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 이소선 어머니가 영면하신 지 올해로 5주기를 맞았다. 살아생전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로, 이 땅 노동자들의 어머니로 고난의 삶을 살아오신 이소선 어머니. 어머니의 한결같은 바람은 “뭉쳐야 산다. 그래야 이긴다”였다. <매일노동뉴스>는 30일 오후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열리는 ‘이소선 어머니 5주기 토론회’를 앞두고 6회에 걸쳐 연속기고를 게재한다.<편집자>
 

▲ 최영미 한국가사노동자협회 대표

한국 사회의 총체적 부패와 천민자본주의는 IMF 외환위 당시 대량실업이라는 형태로 열심히 살아가던 서민들의 삶을 뿌리째 뒤흔들었다. 그리고 1998년 가을, 나는 갓 만들어진 여성실업대책본부 활동가로서 실업운동에 발을 들여놓았다.

갑작스런 실직으로 인한 생활고와 일자리 상담에 이르기까지 상담을 하러 찾아오는 사람들은 줄을 이었고, 상담실에는 눈물을 닦을 휴지가 항상 준비돼 있어야 했다. 실업단체를 찾는 사람들은 다수가 50·60대 여성들이었다. 전업주부로 살면서 고작해야 가끔 부업을 하던 사람들이 마른하늘에 날벼락처럼 닥친 남편과 자식들의 실직으로 생활전선에 나서게 된 것이다. 기껏해야 중학교 졸업, 심지어 무학의 낮은 학력에 고연령·무경력…. 게다가 뒤를 잇는 이혼·가출 등 가정해체. 일자리 자체가 사라지는 와중에 경력 없는 나이 많은 여성들을 써 줄 곳은 눈을 씻고 봐도 찾을 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등장한 것이 바로 종합도우미사업단이었다. 돈도 없고 경력도 없는 사람들이 일정한 교육을 매개로 그간의 (전업주부) 경력을 가사관리·산후관리·베이비시터 일자리로 만들려고 한 것이 바로 이것이었고, 우리 사회에 집단으로서 ‘가사노동자(Domestic Workers)’가 본격적으로 등장한 때도 바로 이 시기였다.

‘우리 일자리는 우리 손으로!’ ‘일하는 여성의 권익 확보’ ‘우리가 만드는 일공동체’를 표방한 당사자조직의 성장은 놀라웠다. 실업단체의 지원 아래 교육시스템이 정비되기 시작했고 스스로 임원진과 모임을 구성해 자율적 단체를 만들어 나갔다. 비영리단체와 당사자들의 연대를 바탕으로 ‘파출부’라는 용어를 가사도우미, 나아가 현재의 가사관리사 등으로 바꾸기 시작했으며, 당당한 노동자로서 인정받기 위해 근로기준법 제11조 ‘가사노동자 적용제외’ 조항을 개정하기 위한 운동을 끈질기게 펼쳐 나갔다. 2006년 최초로 돌봄노동자 실태조사와 토론회를 개최했고, 2009년 근로기준법 개정안 발의를 시작으로 노동법 제·개정운동을 시작했으며, 2011년에는 가사노동자를 위한 양질의 일자리협약(ILO 189호협약) 비준운동으로 이어졌다. 이 과정에서 1967년 한국YWCA연합회의 돌봄사업단(돌봄과살림)에 이어 2004년 만들어진 전국여성가사사업단 우렁각시가 ‘한국가사노동자협회’로 독립함으로써 본격적인 당사자운동의 시작을 알리게 됐다.

이러한 과정에서 고민은 ‘운동의 정체성’이었다. 운동은 역사고 정신이다. 실업운동, 그 일환으로서 가사노동자운동이 일자리라는 경제활동에 매몰되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사회운동의 역사성을 이어받고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 그래서 2010년부터 전국실업단체 신입활동가를 대상으로 도입한 것이 ‘전태일 따라 배우기’ 강좌였다. 이를 통해 기층민중의 힘과 잠재력, 조직과 연대의 중요성, 가장 낮은 곳에서 함께하기를 배우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이 강좌는 한 가지 난점을 가지고 있었다. 중고령 여성들로 이루어진 가사노동자들에게는 전태일 열사의 삶을 여성·어머니로서 나의 생활과 일치시키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때 떠오른 분이 이소선 어머니였다. 실질적 가장으로서 집안을 이끌어 간 생활력, 갖은 고난 속에서도 잃지 않았던 약자에 대한 사랑, 불의에 대한 감수성 등은 바로 이 시대 가사노동자들이 나아가야 할 길을 비춰 주고 있었다. 사회가 변했다 해도 가사관리사·산후관리사·베이비시터 등 가사노동자들은 우리사회의 가장 취약한 노동계층이며, 꿋꿋이 일을 하며 가정을 이끌어 가는 이들의 얼굴에는 이소선 어머니의 면면이 아로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우리 협회가 어머니의 생애와 정신을 기반으로 교육과정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은 아직 진행형이다.

어머니는 항상 말씀하셨다. 뭉쳐라, 하나가 되라, 노동자 속으로 들어가라! 그래서 나는 안팎에 항상 이야기한다. 가사노동자도 노동자다, 우리는 사회의 주인이다! 비공식부문 가사노동자들에게 관심을, 우리의 어머니들에게 강력한 연대와 지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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