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갑을오토텍 권기대 노무부문장이 박효상 전 대표이사 등 이 회사 임원들에게 보낸 메시지. 노조파괴 시나리오가 기획되는 과정, 압수수색을 압두고 증거인멸이 이뤄지는 과정에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개입했음을 시사한다. 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

갑을오토텍이 노조파괴 관련 증거를 인멸하는 과정에 국내 1위 로펌 김앤장 법률사무소가 관여한 것 아니냐는 새로운 의혹이 제기됐다. 지금까지는 창조컨설팅 출신 김형철 공인노무사가 대표로 있는 노무법인 예지가 갑을오토텍 회사와 노조파괴를 공모한 정황만 드러난 상태인데, 여기에 김앤장까지 가세해 팀플레이를 벌였다는 것이 의혹의 핵심이다.

예지·김앤장·갑을오토텍의 '삼각공조'

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와 이정미 정의당 의원, 강병원·이용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1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언론간담회를 열어 이 같은 의혹을 제기하며 관련 수사자료를 공개했다. 현재 법정 구속 상태인 박효상 전 갑을오토텍 대표이사를 비롯해 회사측 주요 임원들이 주고받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 내용이 주요 근거다. 고용노동부 천안지청이 지난해 4월23일 갑을오토텍을 압수수색하는 과정에서 확보한 것이다.

자료에 따르면 권기대 전 노무부문장은 2014년 10월29일 박효상 전 대표이사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예지컨설팅 대표와 함께 김앤장 고문을 만나서 협의했습니다”라며 “김앤장도 프로젝트를 수행할 팀이 있어서 일괄 수행이 가능하다고 합니다”라고 보고했다. 이어 “수행기간 및 비용 그리고 집중도 등 여러 가지 측면에서 예지컨설팅이 주관하고 김앤장으로부터는 법률적인 검토 지원을 받는 것이 바람직 할 것 같습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런데 문자메시지가 오간 시점이 절묘하다. 2014년 10월 박 전 대표이사는 지인으로부터 “경찰·특전사 출신을 뽑아 금속노조에 대항할 별도 노조를 만들어 보자”는 제안을 받아 실행계획을 모색했다. 같은달 서울 모처에서는 특전사 출신자들의 비밀 회동이 이뤄졌는데, 이 자리에서 노조파괴 교육이 함께 진행됐다. 문자메시지 내용대로라면 예지와 김앤장은 노조파괴 시나리오 구상단계에서부터 손발을 맞춰 왔다는 뜻이 된다.

"김앤장하고 다 정리하고 있습니다"

수상한 문자메시지는 또 있다. 박 전 대표이사는 지난해 4월14일 권 전 부문장에게 “모든 카톡문자는 지우세요. 전화로 합시다”라고 지시했다. 그러자 권 전 부문장은 “다 정리하고 있습니다. 김앤장하고 지시하신대로 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했다.

이 또한 시점이 묘하다. 검찰과 노동부는 그해 4월23일 갑을오토텍의 노조파괴 혐의(부당노동행위 혐의)와 관련해 압수수색을 진행했는데, 이를 앞두고 회사측은 관련 증거 인멸을 시도했다. 문자메시지에 따르면 김앤장이 회사측의 증거 인멸 과정에 관여했을 개연성이 높아 보인다.

노동자쪽 법률 대리를 맡아온 김상은 변호사(법률사무소 새날)는 “회사측이 2014년 10월27일 작성한 ‘회사 정상화 방안 검토’ 문건에는 ‘3자 협의체를 통한 정상화 Process 추진’이라는 대목이 나오고, 여기서 말하는 3자가 예지와 김앤장·회사측임을 명기하고 있다”며 “갑을오토텍 노조파괴 사건 관련 수사 자료 곳곳에 김앤장의 개입 정황을 보여주는 내용이 다수 포함돼 있다”고 설명했다.

김앤장측은 이날 제기된 의혹을 전면 부인했다. 김앤장 관계자는 “갑을오토텍 사건 관련 사건을 수임한 바 없고 해당 사건과 무관하다”며 “다만 갑을오토텍 관계자가 전화로 법률적 사항을 문의해 와 전화를 받은 직원이 법률가적 입장에서 몇 마디 상담을 해 준 적은 있다”고 말했다.

