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

고 이소선 어머니가 영면하신 지 올해로 5주기를 맞았다. 살아생전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로, 이 땅 노동자들의 어머니로 고난의 삶을 살아오신 이소선 어머니. 어머니의 한결같은 바람은 “뭉쳐야 산다. 그래야 이긴다”였다. <매일노동뉴스>는 30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리는 ‘이소선 어머니 5주기 토론회’를 앞두고 6회에 걸쳐 연속기고를 게재한다.<편집자>



이번 5주기를 맞아 둘러보는 우리 노동현실은 팍팍하다. 노동운동 분위기는 1987년 이래 노동운동의 외형적 발전에도 과거 권위주의 정권 때만큼이나 무겁다. 노동운동의 어려움이 보수적인 정부나 보다 공세적인 사용자들의 탓도 있을 수 있으나 오히려 진짜 위기는 노동운동 내부에서 비롯될 수 있다.

먼저 노조운동을 둘러싼 외부적 환경도 그렇게 유리하지 않다. 한국 경제는 고도성장 시대를 지나 이미 저성장 시대로 들어섰다. 그동안 노조는 임금인상을 선도하는 존재로 역할을 해 왔다. 그러나 이제 저성장 시대에서는 노조의 임금인상 기능은 크게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일본에서 성장률이 0~1% 수준이었던 ‘잃어버린 20년’ 동안 임금인상을 요구할 근거도 없었기 때문에 ‘춘투’가 사라진 경험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향후 우리나라 노조의 임금인상 기능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될 수 있다. 대기업과 공공부문 노조들은 더 이상 임금인상 중심의 활동을 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 앞으로 오히려 성과연봉제·임금피크제·노동시간단축·호봉제 폐지·학자금 축소 등으로 기존 임금수준 등을 지키기에도 힘이 벅찰 수 있다.

노동시장의 이중화가 이미 심각하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사이의 격차, 대기업 공공부문과 민간 중소기업 사이의 격차, 남녀 간의 격차 등 세 가지 측면에서 차별적인 요소를 담고 있다. 대기업이나 일부 공공부문의 임금은 선진국과 비교해도 이미 낮은 수준이 아니다. 여기에서는 각종 사내 복지혜택이 좋은 편이며, 근로소득세도 세계적인 기준에 비추어 매우 낮기 때문에 가처분소득은 선진국에 비해 높은 경우가 많다. 반면 중소기업, 비정규 근로자들 가운데 상당수는 최저임금 수준이나 최저임금보다 약간 높은 수준의 임금을 받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주요 회원국 가운데 저임금 근로자(중위 임금의 3분의 2 미만)의 비율이 2014년 현재 23.7%로 미국 다음으로 높다(OECD Employment Outlook 2016). 이와 같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산업구조의 양극화를 반영한 측면이 강하다. 대기업이나 공공부문 노조(산별노조에 포함돼 있는 경우에도)는 역설적이게도 그리고 결과적으로 산업구조의 양극화가 노동시장의 이중화로 전화되는 것을 넘어서지 못했다.

이와 같은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때문에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일자리는 줄어들거나 정체되는 반면, 중소기업들의 일자리가 늘어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좋은 일자리를 만들 기회를 그만큼 감소시키고 있다.

경제의 서비스화로 일자리가 주로 서비스업에서 생기는데, 서비스업 일자리는 일부 사업서비스업이 아니면 대체로 제조업보다 일자리 질이 낮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또한 서비스업에서는 제조업에서보다 노조를 조직하기도 쉽지 않다. 맞벌이가 늘어나면서 제기되는 높은 가족친화적이고 여성친화적 일자리를 만들려는 노력도 얼마나 노조운동에서 수용하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장시간 노동의 비중이 높은데도 우리 노조운동이 연장근로수당 때문에 어정쩡한 입장을 취한 것도 일관된 노동시간단축을 벌였던 노조운동의 역사에 비추어 낯설다.

이런 환경의 변화를 일정하게 예상하고 노동운동 내부의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출범한 산업별노조운동은 여러 가지 노력에도 불구하고 비정규직의 조직화 등 부분적인 성과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동안 산별노조운동은, 산업별노조의 핵심기능인 산업·업종·지역 내에서 직군·직종·직무별로 임금과 근로조건을 표준화하는 데 사실상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다. 오히려 그 격차가 벌어졌다. 여전히 노조운동은 기업별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압도적 다수의 중소기업 근로자들이나 비정규 근로자들은 노조가 있는 기업별 울타리에서 벗어나 있고 다수 노조운동의 관심 영역 바깥에 놓여 있다. 유노조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근로자들과 무노조 중소기업 근로자들은 내부자와 외부자로 갈려 있다. 폐쇄적인 내부자들의 문호를 어떻게 활짝 개방해 더 많은 외부자들이 그 문호로 들어올 수 있도록 할 것인가가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개선하기 위한 노조운동의 첫걸음이 될 것이며, 초심으로 돌아가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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