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때문에 중소기업이 대기업 되기를 포기한다.”

극우단체 어버이연합에 억대 불법자금을 지원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전국경제인연합이 3일 내놓은 황당한 주장이다. 전경련은 이날 발표한 ‘대기업 규제 현황’ 자료를 통해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면 적용받게 되는 규제가 너무 많다”며 “중소기업이 (대기업 되기를 포기하고 현실에 안주하는) 피터팬 증후군에 빠져 있다”고 주장했다.

전경련은 300명 이상 대기업에 고령자·안전관리자에 대한 고용의무를 부과하거나, 이주노동자에 대한 임금체불을 방지하기 위해 보증보험에 가입하도록 한 제도가 "중소기업의 대기업 전환의지를 꺾는다"고 강변했다.

◇고령자 채용노력도 "싫어"=전경련에 따르면 대규모 기업집단에 속하지 않는 대기업(중견기업 포함)이 받는 규제는 지난달 기준으로 39개 법률 81건이다. 이 중 중소기업이 상시노동자 300명 이상, 자산규모 1천억원이 넘는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순간 곧바로 적용받는 규제는 10개 법률 18건이다. 전경련 주장대로라면 18건의 규제를 피하기 위해 우리나라 중소기업들이 사세 확장이나 매출 신장을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하지 않는다는 얘기가 된다.

18건 규제 중 6건은 고령자 채용에 관한 것이다. 현행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고령자고용법)은 300명 이상 사업장 사업주에게 55세 이상 노동자를 기준고용률 이상 고용하도록 ‘노력’할 것을 명시하고 있다. 나이를 이유로 한 고용차별을 줄이고, 취업취약계층인 고령자에게 일할 기회를 제공하라는 취지다. 예를 들어 300명 규모 제조업체는 6명(기준고용률 2%) 이상을 고령자로 뽑아야 한다. 기준고용률을 초과해 고령자를 채용하면 조세감면 혜택을 받는다.

전경련은 같은법에 명시된 정년 60세 조항도 "대기업에 대한 과도한 규제"라고 주장했다. 300명 이상 기업은 올해부터, 300명 미만 기업은 내년부터 60세로 연장된 정년이 적용된다. 중소기업의 비용부담을 고려해 제도 적용시기에 차등을 둔 것인데, 전경련은 '1년의 차등'조차 규제로 보고 반발했다.

전경련은 2013년 도입된 고용형태공시제도에 대해서도 불만을 드러냈다. 고용정책 기본법의 적용을 받는 해당 제도는 300명 이상 사업장에 고용형태 현황 공시의무를 부과한 것이다. 기업 내 간접고용 노동자를 의미하는 ‘소속 외 근로자 비중’을 확인하는 데이터로 활용된다. 소속 외 근로자 비중이 높은 기업은 ‘나쁜 일자리 양산 사업장’으로 분류돼 언론에 명단이 공개되는 등 망신을 당할 수 있지만, 그에 따른 실질적 제재를 받지는 않는다. 이들 제도는 고령자나 하청노동자 같은 노동시장 약자를 배려하는 취지로 마련됐다. 상대적으로 경제적 여건이 나은 대기업에 최소한의 사회적 책임을 법으로 강제한 것이다.

◇임금체불·산업재해 방지도 "싫어"=전경련은 임금체불·산업안전 사안조차 규제로 분류했다.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외국인고용법)은 이주노동자 임금체불에 대비해 300명 이상 사업장 사업주의 보증보험 가입의무를 명시하고 있는데, 전경련은 이를 차별이라고 주장했다. 전경련은 사업장 산업재해 예방을 위해 안전관리자를 채용·운영하도록 의무화한 산업안전보건법도 문제 삼았다. 이 밖에 자산규모 1천억원 기업에 대한 △상근감사 선임 △외부감사에 의한 회계감사 △지배주주 등의 주식소유현황 제출의무와 관련해서도 “전면적인 손질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경련의 이 같은 주장은 재벌기업들이 강조해 온 기업윤리 그 자체를 의심하게 만든다. 전경련은 ‘기업경영헌장’을 통해 “기업윤리를 최우선 가치로 삼고 투명경영·준법경영을 함으로써 신뢰받는 기업이 되겠다”고 강조해 왔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한정애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대기업 규제를 완화해야 중소기업이 대기업으로 발전할 수 있다는 전경련 주장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라며 “정부 정책과 관련한 특혜로 성장한 대기업이 정작 사회적 책임은 이행하지 않겠다는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한 의원은 중소기업을 피터팬에 빗댄 데 대해서는 “고양이가 쥐 생각하는 꼴”이라고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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