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호동 노동자투쟁연대 대표

대표적인 대중교통 수단인 버스의 공영제를 위해 투쟁하는 사람. 2004년부터 시행된 버스준공영제하에서 버스업체의 정비직 노동자 임금삭감, 연봉제와 비정규직 전환에 맞서 저항한 버스노동자. 자신이 돌아가야 할 버스회사 앞에서 7년째 천막농성·집회·선전전 등 원직복직 투쟁을 하는 해고노동자. 버스 정비 25년 경력의 한남운수 이병삼.

이병삼은 모친이 일찍 돌아가셔서 고등학교에 진학하기 어려운 가정 형편이었다. 올해 2월에 돌아가신 부친이 자신처럼 어부가 되는 것보다 기술을 배우라고 하셔서 고향 무안을 떠나 광명에서 정비를 배우기 시작했다. 카센터에서 먹고 자면서 기술을 배우기로 하고 6개월 정도 일했지만 월급을 안 줘서 86년 버스회사로 직장을 옮겼다. 광명의 화영운수라는 곳에서 버스정비 노동자의 삶이 시작됐다.

“당시에는 정비사 중에 초등학교도 안 나온 사람도 많았고요. 미성년자들도 저 말고 8명 정도 있을 정도였어요.” 기술을 배우는 조건으로 월급 3만원을 받았다. 정비를 좀 배운 뒤 경력도 쌓이고 아는 사람을 통해 회사를 옮기면서 급여도 조금씩 올라갔다. 주로 서울과 경기도 버스회사에서 일했고 문제의 한남운수에는 2002년에 입사했다. 성실하게 일만 했던 이병삼은 회사 평가에서 1등으로 꼽힐 정도의 유능한 버스 정비사로 인정받았다고 한다.

하지만 한남운수는 안타깝게도 2008년에 부도가 났다. 새롭게 회사를 인수한 박복규 대표이사는 구조조정부터 일방 통보했다. 2009년 2월 취임식에서 정비노동자들에게 인원감축, 임금 15% 삭감, 연봉제 도입, 1년 계약직 비정규직화를 일방 통보했다. 이병삼과 정비노동자들의 8년여에 이르는 힘겨운 싸움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결과를 뻔히 알면서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노동조합에 호소해 봤지만 허사였다. 정비노동자들은 맞서 싸울 방법을 찾기 위해 서울남부노동상담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사측은 대형면허 보유자 6명을 정비직에서 운전직으로 부당전보하고 지방노동위원회 사건이 진행되는 반년 가까이 임금을 지급하지 않았다. 무임금으로 버텨야 하는 동료들을 위해 정비노동자들은 임금을 쪼개 십시일반으로 서로를 도왔지만 생계가 목에 걸린 6명은 결국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사태가 일단락되자 회사는 정비노동자들이 보낸 내용증명에 대표로 이름을 올렸던 이병삼을 주모자로 지목하고 '빨갱이'로 몰며 집중적으로 괴롭히기 시작했다. 견디기 힘든 폭언과 협박이 계속됐다. 그는 당시 2년여를 술을 달고 살았다고 한다. 계속 당하고만 살 수 없다는 생각에 노동법을 공부하며 정비 현장노동자의 권리를 조금이라도 되찾기 위해 애쓰기 시작했다.

“그동안 부당하게 당했던 부분을 바꾸라고 요구하기 시작했어요. 연차와 휴게시간을 쟁취했고요. 점심시간도 없이 일하고 밥 먹다 말고 어디 차고에 가야 하고 심지어 밥도 못 먹고 일한 경우도 많았거든요. 우리가 몰랐던 부분들이 사실은 우리 노동자의 권리였구나, 바보같이 당하지만 말고 권리를 찾자는 인식이 정비사들 사이에서 형성되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회사로부터는 완전히 찍혔지요. 제가 버스회사 내에서도 정비사들의 기쁨조였어요. 힘들 때 사람들 웃게 해 주는 재주도 있고. 근데 하루아침에 빨갱이로 몰리기 시작했어요.”

결국 사측으로부터 2010년 5월 3개월의 정직 징계를 받았다. 또다시 대형면허 보유자 5명을 운전직으로 부당전보했다. 이들이 대형면허를 반납해 버리자 2010년 10월에는 3명을 정직하며 드디어 이병삼을 비롯한 2명을 해고했다.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부당해고에 대한 민사소송을 제기해 1심에서는 승소했다. 2012년 7월19일 민주노총 공공운수노조 버스지부 버스정비사지회 설립의 기쁨과 함께 투쟁의 전열을 가다듬고 버스정비의 현실을 부지런히 알려 내는 활동을 병행했다. 필자는 이 시기에 웃음이 선한 버스정비 해고자 이병삼을 만나 연대하기 시작했다. 2014년 10월30일부터는 강도를 높여 천막농성을 시작했다. 법원의 정당한 판결을 기대했지만 2·3심에서는 어이없게도 패소했다. 지난날의 자신은 회사에서 주는 대로 받고 시키는 대로 일하는 종노릇을 한 것이었기에 결코 투쟁을 포기할 수 없다고 한다. 판결에 실망했지만 그것으로 이병삼과 정비노동자들의 투쟁의지가 꺾이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정직과 해고로 생활은 엉망이 됐다. 홀로 키우던 고등학생 아들을 제대로 돌볼 수도 없었고 경제적 압박도 점점 심해졌다. 투쟁과 생계를 병행하기 위해 주유소 알바와 택배도 했다. 어떤 식으로든 버텨야 하니까. 현장 동료들이 십시일반으로 기금을 마련해 주기도 해서 근근이 버텨 온 세월이 7년째다.

버스 준공영제에 의해 버스 운전직 임금은 노사가 합의하면 서울시가 실비로 보전해 준다. 하지만 정비직 노동자와 관리직 노동자 인건비는 서울시가 표준운송원가에 따라 버스업체에 지급만 할 뿐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지급했는지 따로 정산하지 않는다는 허점이 있다. 대부분 버스업체 임원 인건비로 전용되는 현실이라고 한다. 이러한 제도적 허점 속에 착취당하는 버스정비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싸워 온 이병삼. 버스업계에서 악용되는 제도를 구조적으로 바꾸기 위해 7년째 분투하고 있는 해고노동자 이병삼.

9월20일 오후에 한남운수 해고자 복직 집중결의대회가 개최된다. 연대를 부탁 드린다. 가까운 시일 내에 그가 마침내 현장으로 돌아가 기름때 묻은 장갑을 끼고 정비한 버스를 타고 싶다. 환하고 선한 웃음의 버스정비노동자 이병삼을 진심으로 응원한다.

노동자투쟁연대 대표 (hdlee2001@empa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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