분명히 다른 태도를 보여 줬다”고 분석했다. 이어 “베이비붐 세대의 노동시장 대거 이탈로 노동운동 격변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금속노조의 미래 역시 불확정적이지만, 노조의 노력 여하에 따라 새로운 발전과 희망을 그릴 수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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