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기훈 기자

"혼자서 징검다리를 건너려면 위험하잖아요. 소공인들과 소상인들이 안전하게 건널 수 있는 튼튼한 다리를 만들 생각입니다. 소공인들이 물건을 잘 만들면, 소상인들이 잘 팔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죠."

㈔소상공인연구원 산하 신유통채널인 '텐부릿지(Ten富릿知·Ten Bridge)'를 설명하는 전순옥(63·사진) 소상공인연구원 상임이사의 얼굴에 기대감이 가득했다. 새로운 출발선에 선 사람에게 느껴지는 설렘이랄까.

지난 5월29일 19대 국회의원 임기가 끝난 직후부터 지금까지 두 달여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소상공인들과 지역주민들을 만나고 다녔다는 전순옥 상임이사. <매일노동뉴스>가 11일 오전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에 위치한 소상공인연구원에서 그를 만났다. 연구원이 입주한 건물 앞으로는 청계천이 흐르고, 뒤에는 서울풍물시장과 소공장들이 빽빽이 들어서 있다. 연구원 목적에 맞는 위치선정이 아닐 수 없다.

국회의원 임기 동안 '소상공인의 벗' 혹은 '소상공인 파수꾼'으로 불리며 그들을 향한 지지를 아끼지 않은 전 이사는 지금도 하루의 절반은 소상공인을 위한 정책연구·활동에 쏟아붓고 있다.

지역구 챙기랴, 소상공인 정책연구하랴

- 국회의원 임기가 끝나고 두 달이 조금 지났다. 어떻게 지내나.


"정말 바빴다. 우선 지역구(서울 중구성동을) 복원을 위해 땀나게 뛰어다녔다. 4·13 총선 과정에서 당원들이 국민의당으로 많이 옮겨갔다. 총선이 끝나고 나서 지역구가 초토화돼 버렸다. 5월29일 임기가 끝났는데, 6월3일 지역위원장 공모에 신청했다. 그리고 지역을 훑고 다녔다. 사실상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118명의 대의원, 40여명의 상무위원, 19개 동 협의회장, 8개 상설운영위원회 위원장들을 세웠다. 현재 조직이 거의 복구된 상태다. 이달 6일 지역대의원대회도 성황리에 잘 치렀다. 지역구 활동과 함께 소상공인연구원 정책연구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다."

올해 3월30일 개원한 소상공인연구원은 700만명에 이르는 소상공인 문제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최초의 민간연구기관이다. 현장 조사와 연구를 통해 올바른 정책을 생산하고 제안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그는 연구원 상임이사를 맡았다.

"우리나라 소상공인이 700만명이다. 전 세계에서 소상공인이 가장 많은 나라다. 그럼에도 소상공인에 대한 깊은 이해와 연구, 정책이 없다. 중소기업청이 소상공인들에게 예산을 지원하는데 '지원사업'이라고 하지 '육성사업'이라고 하지 않는다. 소상공인들이 경쟁력을 가지려면 정부가 이들을 육성해야 하는데, 비용지원에 머물러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소상공인들을 위한 정책을 만들려면 현장 요구에 기반을 둔 구체적인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잘 만들어 잘 팔도록 도와준다"

연구원이 최근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유통채널 '텐부릿지'도 같은 맥락이다. 텐부릿지는 '부(富)'가 무엇인지 제대로 '지(知)'(알아야) 한다는 의미와 10명의 전문가들이 소공인과 소상인을 연결하는 다리(유통채널)를 놓겠다는 중의적 의미를 담고 있다. 대기업 유통업체들에 의해 '생산자에게 싸게 사서, 소비자에게 비싸게 파는' 왜곡된 유통채널을 바꿔 보자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이런 유통채널을 극복하려면 소공인은 상품의 질부터 디자인·포장까지 업그레이드할 필요가 있다. 소상인들은 물건을 잘 팔기 위한 전략을 잘 짜야 한다. 그냥 물건이 아니라 최고의 장인과 명인이 만든 물건으로 재탄생시켜 부가가치를 높이는 것이다. 이를 도와주는 게 바로 텐부릿지가 할 일이다. 브랜드 전문가부터 마케팅·유통·홍보·인쇄·통가죽·천연염색 의류·전자결제 프로그램 전문가 등 10명의 텐부릿지 전문가들이 상품 가치를 높여 잘 팔릴 수 있도록 도와줄 계획이다. 장인과 명인이 만든 상품이 다음 세대까지 이어질 수 있게끔 탄탄한 인프라를 만들고 싶다."

