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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 채용’ 협약 무효판결 유감
▲ 김기덕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1. ‘고용세습’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다. 벌써 몇 년 전부터였다.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의 유가족을 특별채용하도록 한 단체협약이 ‘고용세습’이라고 비난해 왔다. 아마도 대기업 귀족노조라는 비난과 함께, 그 근거로 해 왔던 거였다. 이에 관해서 유가족 특별채용이 뭐가 문제냐고 나는 지난주에 매일노동뉴스 칼럼을 썼다. 그런데 그 다음날 서울고등법원이 그런 단체협약은 무효라고 판결했다는 뉴스였다. 내가 판례를 말하면서 무효가 아니라고 법적으로 쓴 것은 아니었지만 법원의 판결 뉴스를 그저 무심히 읽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지난 3월 고용노동부는 근로자 100인 이상 노조가 있는 전국 2천769곳 사업장의 단체협약 실태를 전수조사한 결과 전체 사업장 중 4분의 1에 해당하는 694곳이 노조원 자녀의 우선·특별채용을 보장하는 ‘고용세습’ 조항을 두고 있다고 발표했다. 이 중 505개 사업장에서 산재 사망자의 자녀를 우선·특별 채용하는 규정을 두고 있었다. 그러니 이번 법원의 판결은 단순히 판결을 받은 사업장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이 나라에서 산재사망자의 유가족 채용제도를 둔 사업장들의 단체협약 모두에 관한 법적 비난일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노동자가 사용자에 맞서 노동조합을 조직해서 교섭과 투쟁으로 쟁취해 낸 단체협약을 무효로 만드는 것이니 나는 그저 무심히 읽을 수가 없었다.

2. “업무상재해(산재)로 사망한 직원의 자녀를 특별채용하도록 한 현대·기아자동차의 단체협약(단협)은 무효라는 항소심 법원의 첫 판결이 나왔다.” 뉴스 기사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었다. 산재사망 조합원의 자녀를 특별채용하도록 한 것이니 귀족노조의 기득권·갑질이라고 비난을 하고, 가뜩이나 어려운 취업난에 대기업 특별채용이라니 심각한 청년실업 문제를 들어서 비난하는 것은 이 나라에서 사용자 자본을 대변하는 언론의 칼럼 등으로 수시로 읽어 왔던 터라 새삼스레 대꾸하고 싶지 않지만 이렇게 구체적인 사건에 실정법을 적용해서 말하는 법원의 판결은 그런 비법적 비난을 한 것은 아닐 테니 나는 궁금했다. 도대체 무엇으로 법적 비난을 하고서 무효라고 판결한 것인지 나는 비난의 이유가 궁금했다. 유가족을 대리해서 사건을 진행하고 있는 것도 아닌 데다 판결문을 입수하지도 못했으니 나는 뉴스에서 판결의 이유를 읽어야 했다.

1985년 기아자동차에 입사해 23년간 금형세척 업무를 한 이씨는 2008년 2월 현대자동차 남양연구소로 전출한 지 6개월 뒤 백혈병 진단을 받고 투병하다 2010년 사망했다. 회사가 이씨에게 10년간 호흡기 보호구를 지급하지 않는 채 작업을 시켰고, 이씨는 세척제에 함유된 발암물질인 벤젠에 오랜 시간 노출돼 발병한 것으로 판명돼 산재를 승인받았다. 그래서 유가족은 사용자 회사를 상대로 안전배려의무 위반에 따른 손해배상 청구와 함께 단체협약에 따라 자녀를 채용해 달라고 청구했던 것인데, 법원은 손해배상은 인정하되 유가족 채용은 인정하지 않았다. 법적으로 사용자의 손해배상책임은 인정된다고 판단했지만, 사용자의 유가족 채용의무는 인정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이렇게 서울고등법원은 대한민국의 법이 손해배상 말고 유가족 채용은 허용되지 않는다고 판결로 선언을 했다.

