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정근로시간을 축소해 최저임금 미만을 지급하기로 노사가 합의한 경우에는 최저임금법 위반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항소심 판결이 나와 노동계가 반발하고 있다.

22일 공공운수노조 택시지부 경주지회(준)에 따르면 대구고법 제3민사부는 최근 택시노동자들이 회사를 상대로 제기한 임금 등 소송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원고 패소 판결했다. 윤아무개씨 등 22명은 경주지역 한 택시회사를 다니다 2014년 1월 회사를 상대로 그동안 받지 못한 임금을 돌려 달라며 소송을 냈다.

이들은 회사로부터 고정적으로 받은 급여와 운송수입금에서 사납금을 회사에 납부하고 남은 수입금을 월급으로 받았다. 그런데 2010년 7월부터 고정급여에 최저임금을 적용하도록 제도가 변경되자 임금 문제로 노사 갈등이 발생했다. 이 회사는 2010년 이전에는 7시간20분을 소정근로시간으로 정하고 고정급여로 44만5천원을 지급했다. 최저임금이 적용됐는데도 회사는 고정급여 액수는 그대로 둔 채 소정근로시간을 3시간20분까지 줄이며 최저임금법 위반을 피해 갔다. 당시 이 회사 다수노조와 사측은 소정근로시간을 줄이는 합의서에 서명했다.

복수노조가 만들어진 뒤 소수노조인 지회는 윤씨 등 소송참가자들을 모아 2010년 7월부터 2012년 11월까지 받지 못한 임금을 돌려 달라며 소송을 냈다. 1심 재판부는 소정근로시간을 줄여 최저임금 미만을 지급하기로 한 노사합의를 무효라고 보고 윤아무개씨 등에게 1억2천여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그런데 2심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회사는) 종전 협약에서 정한 간주근로시간을 전제로 한 최저임금 청구를 추가로 하지 않을 것이라는 정당한 신의를 가지게 됐고 원고들이 이와 같은 신의에 반해 위 차액지금청구를 하는 것은 허용될 수 없다"고 판시했다. 받지 못한 최저임금을 돌려 달라는 요구가 신의칙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노동계는 사법부가 최저임금 미지급 사건에 대해 신의칙 법리를 적용하고 나선 것에 크게 반발하고 있다. 지회는 대구고법 판결을 규탄하며 지난달 19일 대법원에 상고했다. 이날부터 대법원 앞 1인 시위에 들어간 정준호 택시지회 위원장은 "최저임금조차 잠탈하는 사측의 행태를 일벌백계해야 할 사법부가 오히려 면죄부를 주고 있다"며 "노동자들의 정당한 노동 대가가 인정되도록 싸우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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