텐부릿지는 3D 업종으로 인식되는 소상공인 환경을 3L 직업(Learning· Liberating·Life Change)으로 바꿔야 한다는 전 이사의 평소 지론이 반영된 프로젝트다. 3L은 소상공인들이 배워야(Learning) 자유로워질 수 있고(Liberating) 삶을 바꿀(Life changing) 수 있다는 뜻이다. 연구원은 텐부릿지와 함께 '소공장 혁신 프로젝트'도 진행 중이다. 좋은 물건을 만들려면 제조공장들도 혁신해야 하기 때문이다.

"김영란법 시행되면 소상공인 활성화된다"

- 매년 최저임금을 결정할 때마다 소상공인들이 주목받는다. 올해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이 핫이슈였는데 소상공인연합회에서 강하게 반대했다.


"궁극적으로 최저임금은 1만원이 돼야 한다. 그런데 총체적으로 봐야 할 게 있다. 정치권이 무조건 1만원으로 올려야 한다고 말하기보단 1만원 인상을 위한 밑바탕이 돼 있는지부터 봐야 한다는 것이다. 소상공인들 중에서는 최저임금 노동자들보다 못한 돈을 버는 경우도 많다. 원청과의 관계 때문이다. 소공인들은 원청에 물건을 납품할 때 단가 후려치기를 당한다. 프랜차이즈 본사에서 착취를 당하고 있는 편의점·제과점·식당 사장님들이 어떻게 최저임금 1만원을 줄 수 있겠는가. 결국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올리려면 원·하청 불공정 관계도 함께 해결해야 한다. 이런 구조를 그대로 둔 채 최저임금 인상만 얘기하니까 소상공인들도 화가 나는 것이다."

전 이사는 최근 소상공인들이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청탁금지법, 일명 김영란법)과 연계돼 연일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것에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예컨대 "소상공인들이 김영란법의 최대 피해자"라거나 "김영란법 때문에 명절에 고가 농축산물이 안 팔려 관련업종이 침체될 것"이라는 주장은 대기업들이 자신들의 입장을 피력하기 위해 소상공인들을 이용하는 행태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비판이다.

"김영란법 때문에 죽겠다는 말을 가장 하고 싶은 집단이 어디냐. 바로 대기업이다. 국회에 있을 때 지역특산품이라고 해서 명절선물을 받아 보면 백화점에서 몇 십 만원하는 것들이었다. 그런데 포장이 거창해서 그렇지 원가는 5만원 이하인 경우가 많다. 이를 몇 십 만원짜리 물건으로 만드는 건 대기업 백화점들이다. 원산지에서 대량으로 싸게 사서 포장을 화려하게 한 뒤 가격을 몇 배씩 뻥튀기해서 판다. 김영란법 때문에 죽을 맛인 것은 소상공인들이 아니다. 소상공인들에게 물건을 싸게 사서 비싸게 팔아먹은 대기업들이다."

그는 김영란법이 되레 소상공인들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앞으로 5만원 이하 선물은 소상공인들과 직거래하면 된다. 이 역할을 텐부릿지가 할 것이다. 명절에 선물이 필요한 기업·기관들과 생산자들을 연결시켜 주는 것이다. 포장이 필요하면 포장전문 소공인들을 연결시켜 주면 된다. 명절선물세트 가격에서 거품이 빠지면 소비자에게도 이익이지 않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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