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에서 열린 산별노조 워크숍에 참가했다. 인도네시아 노동조합은 기업별노조-산업별연맹-총연맹의 조직구조를 이룬다. 주요 총연맹은 3개고, 군소 크기 총연맹까지 합하면 그 수가 십여 개에 달한다. 산업별연맹은 백여 개가 넘는다.

산별노조운동의 관점에서 볼 때 인도네시아 노동운동은 세 개의 도전에 직면해 있다. 첫째, 산업별연맹들 사이의 조직 대상을 분명히 구분하는 조직 대상의 획정(demarcation) 문제다. 둘째, 기업별노조를 해체하고 산업별연맹을 산업별노조로 전환시키는 과제가 있다. 셋째, 분열된 연맹들과 총연맹들을 통폐합하는 노동전선의 통일이다.

인더스트리올(국제제조업노조연맹)에 소속된 인도네시아 가맹조직은 11개로 주요 노총 3개에 분산돼 있다. 동일한 산업을 두고 다른 노총에 속한 연맹들이 조직 경쟁을 벌이는 것도 문제지만, 그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산별연맹들 사이의 조직 구획이 제대로 정리돼 있지 않은 점이다. 조합원 24만명으로 최대 연맹인 인도네시아금속노조연맹(FSPMI)은 자동차, 전자·전기, 조선, 금속, 기타 산업 등 5개 업종 단위로 구성돼 있다. 문제는 ‘기타 산업’인데 여기에는 광산·농업·봉제·섬유·전력·상업 등이 혼재돼 있으며, 이 부문에서 신규 조직이 빠르게 늘고 있다. 금속산업을 중심으로 하나, 점차 일반노조화되고 있는 것이다.

인도네시아의 노조 조직률은 3%에 불과하다. 인구는 2억명이 훨씬 넘고 국토는 광대하다. 무엇보다 노동조합의 분열은 심각한 수준이다. 이런 조건에서 노조 조직구조와 조직화 전략을 산업을 중심으로 할지, 아니면 지역을 중심으로 할지는 논쟁거리다. 노동조합의 목표를 단체교섭에 둔다면 산업 중심의 조직화가 유효할 것이다. 하지만 그 목표를 조직화 자체에 둔다면 지역 중심 일반노조(general union) 방식이 효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앞서 소개한 FSPMI의 경우는 전자보다는 후자의 조직화 전술을 구사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일까. FSPMI에 속한 조합원 가운데 단체협약 적용을 받는 비율이 27%에 불과하다.

아시아에서 산업 수준의 조직 대상 획정이 엉망인 대표적 나라로는 필리핀을 꼽을 수 있다. 기업별노조주의가 보편적인 필리핀에서 연맹들은 산업별 특성을 갖지 못하고 ‘연합노조연맹’ 성격을 띤다. 필리핀에서 연맹 앞에 ‘산별’이라고 붙이면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 것이다. 연맹들이 산업별로 조직대상을 획정하지 않고 산업이나 업종을 가리지 않고 기업별노조의 가입을 허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산업별 구획이라는 정치적 조정과 조직적 계획 속에 산별연맹이 기능하는 것이 아니라 산업적 성격에 상관없이 무차별적으로 기업별노조를 연맹으로 끌어들이는 관행을 갖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조직 특성은 연맹들의 이름에서 잘 드러난다. 예를 들면 필리핀자유노동조합연맹(PAFLU), 전노동자노동조합동맹(AWATU), 통합노동기구(ILO), 필리핀노동자조합(UFW), 노동조합연합(ALU) 따위로 이름만으로는 산업별 조직 대상을 가늠하기가 불가능하다. 조직 대상에 대한 산업별 획정 부재와 조직적 무질서는 같은 노총에 속했다고 예외는 아닌데, 같은 총연맹에 속한 연맹들임에도 조직 대상이 겹치는 경우가 많다. 총연맹이 조정과 지도 역할을 상실한 것이다. 노조 조직구조와 산업별 획정의 혼란과 무질서는 단체교섭 적용률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데, 필리핀의 단체협약 적용률은 10%를 조금 넘는다. 참고로 필리핀에서는 10개 노총과 130개가 넘는 연맹이 활동하고 있다.

노동운동의 원칙은 “1국-1노총, 1산업-1노조, 1기업-1노조”다. 이를 위해서는 노동조합 조직의 산업별 구획과 조정이 중요하다. 같은 노총에 속한 산업별노조나 연맹들이 조직화 경쟁을 무질서하게 벌인다면, 조직화는 물론 조직 자체의 지속가능성이 낮아질 것이다.

기업별노조주의 극복과 더불어 산업 수준의 조직 대상 획정 문제는 아시아 노동조합운동의 공통된 도전이 되고 있다. 노동조합의 교섭력과 투쟁력을 증대하기 위해서는 산업 수준으로 인력과 자원을 집중시켜야 하고, 이런 점에서 산별노조 건설과 조직 대상의 효과적인 획정은 동전의 양면이다. 산별 수준의 노동조합 조직이 산업별 특성을 잃어버리고 점차 일반노조화되는 것은 기업별노조주의 확산과 맞물려 있다. 조직 획정에서의 혼선과 전략 부재가 기업별 수준의 노조활동·단체교섭·노사관계를 강화시키면서 아시아 노조운동의 실질적인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

아시아노사관계컨설턴트 (webmaster@labor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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