구체적으로 보자. 기아자동차 단체협약은 “업무상재해로 인한 사망 조합원의 직계가족 1인에 대해 결격사유가 없는 한 요청일로부터 6개월 내 특별채용하도록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현대자동차 단체협약도 동일한 취지의 규정을 두고 있다. 바로 이 단체협약을 근거로 유가족은 사용자 회사를 상대로 특별채용해 달라고 청구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단체협약에 관해서, 서울고법 재판부는 “고용계약을 장래 불특정 시점에 불특정인과 체결하도록 강제하는 단체협약은 사용자 고용계약의 자유를 현저하게 제한하는 것으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배돼 무효”라고 판결했고, 최근 청년실업 문제까지 덧붙였다고 언론은 보도했다. 청년실업 운운했다는 판결의 사족을 뺀다면 결국 유가족 특별채용의 단체협약에 관해서는 “사용자 고용계약의 자유를 현저히 제한하는 것”이라는 것이 법적 비난이었다고 볼 수 있다. 계약 자유의 원칙이 이 세상의 기본질서인데 산재사망자 유가족 특별채용의 단체협약은 사용자 자본이 근로계약을 체결할 자유를 현저히 제한한 것이라서 법적으로 용납할 수 없는 것이라고 대한민국의 고등법원 재판부는 판결로서 선언했다는 것이다. 사용자의 계약 체결의 자유를 현저히 제한하는 것이라서 무효라니. 10년 동안 보호구조차 지급하지 않는 등으로 사용자로서 해야 할 안전배려의무를 준수하지 않아서 노동자를 백혈병으로 죽게 한 사용자에 대해, 그가 노조와 스스로 합의해 자신의 근로계약 체결의 자유를 제한해 산재사망 자녀를 근로자로 채용하기로 한 걸 두고서 과연 “사용자 고용계약의 자유를 현저히 제한하는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는 것인지, 감히 ‘현저히’라고 말할 자신이 없는 나로서는 도무지 판결 이유를 납득할 수가 없다.

그러니 판결에서 청년실업 운운했다는 것은 어쩌면 그런 법적 비난이 신통치 않아서 덧붙인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이 나는 들었다. “최근 청년실업이 심각한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고 있어서 기회의 불공정성에 대한 좌절감과 분노가 유례없이 커지는 상황”이라며 “취업기회 제공의 평등에 관한 기준은 종전보다 엄격하게 정립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유족을 특별채용하는 것은 사실상 일자리를 대물림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며 “고착된 노동자계급의 출현으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어 정의관념에 반한다”고 덧붙였다고 판결 이유를 인용해서 보도한 뉴스를 읽으면서도 내 의심을 떨치지 못했다. 일자리의 대물림이고, 고착된 노동자계급의 출현이라니 산재로 사망한 노동자가 얼마나 된다고 일자리가 대물림돼서 고착된 노동자계급의 출현을 걱정한다는 말인가. 기아자동차 3만5천명, 현대자동차 6만5천명의 노동자 중 몇 %가 산재를 당해서 사망하고, 그중 몇 명의 자녀가 특별채용해 달라고 청구할 것인지를 따져보고서 법원은 이 나라에서 세습 노동자계급의 출현을 걱정해야 했다. 그리고 그들의 특별채용으로 인해서 평등한 취업 기회를 박탈당할 이 나라 청년의 일자리를 걱정해야 했다. 현대차·기아차 등에서 특별채용은 정규직으로 채용될 노동자의 일자리를 빼앗는 것인지도 따져보고서 법원은 판결해야 했다. 생산직으로 일하다 사망한 노동자의 자녀는 대졸 사무관리직 일자리를 달라고 청구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아버지처럼 생산직으로 일할 수 있게 채용해 달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나라에서 현대차·기아차 등 제조업 대공장에서는 불법파견 소송으로 사내하청 근로가 파견근로라고 판결이 나온 최근에 이르기까지 생산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채용하는 일은 드물었다. 자동차·조선·전자·철강 등 이 나라에서 제조업 생산공정에서는 정규직 신규채용 없이 사내하청·촉탁직 등 비정규직으로 사용해 왔다.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었다. 벌써 10년·20년 동안 이 나라에서는 계속돼 와 노동현장은 늙었다고 말할 지경이 돼 버렸다. 40~50대의 늙은 노동자가 대부분인 사업장이 돼 버렸다. 그래서 사용자 자본과 권력도 이렇게 늙은 노동자들이 많은 임금을 받는 연공급의 임금제도를 바꿔야 한다고 성과급·직무급 등 임금체계 개편을 말해 온 지 오래다. 회사의 공장 규모는 3배·5배로 커졌다는데 회사가 고용한 정규직 노동자의 규모는 그대로다. 외주화에 사내하청 노동자, 비정규직으로 일자리를 채워 버렸다. 그나마 현대기아차에서는 비정규직 투쟁과 법원의 불법파견 판결에 놀라 최근 들어 사내하청 대신 직접고용으로 전환해서 생산직 노동자를 정규직으로 채용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아직도 조선·전자·철강 등 나머지 대부분의 대기업 공장에서는 신규채용 없이 사내하청으로 인력을 충원하고 있다. 이 나라 노동현장의 고용실태가 이 지경이었으니, 산재사망 노동자의 자녀를 생산직으로 채용한다는 것이 다른 청년노동자 채용을 어렵게 한다고 보기도 어려웠다. 산재사망 노동자의 자녀라면 청년일 것이 분명한데 그가 정규직으로 채용된다면 오히려 청년실업을 한 명이라도 해결하는 상황이라고 봐야 했다. 이렇게 판결은 사족조차도 나는 납득하기 어려웠다.

