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혜진 변호사(민주노총 법률원)

세종호텔노조가 호텔 앞에서 투쟁을 이어 나간 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세종호텔을 운영하는 세종투자개발 주식회사는 2011년 사업장 단위 복수노조 제도가 시행되자마자 사측에 우호적인 조합원들을 회유해 복수노조를 설립하고 노조 간 갈등을 부추기며 세종호텔노조를 탄압했다. 그 결과 유니언숍 노조였던 세종호텔노조는 현재 30명 내외의 조합원만 남아 투쟁을 이어 나가고 있다.

그러던 중 지난 6월, 회사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가처분 신청서를 냈다. 회사가 운영하는 세종호텔 앞 도로에서 노조활동을 이어 나가고 있는 노조에게 호텔 건물 앞 도로에서 취식행위를 해서는 안 되며, 피켓이나 현수막을 세종호텔 건물 외벽에 거치하는 행위를 하지 말라는 취지였다. 노조가 호텔 앞에서 취식행위를 하고 건물 외벽에 피켓 등을 거치해 대외적인 이미지가 중요한 호텔 사업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쳐 호텔 영업을 방해하며 회사의 시설관리권을 침해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세종호텔노조의 투쟁은 호텔 앞 정문 근처에서 피켓 등을 들고 선전전을 하면서 목요일에는 저녁시간대에 2시간가량 집중집회를 갖는 형태로 진행됐다. 선전전의 경우 한 번에 참여하는 인원이 적다보니 피켓 중 일부는 호텔 외벽에 잠시 기대어 놓거나 바람이 많이 부는 날은 도로에 날리지 않도록 테이프로 살짝 고정해 둔 뒤 선전전이 끝나면 모두 회수해 갔다. 목요집회는 저녁시간대에 집회를 진행하다보니 집회 참가자들을 위해 집회 도중 간단히 어묵탕이나 김밥·화채 등의 간식을 나눠 먹기도 했다. 일면 호텔 이용객이나 행인들이 심리적인 불편함을 느낄 수 있다고 볼 수 있겠지만 이를 회사가 자신들의 영업방해와 시설관리권의 침해를 이유로 가처분을 구할 권리가 있을까?

회사의 가처분 신청은 한 마디로 “세종호텔 노조는 집회 도중 음식을 먹거나 피켓을 기대는 행위를 일절 하지 말라”는 것인데 그 취지가 지나치게 포괄적이다. 공공이 이용하는 도로에서 선전전을 하는 도중 건물 외벽에 잠시 피켓을 거치하는 행위는 회사가 갖고 있는 시설관리권의 본질적인 부분을 침해하는 행위라고 볼 수 없다. 게다가 집회 과정에서 간단히 음식물을 섭취하는 행위를 금지하고자 하는 것은 헌법 제10조에 의해 보장되는 일반적 행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노조가 투쟁의 수단으로 음식물을 섭취하는 것이 아니었고, 음식물의 섭취는 노조의 집회와 무관한 제3자가 할 수도 있는 행위로 회사가 금지를 구할 성질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호텔 앞 도로를 지나가는 누구나 해당 도로에서 음식물을 섭취할 수 있다면 노조 또한 집회 과정에서 음식물을 섭취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임시 지위를 정하는 가처분의 경우 본안 판결이 내려지기 전 만족을 줄 수 있어 결정 그 자체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경우가 적지 않다. 더욱이 노사 간 이해관계가 대립하는 분쟁의 경우에는 자칫 한 당사자의 힘을 급격하게 위축시켜 노사 자치적인 해결 가능성을 봉쇄하는 결과를 가져올 위험이 높다. 그래서 최근 대법원은 회사가 노조를 상대로 임시 지위를 정하는 가처분을 구한 사건에서 고도의 신중함을 요한다고 판시한 바 있다.

서울중앙지법은 노조의 음식물 섭취 행위와 피켓을 호텔 외벽에 거치하는 행위 모두 그 자체로 회사의 업무를 현저히 방해한다거나 그러할 우려가 있다는 사실이 충분히 소명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이유로 회사가 제출한 이 사건 가처분 신청을 모두 기각했다.

노조의 쟁의행위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사측이 사법적인 수단으로 대응하는 것이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최근에는 기업의 법률자문이 일상화되면서 사측의 법적 대응이 보다 적극적이고 일상화돼 가는 추세다. 그러나 노사 갈등은 노동 3권을 제약하는 방법으로는 해결할 수는 없다. 사용자와의 관계에서 상대적 약자인 근로자들로 하여금 실질적인 노사대등을 확보할 수 있도록 보장한 헌법상 노동 3권을 하위 법·제도로 제약하는 것이 바람직한 분쟁해결 방법인지 다시 한 번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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