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부문에서 비정규 노동자를 가장 많이 사용하는 곳은? 역설적이게도 교육기관인 학교다. ‘비정규직 백화점’으로 불릴 만큼 학교 현장에는 다양한 비정규직이 있다. 지난해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전체 교직원 87만1천여명 중 43%인 37만9천여명이 학교비정규 노동자다. 무기계약직을 제외한 11만6천여명의 학교비정규 노동자들은 기간제(68%)·단시간(16%)·용역(15%) 형태로 일한다. 이들은 교육청 지침이나 예산 감축만으로 줄줄이 해고된다. 실바람만 불어도 잘리는 불안정한 고용에 시달린다. <매일노동뉴스>는 21일 해고를 앞둔 영어전문강사와 지난해 12월 해고된 전문상담사를 만났다.

교육청 지침에 우는 영어회화 전문강사

전북지역 한 고등학교 영어회화 전문강사인 김성진(38·가명)씨는 지난달 20일 수업 중 계약해지 통보를 받았다. 영어회화 수업을 하고 있는데 교감이 교실 문을 두드려 김씨를 불렀다. 교감이 내민 문서에는 “정규교사 수업시수 부족으로 계약만료를 통보한다”고 적혀 있었다. 김씨는 기억을 더듬어 이렇게 말했다. "머릿속이 하얘졌어요. 현기증이 나서 교탁에 기대어 겨우 수업을 마쳤습니다."

김씨는 2009년부터 학교에서 영어회화를 가르쳤다. 선생님이 꿈이었던 그는 사범대 영어교육학과를 졸업했다. 영어회화 전문강사를 하려면 교원자격증이나 영어 외 모국어 사용자들을 위한 영어교육을 뜻하는 테솔(TESOL) 자격증이 있어야 한다. 그는 "기간제 교원이지만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어 보람을 느꼈다"고 했다. 2012년까지 매년 전북교육감과 계약했던 김씨는 2013년부터는 학교장과 매년 계약을 했다.

영어회화 전문강사 제도는 2009년 도입됐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르면 영어회화 전문강사는 1년마다 계약을 갱신하고, 4년을 초과할 수 없다. 당시 정부는 “기간제 사용기간을 2년으로 정할 경우 고용이 불안해질 수 있어 동일학교 기간제 근무기간을 4년으로 정한다”고 밝혔다. 4년 계약기간을 보장하겠다는 취지다. 2017년까지 계약이 가능했던 김씨는 학교측의 계약해지 통보에 따라 8월31일 해고된다.

해고는 전북교육청 지침에서 비롯됐다. 지난해 전북교육청은 일선 학교에 공문 한 장을 보냈다. 영어 정규교사에게 주당 18시간의 수업시수를 확보한 뒤 영어회화 전문강사에게 수업을 배정하라는 내용이었다. 그동안 정규교사는 주당 평균 15시간, 전문강사는 18시간 수업을 했다. 정규교사 수업시수를 늘리면 전문강사에게 배정되는 수업은 그만큼 줄어든다.

김씨는 “정규교사들만 받는 명절상여금과 급식비를 못 받으면서도 선생님이라는 사명감으로 근무했다”며 “비정규직 선생님이라는 이유로 교육청 지침에 따라 계약기간도 못 채우고 해고될지는 상상도 못했다”고 토로했다.

“무기계약 전환 피하려 해고하면 학생들은 어떡하나”

지난해 12월31일 경기도 시흥시 한 학교에서 전문상담교사 37명 전원이 계약해지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들은 시흥시와 경기도교육청이 예산을 매칭해 지원하는 학생상담활동 인력지원사업으로 채용돼 시내 37개 초·중·고에서 일했다. 학교에 상주하면서 가정형편이 어렵거나 학교폭력에 시달리는 아이들을 상담했다. 전문상담사·사회복지사 1급 자격증이 있어야 전문상담사로 근무할 수 있다. 그런데 올해부터 경기도교육청이 인력지원사업을 중단하기로 결정하면서 시흥시도 사업에서 손을 뗐다.

인력지원사업은 경기도교육청이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 시흥시를 비롯한 6개 지자체와 체결한 ‘지역사회 협력과 혁신교육 일반화를 위한 혁신교육지구 사업’ 협약을 근거로 한다. 하지만 올해부터 교육청이 '혁신교육지구 사업 시즌2'를 하면서 해당 사업을 폐기해 버렸다. 사업이 이어질 경우 전문상담사의 무기계약직 전환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이유였다. 공공운수노조 교육공무직본부 조합원인 해고자들은 지난 1월부터 복직투쟁을 하고 있다.

시흥지역 전문상담사들은 경기도 다른 지역 상담사와 비교해 처우가 열악했다. 시흥지역 상담사들은 10개월 단위로 계약해 기간이 짧은 데다, 연봉은 1천500만원가량으로 최저임금 수준을 받았다. 매년 근무하는 학교도 바뀌었다.

전문상담사 이혜정씨는 “다른 지역보다 월급이 30만~40만원 적었고, 시흥교육지원청은 무기계약직 전환 요구를 할까 봐 매년 근무지를 바꿨다”며 “가정형편과 학교폭력으로 어려움에 처한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하면서 소모품 취급을 받았다”고 한숨을 쉬었다. 이씨는 “8개월째 복직 투쟁을 힘겹게 하고 있는데 가끔 옥상에 올라가면 나쁜 생각이 든다”고 털어놨다.

“학교비정규직, 쓰다 버리는 소모품 아니다”

지난해 교육부 자료에 따르면 전국에 3천900여명의 전문상담사가 근무하고 있다. 전문상담사 중 무기계약직은 2천513명이다. 현재 시흥시 소재 학교 38곳이 전문상담교사를 배치하고 있다. 정규교사들이 상담을 맡는다. 학교비정규직 전문상담사가 해고된 학교 37곳은 현재 상담실이 비어 있다.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학교폭력예방법)을 위반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학교폭력예방법(제14조) "학교의 장은 학교에 상담실을 설치하고 전문당담교사를 둔다"고 규정하고 있다. 왕따를 비롯한 학교폭력 문제가 심각해지자 내놓은 대책 중 하나다.

전문상담사 A씨는 “시흥시에는 공장에 다니는 맞벌이 부부가 많아 관심을 덜 받거나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을 많이 상담했다”며 “무기계약직 전환을 회피하려고 상담사를 없애는 바람에 마음의 짐을 덜려고 상담사를 찾는 학생들이 갈 곳이 없어져 버렸다”고 말했다. 그는 “자의로 학교를 떠난 건 아니지만 아이들에게는 너무 미안하다”고 안타까워했다.

4천600명에 달하는 영어회화 전문강사는 최대 계약기간이 4년으로 제한된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제42조)은 “영어회화 전문강사를 기간을 정해 임용할 때 그 기간은 1년 이내로 하되, 필요한 경우 계속 근무한 기간이 4년을 초과하지 않는 범위에서 그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령이 고용불안을 부추기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12월 중앙노동위원회는 5년여 동안 영어회화 전문강사로 일하다 계약해지된 노동자 A씨에 대해 "시행령에서 정한 4년을 초과해 근무한 만큼 무기계약직 노동자로 봐야 한다"며 부당해고 판정을 내린 바 있다.

배동산 교육공무직본부 정책국장은 “전문상담사나 전문강사들이 계약해지되면 상담과 수업에 공백이 생겨 결국 학생들에게 피해가 돌아간다”며 “직종에 따라 무기계약직 전환 여부를 달리 정했더라도 문제가 발생하고 있는 만큼 상시·지속업무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한다는 원칙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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