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여 만에 이 칼럼을 쓴다. 솔직히 말하면 연재순서가 1년여 만에 돌아온 것이다. 아시다시피 이 코너는 ‘노동인권 실현을 위한 노무사 모임(노노모)’ 노무사들이 필자다. 주로 노동조합이나 유관단체 상근노무사들이다. 지방의 밥벌이(?) 개업노무사인 필자는 이 모임과 조금 어울리지 않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어쩌랴. 그래도 "밥은 먹고 살아야 되지 않는가"라는 변명으로 날라리 회원이 맡은 사건 하나를 소개한다.

국선사건으로 지방 택시회사 노동자의 부당해고 및 부당노동행위 사건을 맡게 됐다. 회사는 정년도래자인 신청인 노동자의 재계약 여부를 노동조합과 협의한다는 단체협약 규정을 위반해 해당 노동자를 해고했고, 이러한 행위가 노동조합 활동을 저해했다는 것이 주요 내용이다. 노동자는 재계약 의사를 밝혔다고 주장하고 사용자는 자진퇴사를 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사건은 태생적으로 몇 가지 문제를 안고 있었다. 먼저 단협 규정의 문제다. 올해 2월 체결된 단협 규정에는 "정년도래자의 경우 사용자와 협의 후 재고용한다"고 명시돼 있다. 회사는 별도 절차 없이 정년도과자 15명이 이미 근무하고 있음에도 법적구속력이 없는 '협의' 규정을 단협에 포함시켜 체결했다. 사실상 재고용 관련한 권한을 사용자에 위임한 꼴이 된 셈이다. 신청인 노동자가 속한 노조가 소수노조여서 단협 체결 과정에서 배제된 점은 있으나 여하튼 신설된 정년 관련 규정의 최초 피해자가 본인이 된 것이다.

두 번째는 신청 단계에서의 문제다. 해당 노동자는 물론 소속 지회의 의사를 반영하지 않은 상급단체의 구제신청으로 사건이 개시된 것이다. 그러다 보니 신청주체인 노동자는 필자와 상담시 사실상 본인이 퇴직의사를 밝힌 것이 맞다고 고백했고, 해고사건을 소극적으로 진행했다. 부당노동행위 주장건에 대해서는 내용의 이해도 상당히 부족한 상태였다. 그래도 부당노동행위건이 포함된 사건이라 일단 심판을 받아 보자는 쪽으로 설득해 몇 차례 이유서와 답변서를 주고받으며 사건을 준비했다.

신청인 노동자는 심문회의를 며칠 앞두고 회의 불참을 통보했다. 신청인이 없는 심문회의는 처음이라 당혹스럽긴 했지만 심문회의는 예정대로 준비했다. 그런데 심문회의 당일 신청인 노동자의 불참사실을 알게 된 상급단체 담당자가 부당노동행위건에 대해 취하를 해 버렸다. 이에 신청인 노동자도 노동위원회 조사관에게 취하를 통보했다. 아무리 국선사건이라 해도 2개월을 준비했던 사건인데, 심문회의 당일 대리인과 한마디 상의 없이 신청인들이 사건을 취하하면서 자연스레 종결돼 버렸다.

돌이켜 보면 이 사건은 첫 면담 때부터 종결 때까지 마음이 내내 좋지 않았다. 신청인 노동자는 의지가 부족했고, 지회는 무기력했으며, 상급단체는 무관심했다.

그간 상담 과정에서 "단협 체결 과정의 위법성을 지적하고 불리한 단협 규정을 개정하자"거나 "소수의 민주노조 탄압에 대해 의지를 갖고 투쟁으로 해결하는 것도 중요하다"며 늙은 노동자에게 조언을 했던 날라리 노무사가 머쓱해진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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