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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 세운 강제징용 조선인 노동자상
일본 교토시 인근 단바지역은 20세기 초 최대 탄광지구였다. 군수물자인 망간을 채굴하는 곳이었다. 2차 세계대전 전후만 하더라도 노동자들로 북적이는 곳이었다. 물론 현재는 폐광된 광산이 즐비하다. 이곳에는 특별한 기념관이 있다. 지난 89년에 세워진 ‘단바망간기념관’이다. 일본 정부가 탄광역사를 알리기 위해 건립한 곳이 아니다. 일제 강점기 16살 때 강제로 끌려 와 광산에서 일했던 고 이정호씨가 사비로 건립했다. 강제징용의 실태를 알리기 위해서다. 한국과 일본 통틀어 강제징용 노동자의 비극적 역사를 배울 수 있는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 이정호씨는 끝내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일본 현지에서 숨졌다.

이런 가운데 지난 24일 단바망간기념관에는 고 이정호씨가 꿈에 그리던 고국 사람들이 찾아왔다. 한국 노동계를 대표해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을 포함한 집행부들이다. 이날 치러진 강제징용 조선인 노동자 상 건립 및 제막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당초 최종진 민주노총 위원장 직무대행도 참석하려 했으나 일본 당국의 석연치 않은 입국거부로 발길을 돌려야 했다.

조선인 노동자상 건립은 양대 노총이 2014년 우키시마호 침몰 희생자 합동 추모제에 참석한 것을 계기로 추진됐다. 지난 45년 8월24일 우키시마호는 교토시 시모사바가 인근 마이즈루항 앞바다에서 원인 모를 폭발로 침몰했다. 당초 오미나타항구에서 부산으로 향하기로 했던 우키시마호는 갑자기 항로를 변경해 교토시 시모사바가 인근 마이즈루항으로 향했다. 어찌된 일인지 우키시마호는 부산이 아니라 일본 연안을 따라 마이즈루만의 일본 해군기지로 이동한 것이었다. 일본 당국은 조선인 승선자 3천735명 가운데 524명, 일본인도 24명 사망했다고 발표했다. 생존자는 900여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생존자들에 따르면 당시 우키시마호에는 약 7천명의 조선인 노동자들이 탑승했다고 증언했다.

우키시마호 침몰은 여러 가지 의혹을 낳았다. 우키시마호의 급작스런 항로변경 이유와 침몰 원인에 대한 것이다. 일본당국은 우키시마호가 음료수를 싣기 위해 항로를 바꿨고, 이 과정에서 미군이 설치한 기뢰를 건드렸기 때문에 폭발했다고 발표했다. 반면 일본인 선원과 생존자들은 기뢰폭발에 의한 물기둥은 없었다고 주장한다. 또 우키시마호는 처음부터 부산으로 향하지 않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일본이 패망한 직후의 혼란스런 상황에서 일본 해군이 배까지 마련해 조선인 노동자를 고국으로 보내주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일본 해군이 군사기밀 보호와 강제징용 은폐를 위해 고의로 폭침했다는 의혹이다.

사건이 미궁에 빠졌지만 일본 당국은 이를 덮는 데 급급했다. 당시 재일조선인연맹은 일본당국을 고발했으나 연합군최고사령부는 이 사건을 기각했다. 선체인양은 5년이 지난 후인 지난 50년 3월에야 시작됐다. 사건이 발생한 지 9년이 지난 후인 54년에 수습된 유골은 한 데 모아 태워졌다. 민간 인양업체인 이이노중공업은 우키시마호를 조각 내 고철로 팔아 버려 진상규명은 더 이상 어려워졌다. 우키시마호 생존자와 유가족들은 지난 92년 일본 법원에 일본 정부의 사죄와 손해보상을 요구했다. 일본 법원은 2001년 사죄 요구는 기각한 채 위자료만 지급하는 것으로 판결을 내렸다. 하지만 일본 고등법원과 최고법원은 이를 뒤집고 원고 패소 판결을 확정했다. 그간 일본 정부는 해방 이후 벌어진 침몰 사건이어서 사죄 대상이 아니며, 강제징용에 대한 보상도 완료했다며 발뺌했다.

우키시마호 침몰은 일제 강점시절 강제징용 노동자의 참혹한 역사를 상징하는 사건이다. 적어도 강제징용된 조선인 노동자는 왜 희생됐고, 살아남은 노동자조차 고국으로 돌아올 수 없었던 이유는 밝혀져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양대 노총의 조선인 노동자 상 건립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그것도 일본의 강제징용 현장에 조선인 노동자 상을 세운 것은 가치가 있다. 식민지배 하에 강제징용은 합법이라면서 사죄와 배상을 하지 않는 일본 정부의 실체를 알리는 일이기 때문이다. 일본과의 관계를 고려해 강제징용 문제에 적극 나서지 않는 한국 정부에도 경종을 울리는 것이다. 양대 노총은 내년 3월1일에 서울에 두 번째 노동자상을 세울 계획이라고 한다. 선배 노동자들의 비극적 역사를 직시하고, 이를 해결하려는 양대 노총의 행보가 더욱 확대되길 기대한다.

박성국  park21@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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