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은호 한국노총 조직본부 교육국장

이웃 회사에 놀러가서 노래를 같이 불러도, 해고된 것이 억울하다고 외쳐도, 자신의 단체에 가맹한 노조에 가서 라면 한 봉지를 전달해도 구속기소되거나 실형선고를 받던 때가 있었다. 노동법에 '제3자 개입금지'라는 조항이 시퍼렇게 살아 있던 시절의 얘기다.

대우조선에 다니던 노동자가 거리 시위 중 최루탄에 맞아 사망하자 사인 규명에 나선 노무현 변호사를 구속하고 변호사 업무 정지 처분을 내린 근거도 제3자 개입금지였다.

1990년 1월 헌법재판소가 이 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리자 박원순 변호사(맞다, 지금의 서울시장이다)는 공개편지를 통해 "벌거벗은 노동자들을 도우려는 의롭고 착한 ‘사마리아인’마저 감옥에 가는 것이 합당하다는 결정"이라고 비난했다.

대표적인 노동악법으로 찍힌 해당 조항은 97년 '노동관계의 지원' 조항으로 이름을 바꿨다가 2007년 노무현 정부 때 완전히 폐지됐다.

그런데 보수정권이 들어선 뒤 이 법이 이름을 바꾸고 범위를 넓혀 좀비처럼 되살아났다. '외부세력'이라는 명칭으로, 시민사회 곳곳에서 정권의 정책에 반대하는 모든 이들을 덧씌우고 있다.

사드부대 배치 지역으로 결정된 경북 성주 주민들의 시위에 대해 보수언론과 새누리당은 "외부세력이 개입한 의혹이 있다"고 공세를 퍼붓는다. 친절하게도 경찰청장은 외부세력을 정의하면서 "성주에 태어났어도 외부에 살면 외부세력"이라는 기준을 제시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한술 더 뜬다. 그는 "불순세력을 가려내야 한다”며 '제3자 개입금지'가 활개를 쳤던 그 당시의 단어를 끄집어낸다.

외부세력 프레임은 세월호 때도 그랬고, 서울 용산과 제주 강정에서도 그러했다. 한진중공업사태는 또 어땠나. 시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진 희망버스가 외부세력이라며 지역 주민들을 이간질했다.

그러나 진짜 외부세력을 돈 주고 끌어들인 것은 정권과 자본이다. 직장폐쇄를 하고 용역을 끌어들인 갑을오토텍이야말로 외부세력을 동원하고 있다. 일당 2만원에 탈북자를 동원해 세월호 유가족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공격하고, 노동시장 유연화 찬성집회를 개최한 어버이연합과 그 배후인 전경련 그리고 청와대야말로 진정한 외부세력이자, 불순세력임을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그러함에도 외부세력 프레임이 두려운 것은 시민사회 내부를 옭매는 기제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얼마 전 직장인 대상 평생교육 단과대학인 ‘미래라이프대학’ 설립에 반대하는 이화여대 학생들은 "우리는 정치색을 띤 어떠한 외부세력과도 무관하다"고 밝히며 자신들이 선출한 총학생회 등 운동권도 배제했다. "운동권이 시위를 주도하면 미래라이프 폐기를 원하는 순수한 이회인의 의도가 변질될 우려가 있다"는 게 이들의 얘기다.

추측해 보건대, 이들이 순수성을 내세우는 이유는 운동진영에 대한 불신보다는 (물론 전혀 무관하다 말할 수 없다) 정권과 보수언론에 의해 만들어질 외부세력 프레임에 대한 두려움이 더 컸을 것이다. 다행히 이대의 투쟁은 승리로 끝났다. 그러나 "새로운 투쟁의 방식이었다"는 평가 글을 보면서 나는 이 싸움이 혹시 ‘이대’라는 한국 사회에서 갖는 특수성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가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여전히 힘이 없는 작은 사업장, 작은 지역, 작은 학교에서는 더 많은 외부세력의 연대를 필요로 한다.

오래전 노동조합을 포함한 민중운동은 '제3자 개입금지'라는 악법을 깨기 위해 더욱 단단하게 어깨를 겯고 연대를 구축했음을 다시 한번 상기한다.

한국노총 조직본부 교육국장 (labornews@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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