3. 산재사망, 노동자가 사업장의 일에 하나뿐인 제 목숨을 잃은 것이다. 달리 말하면 노동자가 목숨을 바쳐 일한 사업장이다. 그런 사업장의 사용자에게 노동자가 자신이 산재로 사망하게 될 경우에 자신이 부양해야 할 가족 1명을 특별히, 우선해서 채용해 사용해 달라고 하는 요구가 부당하고, 그 요구를 담아 낸 단체협약이 위법한 것이라고 비난을 하고 있다. 도저히 나는 그런 비난에 가담할 자신이 없다. 그걸 청년실업의 심각성이니 뭐니 해도 감히 나는 그 단체협약이 사용자의 고용계약의 자유, 즉 채용의 자유를 현저히 제한하는 것이라며 법적으로 무효라고 말하지 못하겠다. 이 나라에서 국가유공자의 자녀에게 법률로 가점을 부여해서 사실상 채용될 수 있도록 하고 있는 것도 따지고 보면 유공자의 자녀가 채용됨으로써 다른 청년의 일자리를 빼앗는 일이다. 그럼에도 국가 대한민국에 공헌한 유공자에 대한 보훈으로 혜택을 법률로 정해서 그 자녀를 보호하고 있다. 나는 이 나라에서 산재사망 노동자의 유가족에 대해서도 이렇게 국가가 법률로 배려할 일이라고 본다. 적어도 산재로 사망한 당해 사업장에라도 특별한 채용상의 우대가 주어지도록 할 일이라고 본다. ‘유가족 채용’ 협약은 이렇게 국가가 할 일을 노동자 스스로 한 일이다. 노동자가 노동조합을 조직해서 사용자를 상대로 요구해 교섭과 쟁의를 통해 단체협약에 우선채용·특별채용이라는 제목으로 체결해 낸 것인데 그걸 ‘고용세습’이라고 비난해 왔다. 그리고 오늘은 법원까지 비난에 합세하고 있으니 나는 유감이 아닐 수 없다.

노동법률원 법률사무소 새날 대표 (h7420t@yahoo.co.kr)

김기덕  h7420t@ya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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