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주영 인더스트리올 아태지역 전력네트워크 의장

#1. 서울시내 중심에 빌딩을 소유하고 임대사업을 하고 있는 터라 몸도 마음도 자유로운 김아무개 사장. 아내와 장성한 자녀들과 함께 한여름 혹서기를 피해 8월 한 달 동안 호주로 럭셔리 여행을 떠났다. 무더위를 피한 정도가 아니라 우리나라 초봄 정도의 호주 날씨에 감기까지 걸린 김 사장. 30도가 넘는 불볕더위가 20일 넘게 지속되고 있다는 우리나라 뉴스는 그저 딴나라 얘기이고 무색할 따름이다. 기분 좋은 소식은 그뿐만이 아니다. 한 달간의 해외여행으로 초호화 주상복합 아파트의 세대 전기사용이 60킬로와트에 불과하고, 전기요금으로 단돈 5천원 남짓 부과된 것이다. 대한민국 만세다.

#2. 88만원의 밀린 전기요금을 내지 못해 단전조치를 당한 가정집에서 촛불을 켜고 자다가 화재가 발생해 어린 여중생이 숨졌다. 10년 전 의정부에서 일어난 비극이다. 여론이 비등해지면서 혹서기와 혹한기의 단전조치는 유예됐고 전류제한 장치를 통해 제한적인 전기공급이 이뤄지게 됐지만, 4년 전 전남 고흥에서도 전류제한 조치를 받고 있던 조손 가정에서 또다시 촛불로 인해 화재가 발생해 어린 손자가 목숨을 잃었다.

#3. 국내의 한 전자기업. 분기 순이익이 10조원대를 기록하는 글로벌 기업이면서 국내 굴지의 재벌기업이다. 2008년부터 석유를 비롯한 화석에너지의 국제가격이 가파르게 급등하면서 한전이 막대한 적자를 기록했지만, 2012년 당시 원가 이하 산업용 전기요금으로 그 기업이 받은 혜택은 3년간 무려 3천140억원에 달했다.

우리나라의 주택용 전기요금은 ‘지나칠’ 정도로 누진적이다. 특히 가정에서 사용하는 전기요금은 누진단계가 6단계이고 요금격차는 무려 11.6배나 된다. 물론 나는 사회가 더 정의롭기 위해서, 그리고 보다 더 형평적이기 위해서 누진적으로 세금을 부과해야 한다는 조세정의와 형평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더 강하고 실효성 있는 누진적인 조세제도가 만들어져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기요금에 적용되는, 그것도 일반 서민들의 생존에 필수적인 전기를 사용함에 있어 필요 이상의 과도한 누진적 요금제도에 대해서는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여름 한철 해외여행을 다녀온 부자의 전기요금이 원가는커녕 오히려 전기요금을 보조받는 제도라면, 반대로 선택의 여지 없이 난방을 전기로 할 수밖에 없는 절박한 상황에서 천문학적인 전기요금 때문에 단전조치를 당하고 그로 인한 촛불화재로 소중한 생명을 잃는다면, 이것은 사회적 형평의 누진이 아니라 지독한 역진이고 아울러 극도로 불평등한 사회가 가난한 서민을 대상으로 한 징벌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곳간에 수백조원의 이윤을 쌓아 놓고도 상대적으로 저렴한 산업용 전기요금으로 국민 호주머니를 털고 있다면, 이것 또한 서민들이 부자기업을 보조하는 역진적 교차보조인 것이다. 2012년 당시 국회 한 야당의원은 연료비 급등과 수급불안으로 한전이 막대한 적자를 기록하는 가운데 국내 전기사용 상위 20개 기업이 3년 동안 입은 누적 혜택이 7천792억원에 달했고, 이들 기업이 사용한 전기는 전체 사용량의 30%을 넘는다고 발표했다. 전체 전기 사용량의 14%에 불과한 대다수 국민이 그것보다 몇 배의 전기를 사용하는 부자기업들을 보조하는 전기요금 제도를 과연 누진적이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우리나라 전기요금이 여타 비슷한 국가나 선진국에 비해 높은 수준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우리나라와 전력산업 환경이 비슷한 일본만 해도 300~400킬로와트시(kWh) 사용량 기준으로 우리나라보다 두 배 이상 높은 전기요금 때문에 국민 불만이 팽배했고 이것이 최근 전력산업 자유화를 추진한 하나의 요인이 되기도 했다. 그럼에도 일본은 우리나라처럼 과도한 누진을 적용하고 있지 않다. 3단계 사용량 기준으로 약 1.5배 수준의 요금차이를 보이는 합리적 수준에서 누진제를 적용하고 있다.

한여름, 에어컨이 장식이 아니라 기본적인 생활이 가능할 정도의 전기사용을 보장하는 합리적 수준의 전기요금 제도개편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 누진단계와 요금격차를 대폭 축소하고 저소득층에 대해서는 직접 지원제도로 전환하는 한편, 에너지 절감 유인이 큰 산업용이나 일반 업무용 전력에 대해 사용량에 따른 누진을 적용해 에너지 사용의 효율성을 높이자. 이것이 바로 사회적 형평이고 누진이 가지는 정의로움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는 제도일 것이다.

인더스트리올 아태지역 전력네트워크 의장 (peoplewin6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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