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 노사가 우여곡절 끝에 임금협상 의견접근안(잠정합의안)을 도출했다. 눈에 띄는 내용은 두 가지다. 회사측의 임금피크제 확대안이 저지됐다. 임금인상 수준은 예년에 못 미친다. 노조로서는 하나를 얻고 하나를 내어 준 셈이다.

합의안이 공개되자 현장은 들끓고 있다. 협상결과를 접한 조합원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무려 14차례에 걸쳐 파업이 진행되는 등 노조의 투쟁동력이 최대치를 찍은 상태에서 나온 결과 치고는 실망스럽다는 반응이다. 노조 내 현장조직들이 일제히 ‘부결운동’을 선언하고 나선 것도 같은 이유다.

이런 결론이 도출된 배경이 뭘까. 노조는 릴레이 파업을 벌이며 회사를 압박했지만, 경기침체와 판매부진 같은 외부적 요인이 강력한 힘을 발휘하면서 파업효과를 상쇄시켰다. 고성장 시대에 ‘약발’이 통했던 노조의 ‘임금 극대화 전략’이 효력을 상실하고 있다.

회사측 임금피크제 공세 ‘연막작전’이었나

현대차 노사는 올해 협상 내내 임금피크제 문제를 놓고 싸웠다. 싸움을 붙인 주체는 박근혜 정부다. 정부는 지난해 법정정년 60세 시행을 한 해 앞두고 공공부문과 민간기업에 임금피크제 도입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정부는 “고연봉 노동자들이 기득권을 양보하면 청년일자리가 늘어난다”며 현대차 노동자들을 직접 겨냥했다.

정부를 등에 업은 회사측은 전에 없이 강력하게 임금피크제 확대방안을 밀어붙였다. 회사는 정년연장형 임금피크제가 아닌, 임금만 깎는 임금피크제 도입을 주장했다. 회사는 “임금피크제 확대 없이 타결 없다”며 강공을 폈다. 정부와 자본이 협공을 하고, 노조가 홀로 대항하는 불공정 게임이 이어졌다.

만약 정부의 압박이 없었더라면, 현대차 노사가 임금피크제 문제를 놓고 소모적인 싸움을 벌이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현대차는 이미 임금피크제를 시행 중이고, 회사가 내놓은 방안대로 임금 삭감 폭을 확대하더라도 정작 일자리 창출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기 때문이다.<본지 23일자 5면 “일자리 창출비용, 누구 주머니에서 돈을 털까?” 기사 참조>

결코 물러설 것 같지 않던 회사는 잠정합의 당일 돌연 임금피크제 확대방안을 철회했다. 노조가 외로운 투쟁 끝에 승리를 거둔 순간이다. 정부의 내리꽂기 식 정책에 제동을 걸었다는 점에서 상징적이다.

문제는 그 다음이다. 임금인상 방식이 예년과 달라졌다. 잠정합의안에 따르면 노사는 기본급을 동결하고 재직자 호봉을 높이는 방식에 합의했다. 재직자에게만 ‘특별승호 2호봉’을 올려 주는 방식이다. 재직자와 신입사원 사이에 임금격차를 만들어 내는 구조다. 2만8천원가량 기본급 격차가 발생한다.

신입사원부터 다른 임금체계를 적용하는 이중임금제(Two-tier wage system) 도입은 회사측의 오래된 숙원사항 중 하나다. 이번 합의를 놓고 이중임금제 시행의 단초가 마련된 것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애초 회사측이 밀어붙였던 임금피크제 확대방안은 연막일 뿐이고, 실제로는 호봉제 약화를 노렸던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저성장 시대, 노조의 협상 전략은?

각론을 제외하면, 올해 현대차 임금협상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임금인상 수준이다. 기본급 기준으로 자동승급분 2호봉과 특별승호 2호봉이 올랐다. 액수로는 5만8천원이다. 물론 이게 다는 아니다. 성과급 350%와 격려금 330만원, 20만원 상당 재래시장 상품권, 주식 10주를 지급하기로 했다. 중요한 건 예년과 비교했을 때 노동자들에게 돌아가는 몫이 눈에 띄게 줄었다는 점이다.

현대차 임금은 통상임금과 시간외수당·성과급·상여금으로 구성되는데, 각 항목이 4분의 1 정도 비중을 차지한다. 경기악화로 일감이 줄면 우선적으로 시간외수당이 줄어들고, 이어 성과급이 연쇄적으로 줄어드는 구조다. 경기불안이 임금삭감으로 이어지는 상황이다 보니, 노동자들은 경기변동에 민감하게 반응한다. 올해 파업동력이 최대치를 찍을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 있다.

문제는 앞으로다. 이미 우리 경제가 저성장 국면에 접어들었고, 현대차 역시 실적 부진으로 고전하고 있다. 올해 현대차 협상결과는 고임금을 향한 정규직노조의 질주가 종착지를 향해 가고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 준다. 곽상신 워크인연구소 연구실장은 "저성장 시대에는 정규직노조의 임금 극대화 전략이 통하기 어렵다"며 "저성장 시대에 맞는 새로운 협상전략과 협상 틀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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