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식 한국노총 사무처장

고 이소선 어머니가 영면하신 지 올해로 5주기를 맞았다. 살아생전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로, 이 땅 노동자들의 어머니로 고난의 삶을 살아오신 이소선 어머니. 어머니의 한결같은 바람은 “뭉쳐야 산다. 그래야 이긴다”였다. <매일노동뉴스>는 30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리는 ‘이소선 어머니 5주기 토론회’를 앞두고 6회에 걸쳐 연속기고를 게재한다.<편집자>



중세 도시의 공기는 자유를 낳는다는 말이 있다. 노동조합은 민주주의를 준다. 리오 휴버먼(Leo Huberman)은 직장이나 회사에서 사라진 민주주의를 노동조합이 회복시켜 준다고 했다. 노동조합은 민주주의의 학교다. 세계 역사는, 인류의 진보는 건강하고 힘 있는 노동조합이 있을 때 비로서 가능했다. 민주주의·복지국가·근로시간단축 등이 좋은 사례다. 이러한 노동조합의 힘은 단결과 연대에서 나오며, 조직률과 단체협약 적용률이 그 지표 중 하나다. 우리도 노동조합이 활발하게 활동할 때, 노동조합 조직률은 20%대였다. 그때 우리는 정치민주화를 구가했다. 노조 조직률이나 협약 적용률이 10%대인 지금 우리는 비민주와 차별 그리고 양극화와 이중구조로 고통받고 있다. 복수노조와 창구단일화는 노노갈등과 부당노동행위의 수단으로 전락했다.

일본 교토 근처 단바망간광산. 영문도 모르고, 일제에 의해 강제로 끌려왔다가, 진폐증 등 갖은 고생을 하며 눈을 감아야 엄마와 조국을 볼 수 있었던 소년 노동자. 양대 노총이 일제에 의한 강제징용 노동자상 제막식을 함께 했다. '적어도 통일사업만은 양대 노총이 하나'라는 주장에 참석자들 간 이견이 없어 보였다.

노동계가 하나 돼야 하는데, 사람들의 욕심 때문에 안 된다며, 통합에 저해되는 어떠한 행위에도 불같이 화를 내셨다는 이소선 어머니, 반노동과 노동통제가 심할수록 더더욱 그립다고 김동만 한국노총 위원장은 전한다. 그도 그럴 것이 한 달만 연락을 못드려도 전화를 주셨고, 노동계 통합을 지상과제로 여겼던 분인데, 같이 현 시기 투쟁을 함께해야 할 한 분은 영어의 몸이 되었으니.

그렇다. 뭉쳐야 산다. 그래야 이길 수 있다는 이소선 어머니의 육성은 더 이상 들을 수 없으나 노동자의 삶이 팍팍하고, 노동운동이 힘들수록 말씀은 더욱 또렷이 살아온다.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양극화와 이중구조 속에 노동자는 온갖 이유로 나뉘어져 있고, 차별과 분할지배는 만성화됐다. 위기 돌파와 문제 해결의 주체인 노동운동은 도덕성·정당성·대표성의 위기 속에 고립되고 있으며 뾰족한 위기 극복 방법을 못 찾고, 관성적인 운동에 매몰돼 있다. 역사상 초유라는 공공·금융부문 양대 노총 총파업 투쟁도 징검다리 투쟁에 머문다. 공공노련 9월22일, 금융노조 9월23일, 공공운수노조 9월27일, 보건의료노조 9월28일, 공공연맹 9월29일. 이제 통합은 물론이고, 집중이라는 과제가 추가된다.

역사가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이며, 도전과 응전의 과정이라고 할 때 87년 체제를 가져왔던 민주화 투쟁과 폭발적 노동운동의 성장은 지속가능한 한국의 노동과 한국사회 발전을 위해, 87년 체제 30년, IMF체제 20년을 지양하는 새로운 30년의 새 체제를 요구하고 있다. 새로운 체제의 열쇳말은 노동이 존중되는 평등·복지·통일국가이며, 이것은 전태일 열사의 분신 이후 41년간 계속된 이소선 어머니의 공생애를 통해 체득한 유훈, '뭉쳐야 살고, 그래야 이긴다'는 말씀대로 통합과 집중을 목적의식적으로 지향하는 양대 노총의 단결과 연대를 통해서만이 효과적으로 관철될 수 있다.

1970년 전태일의 분신으로 무법천지, 참담한 노동현실은 그 민낯을 백일하에 드러냈다. 1975년 루이스 전환점(Lewisian turning point)을 통과해 노동력의 제한적 공급에 직면한 한국은 임금인상과 노동기본권 보장 등 획기적인 노동정책의 전환을 요구받았으나, 군부독재정권은 거꾸로 노동탄압으로 일관했다. 유린된 노동자의 기본권과 노동운동의 시민권은 87~89년 노동자 대투쟁을 거치면서 비로소 빛을 본다. 주 44시간제 및 주 5일 근무제, 3자 개입 및 복수노조 금지 철폐, 노동조합 정치활동 보장과 제한적인 공무원 및 교원 노동기본권 보장, 91년 국제노동기구(ILO) 가입, 95년 민주노총 출범, 96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등으로 거침없이 질주하던 87년 체제는 10년도 안 돼 97년 IMF 경제위기를 맞아 예봉이 꺾인다. 만개조로, 봄날은 짧았고, 길고 혹독한 겨울이 계속되고 있다. 그 뒤에는 지속적인 보수정권 및 수구정권의 집권과 세계화, 금융화 및 날로 심해지는 신자유주의 정책기조가 있다.

고립 분산과 분열, 노사관계의 사법화(司法化)와 사법화(私法化), 권리와 이익의 일방적 편취와 비용과 부담의 전가 및 외부화 등 비대칭성, 공동체 의식의 실종과 연대의 상실 등 천민·정글자본주의의 비민주·부정의는 노동운동 쇠락과 노조운동의 위기와 밀접하게 맞물려 있다. 이런 사회는 지속가능하지 않다.

우리는 뭉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만들어 낸 좋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날치기 노동법의 재개정을 이뤄냈던 양대 노총 총파업, 노동시간단축, 최저임금 투쟁 등이 대표적 사례다. 또 우리는 나뉘고 쪼개져 실패하거나, 성과를 거두지 못한 아픔도 기억한다. 정치세력화, 사회적 대화 등이다.

뭉쳐야 산다. 그래야 이긴다. 노동운동의 역사는 웅변한다. 안주는 분열과 위기를 낳고, 위기는 노동운동의 연대와 통일을 요구한다. 더 늦기 전에 새로운 체제를 준비하자. 내년도 최저임금 투쟁, 비정규직 투쟁 그리고 대선투쟁을 계기로 삼자.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