갑을오토텍 노조파괴 '3자<회사·김앤장·예지> 협의체서 주도
검찰·노동부, 김앤장 관련 수사 일부러 안 했나?


갑을오토텍 노조파괴 논란과 관련해 김앤장의 개입 가능성이 제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해 4월 관련 수사 자료를 확보한 검찰과 노동부가 이에 대한 조사를 전혀 진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 두 가지 가능성을 떠올릴 수 있는데 수사 당국이 부실수사를 했거나, 김앤장을 수사 대상에서 제외했을 가능성이다.

실제로 수사 자료를 들여다보면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갑을오토텍 권기대 전 노무부문장과 김앤장측의 통화내역과 문자메시지 송수신 내역에는 김앤장에서 근무하는 변호사 4명의 실명이 등장한다. 수사당국은 이 통화·메시지내역을 토대로 통신분석을 진행해 총 2천398페이지에 달하는 보고서를 만들었다.

그런데 권 전 부문장이 다른 사람과 주고받은 문자메시지 내용은 보고서에 있는 그대로 수록된 반면, 김앤장측과 주고받은 메시지 내용은 모두 누락됐다. 김상은 변호사는 “김앤장이 갑을오토텍 노조파괴 시나리오에 관여한 사실이 수사 과정에서 축소·은폐한 것 아닌가 의심할 수밖에 없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노조파괴 시나리오는 살아 있다?

한편 이날 언론간담회에서는 지난해 8월 부임한 박당희 갑을오토텍 대표이사가 회사측의 노조파괴 시내리오 내용을 사전에 숙지하고 있었음을 보여 주는 증거자료도 공개됐다. 박 대표는 부임 당시 노조파괴 논란을 주도적으로 기획한 박효상 전 대표이사와 관련이 없다는 점을 강조하며 회사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하지만 박 대표는 갑을오토텍 모기업인 갑을상사그룹 전무로 재직할 당시인 2014년 11월3일 권 전 부문장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서 “권 부장, 사장님으로부터 대강 얘기는 들었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사안 관련해 메일로 상세하게 보고하도록 해라”라고 지시했다. 박 대표가 부임 이전부터 노조파괴 사건에 연루돼 있었을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재헌 금속노조 갑을오토텍지회장은 “회사는 지난해 유혈사태로까지 번진 노사갈등을 겪고도 노조파괴 시나리오를 포기하지 않았고, 대표가 바뀐 지금도 시나리오대로 노조를 약화시키기 위해 혈안이 돼 있다”며 “회사가 올해 공격적 직장폐쇄를 단행하고, 지금 이 순간에도 경찰력 투입을 요구하는 것은 노조파괴 시나리오가 죽지 않고 살아 있음을 보여 주는 명백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노동부 입 다물고 있는 상황 이해 불가"

지회가 이달 4일 공개한 ‘Q-P 전략 시나리오’는 회사측이 경비업무 외주화·사택매각 등을 추진해 지회 파업을 유도하고 직장폐쇄를 단행해 노조를 무력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경비업무 외주화→노조 반발하며 파업 돌입→파업시 노조의 회사출입 저지(직장폐쇄)”로 이어지는 대응방안을 마련했다. ‘정규직 공장’이었던 갑을오토텍에 비정규직 직무가 도입되면 노조가 즉각 반발해 파업에 돌입할 것으로 예상하고 써 내려 간 시나리오다. 실제 회사는 올해 1월3일 정문 경비 외주화를 추진했다. 지회가 파업에 나서자 곧바로 직장폐쇄를 단행했다.

강병원 의원은 “지금까지 드러난 증거나 정황에 비춰 볼 때 회사가 노조를 파괴하기 위한 목적으로 현재 상황을 만들었다는 점이 명백한데, 노동부가 마치 심판자 같은 자세로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처사”라며 “지금이라도 노조파괴용으로 기획된 직장폐쇄를 반려시키고, 모든 수사력을 동원해 지금까지 제기된 의혹을 샅샅이 수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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