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호 전태일재단 이사장

우리나라에 와 있는 이주노동자들이 노동 현장에서 가장 먼저 배우는 한국말은 ‘빨리빨리’ 랍니다. 사장에서부터 관리자나 함께 일하는 한국인 노동자도, 이 빨리빨리를 입에 달고 사니 배울 수밖에 없겠지요. 빨리빨리 문화는 한국인의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하는데,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서 급격한 계절의 변화에 부응하며 살기 위해서는 불가피하다고도 합니다만 같은 위도의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보면 그것이 중요한 요인은 아닌 것 같습니다. 또 우리나라가 반도라는 지정학적 요소를 갖추고 있고 주변 강대국의 사이에서 눈치껏 살다 보니 그렇게 됐다는 설과 역사적으로 수많은 외침 속에서 살아남으려는 피나는 노력의 결과라는 분석도, 전적으로 받아들이기는 힘들다 하더라도 부분적으로는 맞는 것 같기도 합니다. 어찌 보면 이 모든 원인들이 결합돼 나타난 현상이 아닌가 여겨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 빨리빨리 문화는 경쟁 중심 사회에서는 상당한 힘을 발휘하기도 했던 게 사실입니다. 단기간에 구체적 성과를 내거나, 자본주의 시장 중심 사회에서 투자 효율을 극대화하는 것으로 보이기도 했으니까요. 압축성장을 비롯한 우리나라 최근세의 압축문화가 바로 이 빨리빨리 문화의 성과라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이 빨리빨리 문화는 많은 부작용을 낳고 있지요. 산업현장의 수많은 산업재해와 노동인권 침해가 대표적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또 정치와 행정에서의 조급성은 더욱 심해서 우리나라 정당사를 보면 여야 할 것 없이 당 이름 바꾸는 것을 식은 죽 먹듯 하며, 오로지 선거에 이기는 것만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강 정책 중심의 뿌리 있는 정치는 요원하고, 공약을 헌신짝처럼 내버리면서도 부끄러워하기는커녕, 더 뻔뻔스럽게 더 큰 거짓말을 준비하고 있으니, 정말 심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것이 다 성과주의의 보여 주기 식 빨리빨리 문화의 배설물입니다.

그런데 최근 이 빨리빨리 문화에 제동을 거는, 새로운 형태의 학생운동이 있어 신선한 충격을 주고 있습니다. 이화여대 학생들이 잘못된 학교 경영방침에 반기를 들고, 포기하게 하는 과정에서 그것을 보고 있습니다. 참여하고 있는 학생들이 스스로 ‘느린 민주주의’라고 부르는 이 방식은, 성급한 결과보다는 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과정을 민주적으로 밟아 가면서 주장의 정당성을 확인하고 마침내 관철시켜 나가는 숙의민주주의의 실천이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 느린 민주주의가 빠른 결과를 만들어 냈다는 사실입니다. 기존의 빨리빨리 방식으로 했다면 어려웠을 텐데, 새로운 운동방식으로 대응했기에 이뤄 낸 성과였습니다.

이 방식의 핵심은 싸움을 하되 상대가 좋아하는 방식(틀)이 아닌, 이쪽의 방법으로 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학교 본관을 점거하면서 본격화된 투쟁에서 투쟁주체들은 특정한 투쟁지도부를 두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투쟁지도부라 표명했고 그렇게 행동했습니다. 이른바 외부세력으로 오해받아 순수성의 훼손으로 공격받을 소지가 있는, 연대 단체나 기존 운동가들의 접근을 공식적으로 차단한 것입니다. 이것은 이번 싸움의 적절한 전술적 판단이었습니다. 그렇게 했기에 보수언론을 앞세운 왜곡선전이나, 본질 흐리기 공격을 막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라는 새로운 소통방식을 중심으로 시민들과 직접 소통하며, 주장과 목표를 분명히 함으로써 정당성과 진정성을 확보할 수 있었습니다. 처절하지만 흔들림 없는 모습을 보여 주며 믿음을 산 것이, 승리의 결정적 요인이 된 것 같습니다. 또 교섭을 하면서도 대표를 통해 하는 옛날 방식이 아니라, 교섭 내용을 전체 회의에 부쳐 서로 이해하고 합의에 이를 때까지 시간을 가지고 충실히 토론한 것이 내부 단결의 요인일 뿐 아니라 확실한 요구사항을 만드는 힘이었습니다.

우리는 쉽게 요즘 청년들은 자기밖에 모르고, 대학생들은 운동성은커녕 개념도 없다고 안타까워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강남역이나 구의역에서 스스로 몰려나와 자기 방식으로 공감하고 사회를 향해 소리치는 수많은 젊은이들과 새로운 운동방식을 봤습니다. 그리고 지난 총선에서 모든 예측을 뒤엎고 여소야대 선거혁명을 일으킨 세력이 바로 우리 청년들이었음을 우리는 인정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아직도 희망이 있다는 증거입니다. 이들을 믿고 이들과 소통하며, 이들에게서 배우는 자세가 우리에게 필요한 것 같습니다.

전태일재단 이사장 (president1109@hanmail.net)

저작권자 © 매일노동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