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윤애림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2000년대, 파견·용역·하청 노동자들의 노조 결성이 분출하면서 이에 대한 자본의 대응방식이 마치 매뉴얼처럼 나타났던 때가 있다. 조합원들에 대한 징계와 해고, 노조 탈퇴 강요, 조합원이 속한 하청업체와의 계약해지, 하청업체 폐업이라는 부당노동행위 ‘공식’을 주도한 것은 원청이었다. 한라중공업사내하청노조·방송사비정규노조·SK인사이트코리아노조·대상식품사내하청노조·기륭전자분회·하이닉스-매그나칩사내하청지회·KTX승무지부·시설노조 굿모닝신한증권분회 등 수많은 노동자들이 이러한 원청의 부당노동행위에 고통 받았고, 대다수 노조는 아예 살아남지 못했다.

2010년 대법원이 하청노동자에 대한 원청의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하는 판결을 내놓은 데에는 이와 같은 노동자들의 고통과 투쟁이 가로놓여 있었다. 대법원은, 2003년 8월 현대중공업사내하청노조가 창립총회를 가진 직후인 2003년 9월부터 11월까지 현대중공업이 조합원이 속한 사내하청업체와 계약을 해지하고, 곧이어 사내하청업체들이 폐업한 사건에서 원청이 사내하청 노동자들에 대해 실질적 지배력을 가지므로 노조법상 사용자에 해당한다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그러나 법원의 판결은 너무 느리고 불충분했다. 현대중공업이 업체 폐업이라는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른 지 7년 만에 나온 판결은, 원청은 “더 이상” 이런 부당노동행위를 해서는 안 된다는 것에 그칠 뿐, 해고된 하청노동자들을 복직시킨다거나 조합원들에게 적절한 손해배상을 한다거나,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른 원청 사업주를 처벌하는 내용이 아니었다.

부당노동행위를 규제하고 ‘법과 원칙에 따라’ 사업주를 처벌해야 할 정부는, 사실상 손을 놓는 방식으로 원청의 부당노동행위를 방조했다. 최근 사례만 봐도, 중앙노동위원회조차 원청의 업체 폐업 부당노동행위를 인정한 아사히글라스, 노동부가 묵시적 근로계약관계를 인정한 빙그레 자회사 KNL물류, 노조 탈퇴와 개인사업자 전환 강요를 하고 있는 LG유플러스, 노조 설립 후 3년간 13개 업체가 폐업된 삼성전자서비스, 현대차의 노조파괴 개입 사실이 수사 결과 드러난 유성기업 등 원청의 부당노동행위가 자행되고 있는 수많은 사업장에 대해 정부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고 있지 않다.

이처럼 원청이 저임금과 무권리의 노동자를 활용하는 이익은 누리면서도, 최소한의 노동법적 책임도 지지 않는 상태가 계속 허용되는 한, 간접고용과 외주화를 확산시키는 사업주를 제재할 방도는 없다. 이는 노동자들이 ‘살인적인’ 고용불안과 열악한 노동조건, 비인간적 노동탄압에 무방비 상태로 내몰리도록 만든다.

지난달 11일 블랙리스트에 시달린 대우조선해양 사내하청노동자가 조선소 내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또 생겼다. 그는 지난 5월 임금이 체불된 상태에서 소속업체가 폐업되자 동료들과 함께 체불임금 해결과 고용보장을 요구했다.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은 체불임금의 70%만 받고 계속 일하든지, 체불임금 100%를 받고 나가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하라고 강요했고, 고인을 비롯한 25명의 노동자가 체불임금을 모두 받는 쪽을 택했다. 이후 이들 중 일부는 인근의 삼성중공업 사내하청업체에 채용이 결정됐으나, 첫 출근하는 날 삼성중공업이 출입증을 발급하지 않아 취업이 무산됐다. ‘단체행동’을 했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오른 것이다. 고인 역시 한 달 만에 대우조선해양 물량팀으로 다시 취업했으나 원청의 문제제기로 1주일 만에 다시 해고당했다.

지금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국제노동기구(ILO) 결사의자유위원회의 권고를 인용하는 것으로 답한다.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정부가 독자적 수사를 진행할 것. 최우선적 구제책으로서 해고된 노조간부와 조합원들을 원직복직시키기 위한 필요한 모든 조치들을 취할 것. 만약 사법당국이 객관적이고 어쩔 수 없는 이유로 조합원들의 복직이 가능하지 않다고 결정한다면, 그동안 고통받은 모든 손해를 구제하기 위한 적절한 보상이 주어져야 하며, 반노조적 차별행위를 단념시킬 수 있는 충분한 제재를 가함으로써 향후 이러한 행위가 재발하지 않도록 할 것.”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교육선전팀장 (laboryun@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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